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9 23:19 (금)
선거판에서 진실은 통할까
선거판에서 진실은 통할까
  • 류한열 논설실장
  • 승인 2018.05.31 21: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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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한열 논설실장

 워렌 버핏과 점심 한 끼 하려고 수십 억 원을 쓰는 사람이 있다. ‘오마하의 현인’한테서 한 말씀 듣기 위해 돈을 쓰려고 줄을 서야할 정도다. 돈만 있다고 점심을 함께 먹지 못하고 경매에서 낙찰을 받아야 한다. 그렇다면 워렌 버핏하고 비싼 점심을 먹은 사람은 엄청난 투자 비밀을 들었을까. 워렌 버핏과 점심을 먹은 한 행운아가 요약한 내용을 보면 별다른 게 없다. “매사에 진실해라, 아니라고 말하는 걸 어려워하지 마라, 좋아하는 것을 해라” 등등 웬만한 사람이면 훈계조로 할 수 있는 내용이다.

 여러 방면에 성공한 사람 대부분은 멘토가 있거나 있었다. 한 분야에서 성공을 꿈꾸는 사람은 그 분야에서 이미 정상에 오른 사람을 만나면 눈이 열린다. 특별한 훈수가 아니더라도 한두 마디 짧은 말에서 영감을 얻기도 한다. 멘토를 찾기 위해 시간과 돈은 쓰는 건 낭비가 아니다. 설사 멘토가 주는 충고에 별다른 내용이 담기지 않아도 존재 자체로서도 힘을 발휘한다. 멘토는 앞서서 경험하고 여러 상황에서 숱한 사유로 해결점을 찾았기 때문에 신뢰도가 높다. 멘토를 두지 않은 사람은 남들보다 인생에서 손해 보는 게 많다.

 거리에 지방 정치인들의 플래카드가 나붙었다. 지역 일꾼을 자처하며 본격적인 선거전에 돌입한 후보들은 10여 일간 당선을 목표로 뛴다. 행복한 시간이다. 사람들은 목표를 세워 모든 힘을 쏟을 때 가장 큰 행복감을 느낀다. 자는 시간까지 아껴 거리에서 사람들에게 명함 한 장이라도 더 건네려고 애쓴다. 성공을 향해 최선을 다하는 사람에게서 볼 수 있는 에너지가 넘친다. 플래카드에 드러난 후보의 얼굴엔 미소가 넘치지만 이번 지방선거에서 ‘일’을 내기 위해 4년 혹은 8년을 인내하면 기다린 아픔은 미소 뒤에 있을지 모른다. 워렌 버핏과 하는 비싼 한 끼 점심비는 낼 처지가 못돼도 많은 사람을 만나 조언을 구하고 6월 13일을 기다렸을 것이다. 냉혹한 선거판에서는 승자만이 독식한다. 긴 시간 동안 준비한 세월을 한 방에 무색하게 만드는 선거판을 외려 매력적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정나미 떨어지는 건 사실이다.

 선거판에 진실이 있는지 많은 사람이 묻는다. 선거판에서 깽판을 쳐도 당선만 하면 된다고 여기는 사람이 많다. 이런 사람들은 선거판에서 어떤 수단을 동원하더라도 무조건 이겨야한다는 소신을 가지고 있다. 이 소신에 붙들린 후보와 운동원들은 불법을 예사로 자행한다. 오직 당선만을 선거 목표로 하는데 무슨 거리낌이 있겠는가. 선거판에서 진실이 통한다고 믿는 후보는 순진하지만 봐줄 만하다. 최선을 다하면 진실이 유권자에게 전달된다고 믿는다. 이런 후보는 훌륭한 멘토가 남긴 말을 가슴에 품고 선거 기간 전장을 누빈다. 선거운동이 끝난 그날 저녁이나 다음날 새벽녘에 진실에 대한 냉정한 결과를 보고 어떤 ‘현인’의 말도 선거판에선 통하지 않는다는 걸 깨닫는다.

 정치판에서도 멘토는 있다. 멘토가 선거에 나가는 후보를 보고 “매사에 진실해라”고 충고를 할지는 모르겠다. 수십 억을 써서 현인에게 받은 이 말이 선거판에서는 통한다고 믿는 사람은 별로 없다. 진실보다 꼼수가 더 가치를 바라는 곳이 선거판이다. 경남지사 공식 선거운동 첫날부터 ‘드루킹’ 논평 신경전이 펼쳐졌다. 김태호 후보는 “선거가 끝나면 바로 특검 수사를 받아야 한다”고 김경수 후보를 겨냥했다. 김경수 후보 측은 “근거 없는 마타도어에 집중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금은 진실보다는 표를 움직이는 자극이 중요하다.

 경기도지사 선거에서 녹음파일 논란이 커지면서 온갖 루머가 나오고 있다. 여배우 스캔들 등 믿기 힘든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한 후보의 욕지거리 녹음파일을 들으면 혀를 찰 수밖에 없다. 이런 내용의 진실은 뒤로 밀쳐져 있고 환영이 돌아다니며 많은 사람의 마음을 뺏고 있다. 선거판은 으레 추한 일을 펼쳐지는 전시장이라 여기면 속은 편하다.

 그럼에도 선거판에서 진실이 힘을 쓰기를 바라는 마음을 다 지울 수는 없다. 오랜 세월 지역에서 봉사활동을 펼치다 더 나은 길을 찾아 지방의회에 들어가려는 후보, 바른 행정 경험을 살려 지역주민의 살림을 더 낫게 할 수 있다는 후보, 정치꾼이 아니라 정치인으로 더 큰 살림을 맡고 싶어하는 후보가 진실의 이름으로 이번 지방선거에서 승리하면 수십 억짜리 멘토의 “매사에 진실하라”는 빛을 발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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