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 갑의 진솔한 사과 의미는
우리 사회 갑의 진솔한 사과 의미는
  • 이대형 서울지사 정치부장
  • 승인 2018.07.06 00: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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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V 뉴스에서 모 회장님 말씀 “사과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무엇 무엇을 하고 싶다.” 하고 싶다는 말은 앞으로 그러겠다는 말이 된다. 결국 지금 하고 있는 것은 아닌 게 된다. 그냥 담백하게 “사과 말씀을 드립니다”하면 될 것을 굳이 “하고 싶다”는 말을 더하는 것은 무의식중에 뼛속까지 배어있는 특권, 권위의식이 아닌지 의구심을 들게 한다. 실제 ‘내가 이런 마음을 가졌다는 것만으로도 너희에게 베푸는 시혜’라는 잠재의식의 단면이 아닌지 해서 듣기 개운치 않다. 듣는 내가 쪼잔하거나 옹졸해서 말꼬리를 잡는지도 모를 일이다. 강자와 약자 사이에서 사과가 오가는 경우, 약자는 절대 “~하고 싶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아니, 못한다.

 저 회장님 사과에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 이유다. 국민 앞에서도 여전히 갑의 자루를 놓지 않고 있는 회장님, 회장님!! 이 장면들을 보면서 국민들은 아마도 상실감에 빠졌을 것이다.

 수백억 원대 상속세 탈루 등 비리 의혹을 받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얘기다. 조 회장은 5일 법원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했다. 조 회장은 서울남부지법에 도착해 포토라인에 서지 않고 곧바로 법정으로 향하는 비범함도 보여줬다.

 ‘자녀들이 보유한 주식을 비싸게 팔도록 지시했는가’, ‘구속을 피할 수 있을 것 같은가’, ‘국민에게 한 말씀 해달라’는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지 않은 채 시종일관 굳은 표정이었다.

 서울남부지검 형사6부(부장 김종오)는 국제조세조정에 관한 법률 위반,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횡령ㆍ배임ㆍ사기, 약사법 위반 등의 혐의로 조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앞서 조 회장의 아내 이명희 씨는 ‘갑질 폭행’ 의혹과 불법 가사도우미 채용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됐으나 법원에서 기각됐다. 조 회장의 둘째 딸인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의 경우 경찰이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검찰이 반려했다.

 그렇다면 왜 갑과 을은 교과서적인 표현대로 동등한 위치가 아닐까? 갑의 우월적 지위, 이른바 갑질의 끝판왕인 한진그룹 일가의 횡포를 보면 이제 갑의 횡포가 더 이상 용인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가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어쩌면 과거부터 존재해왔던 일부 부유층과 권력층의 갑질이 최근 사회 변화와 더불어 수면 밖으로 드러난 것뿐인지도 모른다.

 큰딸의 땅콩회항사건부터 시작해 작은딸의 광고대행사와 직원들에 대한 악다구니와 괴성, 욕설이 담긴 음성파일, 그리고 어머니 이명희 씨의 직원들에 대한 폭행 및 욕설, 수행기사에 대한 욕설과 폭언 등에 이르기까지 요즘 말로 ‘3단 콤보 세트’라 할 만하다.

 상상을 초월하는 갑질이 세상에 드러나면서 이명희 씨는 며칠 전 법원에 두 번째 구속 실질심사를 받으러 출두했다. 직원에 대해 “개XXX”라는 욕설을 수시로 내뱉는 재벌가 회장 부인의 모습이 법원에 들어가는 순간만큼은 초라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구속영장이 기각되고 법원을 빠져나오는 그녀의 얼굴엔 처음 출두할 때의 모습과는 다른 여유마저 읽혔다.

 이제 조 회장의 영장실질심사는 김병철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담당한다. 이날 밤이나 다음날 새벽에 구속 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법정 앞에는 ‘인하대학교총학생회 동문협의회’ 소속 2명이 ‘인하대에 대한 족벌세습경영을 그만둬라’, ‘정석인하학원 이사장에서 물러나라’ 등의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대한항공 일가의 갑질은 돈과 권력을 가진 자들의 을에 대한 이해할 수 없는 분노의 표출이다. 그렇기에 갑의 분노는 용인할 수 없다. 그저 을을 향한 진솔한 반성만이 요구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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