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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토기 재현작가 ‘두산도예 강효진’ 선정
가야토기 재현작가 ‘두산도예 강효진’ 선정
  • 김세완 기자
  • 승인 2018.07.02 04: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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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대

2009년 경남도 공예품 금상 수상
굽다리 접시ㆍ항아리 등 재현 계획
가야토기 변천사로 역사 가늠
도자산업 발전ㆍ관광자원화 기대

 2천년 가락국 왕도의 상징이자 변천모습을 가늠할 가야토기 재현작가로 김해시 진례면 소재 두산도예 강효진 씨가 선정됐다.

 김해시는 가야토기의 변천 모습을 통해 가야사회의 발전 단계를 설명하는 것이 가능해지고 가야사 복원 척도가 되는 점에 착안, 사라져가는 소중한 가야토기의 명맥을 유지키로 했다.

 이에 따라 가야토기를 영구 보존키 위해 전통방법으로 재현할 자격을 갖춘 도예가를 공모절차를 거쳐 지난 6월 현장심사와 최종심사 후 두산도예 강효진 씨를 재현작가로 선정했다.

 강효진 작가는 지난 40년 동안 가야토기의 맥을 이어 보겠다는 일념으로 김해 진례면에 가마터를 잡고 파편과 태토를 분석하고 유약실험을 거치는 등 가야토기 재현에 노력해 왔다.

 특히 그의 노력은 지난 2008년 경남도 공예품 동상을 수상하며 빛을 보기 시작해 2009년 김해시 관광공예품 대상 수상, 경남도 공예품 금상을 수상했으며, 가야토기를 재현하는 현재까지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 두산도예 강효진 씨.3- 굽다리 접시

 시는 수수하면서도 부드러운 곡선미와 경질의 우수한 가야토기 계승이 절실해 굽다리 접시, 항아리와 그릇받침 등 대표적인 가야토기를 중심으로 재현할 계획이며, 도자산업과 연계한 관광상품의 자체 발굴 또한 계속적으로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판단해 올해 재현작가를 선정하게 됐다.

 가야토기는 낙동강 서안 경남도 옛 가야지역에서 출토되는 토기로 백제나 신라와는 다른 독자적인 특색을 보여주는 토기로서 신라토기와 함께 원삼국시대의 와질토기에서 발전했다.

 여기에다 도차로 성형해 1천200°C 이상의 고온을 내는 등요(登窯)에서 환원염(還元焰)으로 구워 흙 속에 포함된 규산이 유리질화 돼 침수성이 없어진 회청색 경질토기가 주를 이룬다.

 일반적으로 가야토기라 하면 바로 4세기 이후에 새로운 제도술(製陶術)에 의해 1천℃ 이상의 온도에서 구워낸 단단한 질의 도질토기(陶質土器:硬質土器)를 말한다.

 당시 김해ㆍ부산을 중심으로 한 지역은 타지역과 다른 독특한 토기문화권을 형성하고 있었다. 즉 지역권이나 시간성을 가장 잘 반영하는 굽다리접시 등의 경우, 소위 부산ㆍ김해식의 토기와 이들 지역을 제외한 다른 영남지역의 토기가 서로 다른 양식을 보이고 있었다.

▲ 굽다리 접시

 3세기 중엽 이후 서기 562년 대가야가 멸망하는 시기까지 제작된 토기를 가리키는 회청색 경질토기는 분묘유적에서 주로 출토되는 점을 통해서 생활용기와 더불어 껴묻거리(副葬品)로도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가야는 고구려ㆍ백제ㆍ신라에 비해 영토 규모가 작고 멸망할 때까지 하나로 통일되지 않았으나, 삼국시대 신라와 함께 가장 먼저 경질토기를 생산했으며 여러 소국마다 형태가 다른 다양한 토기를 제작했다.

 가야토기는 신석기시대 이래 한반도의 토기 가운데 가장 조형미가 뛰어나며 그 유려한 곡선은 한국미를 잘 표현하고 있다. 이는 같은 시대의 백제토기, 고구려토기가 기종과 형태가 비교적 단순한 점과 대비되고, 또한 다양한 기종과 상형토기를 제작한 신라토기도 특히 경주지역에서 제작된 토기의 경우 다소 경직된 형태를 띤 점에서도 비교가 된다.

 우리나라 최초의 회청색 경질토기는 김해시 양동리 제235호분 출토 두귀달린항아리(兩耳附壺)를 들 수 있다. 회청색 경질토기의 출현 시기는 고분 조영시기의 하한 연대가 2세기 후엽으로 보이는 양동리 제162호분을 기준으로 할 때, 그 다음 단계인 양동리 제235호분 출토품은 3세기 전엽으로 소급될 개연성이 높다.

 또한 대성동 제29호분 출토품으로 볼 때 늦어도 3세기 중엽으로 볼 수 있다. 회청색 경질토기는 동한(東漢)대의 회유도(灰釉陶)와 같은 중국 제도기술의 영향에 의해 영남지역 각지에서 와질토기 제작기술의 개량에 의해 자체적으로 성립된 것이다.

 4세기대 금관가야양식 토기는 옛 김해만을 중심으로 주변의 부산ㆍ진영ㆍ진해 일대에 국한되며, 4세기대 토기의 뚜렷한 양식적 특징과 분포권을 형성한 정치체가 금관가야와 아라가야라이며, 그 가운데 아라가야양식 토기의 분포권으로 유추되는 광역 관계망은 아라가야가 금관가야와 함께 가야 전기의 양대 세력인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가야토기의 변천 모습을 통해서 가야사회의 발전 단계를 설명하는 것이 가능해진다는 점에서 가야토기는 가야사 복원의 척도가 된다.

 2∼3세기 가야는 ‘삼국지(三國志)’ 위서 동이전(魏書東夷傳)에 보이는 변한의 소국이 분립된 상태로 존재하는 소국단계였으나 4세기에는 금관가야와 동래 독로국(瀆盧國)이 연합하는 소국연합단계로 발전했다.

 더욱이 가야토기는 이를 제작하던 도공이 일본열도에 이주해 스에키(須惠器)라는 토기를 창출했다. 스에키를 계승한 오늘날 일본의 비젠야키(備前燒)와 같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도기(陶器)의 근원도 실은 가야토기에 연원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 관계자는 가야토기 재현작가를 앞으로도 계속 발굴해 행ㆍ재정적 지원을 적극 뒷받침하고 옛 가야토기 전통 문화의 우수성과 보존가치를 널리 알릴 방침이다.

 이를 바탕으로 김해시 도자산업 발전에 기여토록 하고 활발한 판로개척 등 관광상품은 물론 관광자원화에도 이바지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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