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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미술 모든 사람 만족시켜야 할까?
공공미술 모든 사람 만족시켜야 할까?
  • 이덕진
  • 승인 2018.06.26 20: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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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덕진 문화학박사

 도시의 빌딩과 거리를 아름답게 한다는 명분 아래 수많은 예술작품들이 엄청난 비용을 들여 제작되고 구입된다. 하지만 이런 공공미술은 때론 초대받지 않은 손님처럼 환영을 받지 못하기도 한다. 여기서 ‘예술의 공공성’이라는 문제가 발생한다. 그런데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보고 즐기지 못한다면 이 작품들은 예술가 개인의 만족을 위한 정신적 사치에 지나지 않는 것인가? 그렇다면 예술작품은 세상과 소통할 때에만 진정한 예술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인가? 길거리를 걸으면서 무심코 지나치던 공공미술을 한번 들여다보자. 그것들이 예술작품으로 보이는가 아니면 쓸데없는 돈 낭비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가?

 미술이라는 지극히 사적인 것과 공공성이라는 공적인 것의 결합인 공공미술은 모순적 상황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러한 상황들이 공공미술을 둘러싼 많은 오해와 억측, 그리고 소란들을 야기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통상 이야기하는 공공미술을 ‘공공장소에 설치된 미술작품’으로 이해하거나 혹은 기존 시설물들을 예술적으로 바꾸는 무엇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으로는 다양한 공공미술에 관한 인식과 활동 등을 설명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공공미술은 3가지 형태로 분류할 수 있다. ‘공공장소 속의 미술’, ‘공공장소로서의 미술’, ‘공공의 관심 속의 미술’이다. ‘공공장소 속의 미술’은 우리가 ‘공공미술’ 하면 쉽게 떠올리는 광장이나 도로의 중앙 분리대, 대형 건물의 내외부에 설치되는 미술작품을 지칭한다. ‘공공장소로서의 미술’은 환경 미술, 장소 특정적 미술 등과 같은 현대미술의 흐름 속에서 야기된 것으로 파악한다. 삶과 자연의 영역으로 미술의 외연을 확장하고자 했다. 모더니즘 미술 정신이 사회로 확장되면서 그 가능성을 실험한 것이 ‘공공장소로서의 미술’의 태도이다. 공공장소가 미술의 적극적 대상으로 인식된 것이다. ‘공공의 관심 속의 미술’은 커뮤니티 아트, 새 장르 공공미술 등으로 지칭하기도 한다. 공공미술에 있어서 공공성의 문제를 보다 적극적으로 제기하고 미술이 사회와 결합되는데 있어서 그 역할과 의미를 다각적으로 인식하기 위한 시도였다.

 공공미술에 관한 고민은 지금만의 문제는 아니다. 자국 문화에 대한 자긍심을 높이기로 유명한 문화와 예술의 나라 프랑스 그리고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는 매혹적인 도시 파리, 누구나 가보고 싶은 도시 일단 한번 가보고 또 가고 싶은 그곳을 꼴도 보기 싫다며 떠나려 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게다가 그 이유가 지금은 파리의 상징으로 전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은 에펠탑 때문이다. 참으로 놀랄 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에펠탑은 지난 1889년 프랑스대혁명 100주년을 기념해 열린 만국박람회 때 프랑스 건축토목기사 귀스타브 에펠이 세운 철제 구조물이다. 거대한 알파벳 대문자 A의 형태를 띠고 있는 높이 324m의 에펠탑은 높이와 방향에 따라 파리 시내의 다양한 모습을 조망할 수 있게 설계됐고 또한 파리 어디에서나 에펠탑이 보이도록 세심히 선정된 장소에 세워졌다. 지어진 후 40년 동안 에펠탑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구조물이었다. 하지만 오랜 시간에 걸친 도시계획으로 잘 정비된 아름다운 도시 파리를 사랑하던 많은 파리 시민들은 에펠탑의 건설을 환영하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아름다운 파리의 경관을 헤친다며 철판 쪼가리와 쇠가락을 뜯어 붙인 괴물 같은 이 철탑 기둥이 파리 한복판에 들어서는 것을 반대했다. 특히 ‘비곗덩어리’, ‘여자의 일생’ 같은 작품으로 유명한 소설가 기 드 모파상이 에펠탑을 혐오한 인물로서 자주 회자된다.

 공공미술은 국민의 세금으로 지원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것의 가치와 역할에 대해 좀 더 신중할 필요가 있다. 우리 삶을 질적으로 향상시키기 위해서, 혹은 삶의 공간을 예술적으로 꾸민다는 취지하에 때로는 대중이 이해하기에는 너무 난해한 작품을 세운다든가 공공미술 작품 구입에 터무니없이 많은 비용을 사용했다든가 하는 사실을 알게 되면 당황할 수밖에 없다. 날이 갈수록 문화와 환경 정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자 지역주민을 위해 공공미술을 적극적으로 도입하는 지방자치단체들이 많아졌다. 하지만 길거리를 지나다가 무엇에 쓰는 것인지 짐작도 가지 않는 박스 하나에 수천만 원에 이르는 세금이 쓰였다는 것을 알게 되면 예산 낭비가 아니냐는 생각이 드는 것이 대부분의 사람일 것이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다양하게 양질의 공공미술을 공급하기 위해서는 예산 투자가 불가피하다고 말한다. 공공미술은 시민과 100% 소통할 때에만 의미가 있고 공공성과 안전성을 보장해야 한다. 작가들은 시민의 삶 속으로 들어간 예술을 꿈꾸며 공공미술작품을 만든다. 하지만 때로는 시민들의 환영을 받지 못하기도 한다. 예술의 공공성 문제는 개인의 사사로운 창작 의지만으로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공공 서비스로서의 예술 생산이라는 개념을 적극적으로 도입해야 제대로 된 공공미술의 가치와 역할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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