‘쪽팔림’에 대해
‘쪽팔림’에 대해
  • 김중걸 기자
  • 승인 2018.07.29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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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걸 편집부국장ㆍ창원취재 본부장
▲ 김중걸 편집부국장ㆍ창원취재 본부장

‘쪽 팔리다’는 말이 있다.
국어사전에도 올라간 이 말은 국립국어연구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이 어휘를 동사로 분류하고 있다. 이 말은 속된 표현으로서 ‘부끄러워서 체면이 깎이다’로 풀이하고 있다. 실제 이 말은 실제 생활에서는 체면이 깎이다는 정도가 아닌 보다 광범위하게 쓰이고 있다.
많은 사람들 앞에 나서야 될 때, 창피할 때, 부끄러울 때, 만나기가 좀 어색한 사람과 만날 일이 있을 때 등에 폭넓게 쓰이고 있다.


‘쪽’과 ‘팔리다’가 결합해 일종의 합성어인 이 말 중 우리가 가장 궁금해 하는 것은 ‘쪽’에 대한 것이다. 지금은 다들 ‘쪽’을 ‘얼굴’로 인식하고 있다. 그동안 우리들의 언어생활에서 ‘쪽’이 얼굴로 굳혀져 온 것 같다.


비속어로 출발한 이 언어는 이제 우리 일상에서 ‘얼굴이 팔려 부끄럽다’는 의미로 굳혀졌다. ‘팔리다’는 쉽게 이해가 될 수 있는데 ‘쪽’의 어원에 대해서는 궁금증이 많다.
국어대사전에는 ‘쪽’의 뜻은 대략 11가지로 ‘쪽 팔리다’와 연관이 있는 것은 그리 많지가 않다.
시집간 여자가 뒤통수에 땋아서 틀어 올려 비녀를 꽂은 머리털을 뜻하는 것으로 낭자와 같은 의미라는 말과 방향을 가리키는 말, 그리고 사람의 얼굴을 속되게 이르는 말 등이 있다.
‘쪽’에 대한 어원을 이들을 기초해서 살펴보면 다양한 일설들이 존재하고 있다.
한자어와는 달리 우리말에서 ‘얼굴’이라는 어휘 외에 사람의 얼굴을 나타내는 말이 없다고 한다. 이 때문에 이 같은 합성어가 등장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어찌됐던 이제 ‘쪽 팔리다’는 한 사람의 가치관까지 엿보게 하는 어휘로 등장했다.
고 노회찬 의원의 죽음에는 소시민들이 일상에서 느끼는 ‘쪽 팔림’에 기인하는 것 같다.
대개 ‘쪽 팔린다’는 어휘는 평범한 소시민들이 자주 사용하는 푸념과 자기 비하적인 일상언어이다.


고관대작보다는 소시민들이 일상에서 감당해야 할 자기만의 부피와 무게를 이겨내지 못할 때 터져 나오는 방언이다. 그러나 소시민들은 더불어서 사는 평범한 생활 속에서 일상적인 이 언어가 주는 무게는 크다.


내가 아는 한 언론사 대표 중에서도 그는 가끔 “나는 쪽 팔리면 죽어 버린다”는 얘기를 내뱉곤 한다. 그 말에 선뜻 동의했던 나는 당시 그 ‘쪽팔림’의 무게를 노회찬 의원의 죽음에서 되살아났다.


세상에 염치가 없는 사람들이 많다.


몇천ㆍ몇백억 원을 헤쳐 먹고도 반성하지 않은 사람, 학살의 주범, 높은 자리에서 갑질하는 인물들. 그들은 쪽팔림에 무관심하고 도리어 뻔뻔함이 일상화된 후안무치들이다.
우리 소시민이 일상에서 느끼는 쪽팔림에 비해 그들은 천배ㆍ만 배나 더 얼굴이 팔리는 짓을 하고서도 눈썹 하나 깜박이지 않는다.


일상에서 느끼는 ‘쪽팔림’을 아는 사람은 자신만의 정의감, 인류애, 사람에 대한 연민, 사회성, 공동체 인식, 평등, 양성평등, 염치, 체면, 수치심, 부끄러움 등 인간이 갖춰야 할 소양을 제대로 갖춘 향기 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바르게 살려고 하나 세상이 나를 내버려 두지 않는다’는 현실 속에서 혼자 독야청청하기는 어렵다.


인간계가 부조리하게 그렇게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평범하거나 강직한 사람들의 작은 잘못에 관용을 베푸는 것이 인간적일 것이다.


자기 스스로가 ‘쪽팔림’을 이겨내지 못하는 것은 누구라도 어찌할 수 없을 것이다.
70년대 지역의 한 방송사는 ‘성실한 사람이 잘사는 사회를’을 슬로건으로 내건 적이 있다. 아직도 아둔하리만큼 그 슬로건을 믿는 사람들이 있다. 믿고 안 믿고는 자신의 일이 겠지만 이 같은 구호 속에는 사회적 약속이 포함돼 있다.


이같은 사회적 명제를 마음속에 새겨 넣은 사람들은 그 기준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살아가면서 이른바 쪽팔림에 대해 자기 체면을 걸게 된다.


많은 소시민들은 ‘쪽팔리지 말자’를 좌우명으로 삼아 살아가고 있다. ‘쪽팔림’은 성실함이 더해질 때 극단적인 무게를 발휘하게 된다.


주변에 쪽팔림을 잘 아는 강직한 분이 있다면 극단적인 선택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대화의 손길을 내밀어야 한다. 그들이 느끼는 쪽팔림은 결코 위선자들의 위선보다는 더 인간적이고 양심적이기 때문이다.


고 노회찬 의원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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