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03:51 (금)
통화부재의 시대
통화부재의 시대
  • 이주옥
  • 승인 2018.06.19 19: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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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옥 수필가

  무엇이든 넘치는 세상이다. 하지만 그만큼 부재의 시대라고도 말하는 사람도 있다. 아이러니한 세상이다. 무엇보다 첫 번째로 소통의 부재를 말한다. 그마저도 언제부턴가 말보다는 글자나 기호를 이용해서 소통한다. 스마트폰의 대중적 공급과 그것이 지닌 다양한 기능과 역할 때문이다.

 전화기에 장착된 자판을 이용해서 생각을 문자화하고 때로는 이모티콘이라는 특수 기능을 내 생각과 의사 표현으로 대신 한다. 직접 대면하는 번거로움이나 어색함을 피하고 상대방의 시간과 상황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요긴하게 쓰이는 것이 사실이다. 때론 문자가 말보다는 더 간곡하게 전달되기도 한다.

 다양한 이모티콘. 내 마음을 내 마음보다 더 적절하게 대변한 기발한 제품들이 많다. 구구절절한 말보다는 임팩트 있다. 말은 호흡이나 강도에 의해 전달되는 의미가 천차만별이지만 이모티콘은 그것으로 의미나 뜻이 함축된다. 하지만 간혹 달랑 날아온 이모티콘 하나가 조금 매정한 것도 사실이다.

 세상에 다양함이 존재하는 만큼 현대인들에게 기피하는 것도 나날이 늘고 있다. 전문 용어로는 포비아 현상이다. 급기야 전화 공포증, 즉 콜 포비아(Call phobia) 현상까지 일어나고 있다. 사람 많은 공공장소나 사무실에서 공공연하게 개인적 통화가 여의치 않다 보니 문자가 편리하기도 하고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한 발신자가 누구인지 미리 알려주는 기능 때문에 전화도 골라 받을 수 있고 긴밀한 연락일수록 또한 문자를 이용하게 된다. 직접 통화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소통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통화는 시급을 다투는 일에나 한 번씩 하게 된다. 이런 현상 또한 문자를 이용하는 편리함이 부른 일종의 부작용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일부 사회학자들은 콜 포비아 현상으로 인해 상호작용에 대한 두려움이 확대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급격한 통신기술의 발전으로 사람들끼리 얼굴을 대면해서 만나는 기회가 줄어든 탓이다. 심리학 용어인 ‘사회적 기술’은 개인이 사회나 직장에 성공적으로 적응하는 데 필요한 대인관계 기술을 뜻한다. 사회적 기술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고 사람들을 만나면서 학습하는 것인데 그 기회가 점점 사라지고 있으니 또 다른 2차적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사회적 기술에 대한 자신감 결여. 바로 콜 포비아 현상이다. 특히 감정 노동에 종사했거나 상사에게 전화로 과중한 스트레스를 받았던 사람은 더욱 심하다고 한다. 거기에 보이스피싱이라는 신종 사기가 기승을 부리기에 그 공포증은 더 심화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직장인들 64%가 업무 중 스마트폰을 이용해 소통한다고 한다. 업무상 상호 필요한 관계에서도 직접 대면보다는 스마트폰 이용이 대부분이고 점심메뉴나 음료도 메신저를 통해서 정한다고 한다. 업무 중에 전화벨이 울리면 가슴이 뛰고 불안하다는 사람도 있다. 결국 통화는 메신저에 비해 더 많은 심리적 에너지가 필요한 일이 됐다.

 우리 아이들도 웬만해서는 직접 통화보다는 문자를 이용하는 것을 원하고 그 방법이 더 빠를 때도 있다. 손가락만 움직여서, 원하는 때에 원하는 의사 전달을 하고 오로지 ‘글자’로만 소통하는 것은 분명히 문제가 발생한다. 가장 큰 문제는 의사소통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짧은 문자나 메신저만 이용해 대화하면, 말하는 사람의 감정이나 행간의 의미가 사라져 의사소통에 오해가 생길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의 목소리가 아닌 글자로만 대화를 하게 되면 상대방이 현재 어떤 상황인지, 기분이 어떤 상태인지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지 못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오히려 소통 부재나 역류가 될 소지가 많다. 관계의 대부분이 대화 속에 시작되고 이어진다. 대화의 방법 또한 중요한 시대다. 한마디 짤막한 글이나 한 개의 표정으로 대신하는 소통은 훈기 없는 방처럼 이상하게 냉기류만 흐르는 듯하다. 말의 온도를 이용한 소통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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