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미술과 도시를 바라보는 시점
공공미술과 도시를 바라보는 시점
  • 이덕진
  • 승인 2018.07.18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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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덕진 문화학박사

관광엽서나 스냅사진처럼 도시의 이미지는 도시와 관계하는 방식에 따라 결정된다. 즉 도시의 이미지는 어떤 도시의 특징 이미지가 만드는 개인적 체험이나 도시를 바라보는 시점에 따라 결정된다고 할 수 있다. 스냅사진은 주로 사람들이 많은 번화가에서 찍게 되는데, 이때 사진은 도시의 주제와 관계없는 도시의 일부 구성요소가 전체를 대변하도록 만든다.

건물이나 풍경 등 그 지역을 특정하게 지시하는 요인들이 특별한 장소성을 제기하더라도, 그 이미지는 도시 전체나 생김새, 경제 등에 대해 이야기하지 못한다. 반면 엽서는 도시 바깥이나 또는 높은 전망대에서 도시를 바라보는 시점을 선택한다. 이런 시점은 도시의 전체를 특성 있는 스카이라인으로 변환시키거나 빌딩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특색 있는 표정을 포착해낸다.

스냅사진은 다양한 내용물로 채워진 도시 안의 우연적인 한순간을 제시하는 반면 멀리, 혹은 높은 곳에서 도시를 조망하는 엽서의 시각은 그곳에 늘 그 도시가 그렇게 있었던 것처럼 도시의 이미지와 개념을 단일하게 만든다. 또한 도시의 이미지를 담는 대표적인 명소이자 랜드마크, 포토존으로 공공미술이 자리 잡고 있다.

 더불어 사는 사회적 개념인 ‘공공’과 문화의 형식적 개념인 ‘미술’이 만나 하나가 된 ‘공공미술’은 이제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존재가 됐다. 아마도 모더니즘 이후 가장 활발하게 논의된 개념 중의 하나가 미술의 공공성, 공공미술일 것이다. 모더니즘이 미술적 자유를 찾아 형식적 진보에 매진하다가 미술과 삶의 인터페이스를 상실한 데 대한 반작용에서인지 많은 예술가들이 게릴라처럼 미술을 들고 일상 속으로 침투하느라 고심하고 있다. 실제 우리 생활에서도 그렇다. 길을 걷다보면 돌멩이보다도 많이 눈에 보이는 것이 건물 앞이나 옆에 놓인 작품이다. 이들은 ‘공공미술’ 말고도 미술관이나 화랑 바깥에 있고 도시 환경요소로 기능한다며 ‘환경조형’, ‘환경미술’이나 문예 진흥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미술장식품’이란 말로 뒤섞여 우릴 기다리고 있다.


 현대미술이 거리로 진출할 때 두 가지 종류의 공간이 서로 충돌한다. 하나는 르페브르가 경험을 초월한 개념에 초점을 맞춰 말한 ‘공간 표현’ 즉 개념적 공간이다. 이때의 미술적 개념은 옥외에 갤러리를 세우는 것처럼 단순히 미술 공간을 확장하는 일의 연장에서 완성도 높은 미술작품을 설치해 작품을 건립하는 사람만이 가치를 독점하고 구경하는 사람은 가치 결정에 참여할 수 없다. 복잡한 현실보다 도시계획의 개념을 중시하는 모더니즘 건축과 조화를 이루는 데 관심을 기울인다. 다른 하나는 르페브르가 경험을 중시해 ‘서술적 공간’이라고 말한 공간이다. 이것은 도시 거주민의 신체가 빈번하게 접촉하는, 비공식ㆍ가변적인 공간이다. 이곳은 가치로 충만하며 개인적 교류, 체험, 축출과 초청 등이 어우러지고 공공 영역의 온갖 이슈들이 쉴 새 없이 흘러넘치고 사용자들은 ‘무질서’의 공간을 중첩시키며 ‘물리적’ 공간보다는 ‘심리적’ 공간을 만들어간다. 이 두 가지 공간은 공공미술에 대해 각기 다른 소임을 부여한다. 개념적 공간은 특권적인 미학 영역에 접근할 수 있는 길을 보다 넓히는 역할을 하고 전시장 미술이 외부 공간을 점령하는 근거가 된다. 서술적 공간은 거리의 극장, 거리 음악, 축제와 함께 거리 삶의 또 다른 표현으로 제시되는데 도시 거주자들이 도시가 어떠해야 한다고 규정할 때 그 내용을 구체화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공공장소에 설치된 19세기 기념조형물과 동상은 공공교육과 공공계몽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제작한 것들이며, 공공 미술소장품과 함께 국가적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중요한 자료로 활용됐다. 이런 공공미술은 전체 모습을 그려내는 게 매우 힘든 작업이다. 공공미술이 서로 극단적으로 분리돼 경쟁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부류는 19세기 기념동상 형식의 연장으로 사회적, 예술적 관습을 적당하게 아우르고 있다. 이런 형식은 미술관 바깥 장소를 미술 공간화하고 작품에 대한 평가가 없는 현실을 이용해 점령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또 한 부류는 최근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형태로 미술을 ‘행동주의’나 ‘사회적 참여’의 한 형태로 보고 작품을 그런 시각에 맞춰가는 흐름을 지칭한다. 기념미술과 공공미술은 모두 공공영역에 설치된다는 점 외에 사회의 공공적 가치를 만들고 가시화하는 역할을 하며, 이를 통해 작품은 단순히 장식적인 것이 아니라 이데올로기적 발언을 펼친다는 점에서도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비록 시대에 따라 사용되는 시각언어가 달라졌다 하더라도, 그 기저에 깔린 작품 제작 의도는 여전히 많은 유사성을 보인다. 그러나 새로운 공공미술은 ‘일반적인 대중’은 없다는 인식을 갖고 있으며, 작품이 놓여지는 공간은 일반적인 대중에게 접근의 기회를 베풀어주는 물리적 장소가 아니라 생활이 실제로 이뤄지는 사회적 공공장소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많은 국가에서 공공미술은 서로 대비되는 두 모습이 뒤섞인 채 30여 년을 지나왔다. 이런 현실은 공공미술이 걸어온 길을 되돌아볼 필요성을 제기한다. 미술 자체뿐 아니라 미술 외부의 도시사회학, 지리학, 비평학 등과 연계된 공공미술에 대한 비평작업과 작품이 설치된 장소를 찾는 관람객들의 반응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례도 드물다. 이에 따라 공공미술은 막대한 예산과 크기에 비해 빈약한 미술 영역처럼 인식돼왔고, 수많은 사람들과 만나면서도 관객층을 만드는 것이 어렵다는 이유로 공공미술이 무시당하고 혐오의 대상이 된다. 공공미술이 공용 공간에 놓인 작품으로 제한돼서는 안 되며 작가와 일반 대중 사이의 관계와 대화를 포함할 수 있어야 한다. 이제 공공미술과 도시를 바라보는 시점을 거시적 담론으로 보다 섬세하게, 집중적으로 전개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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