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항 인제대학교 상담심리치료학과 교수 |
옛말에 ‘긁어 부스럼 만든다’는 말이 있다. 가만히 두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을 스스로 괜히 건드려 문제를 만든다는 의미다. 혹시 우리가 삶에서 겪는 많은 심리적 어려움들도 스스로 문제시하며 그 문제가 반복되는 방식으로 삶을 계속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포스트모던 심리학의 시각에서는 하나의 고정된 객관적인 현실이란 없으며, 사람들이 각자 주어진 상황을 주관적으로 인식하고 창조해 의미를 구성한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각 개인들은 능동적인 주체로서 자신의 삶 속에서 부딪히는 여러 상황들을 주체적으로 해석하고, 선택하며, 행동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다시 말해, 포스트 모던적 심리치료에서는 자신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의 무게 중심이 바로 자기 자신에게 있다고 본다.
포스트모던 심리치료 중 하나인 이야기 심리치료는 개인의 문제를 구성하는 이야기들을 새로운 관점에서 다시 작성하거나 이야기하게 함으로써 개인의 긍정적인 변화를 돕고자 한다. 이야기 심리치료에서 많이 사용하는 기법 중 하나가 ‘문제의 외재화(externalizing)’라는 것이다. 이는 개인이 문제라고 여기는 것(들)을 그 개인에게서 분리시키는 것을 의미하는데, 해당 문제를 사물화 또는 의인화하는 방법이 주로 사용된다.
예를 들어, 자존감이 매우 낮은 회사원이 있다고 상상해보자. 그 또는 그녀는 업무 중에 일어나는 작은 실수에도 크게 위축되고, 회사 동료나 상사들의 부정적인 피드백에 민감하게 반응해 하루 종일 우울해할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꺼내놓는 이에게 상담자는 자신과 문제를 분리하도록 돕기 위해 “자신을 자꾸 못났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못난이’가 당신을 지배하고 있네요”라고 말할 수 있다.
이렇게 자신의 문제를 외재화 하고 나면 그 문제의 크기, 모양, 색깔, 영향력 등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기고 그 문제 중심으로 구성됐던 본인의 이야기를 재구성할 수 있는 관점의 변화를 가져오게 될 수 있다.
이야기 심리치료를 각자의 삶의 문제에 적용해 본다면 어떨까? 불안, 우울, 분노 등 자신을 힘들게 하는 어떤 심리적인 문제라도 좋다. 그 어려움을 한번 집에 잠시 두고 나왔다고 생각하며 하루를 살아보면 어떨까? 혹은 냉장고 안의 밀폐 용기 속에 잠시 저장해 뒀다고 여기고 하루를 시작하면 어떨까? 당장 집을 나서는 그 순간부터 본인의 기분을 스스로 느껴보기를 바란다. 그 차이를 느낄 수 있는가? 만약 그렇다면 여러분은 자신 삶의 이야기를 새롭게 구성해볼 수 있는 작은 준비가 됐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