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9 20:22 (금)
너무 ‘정치적’이면 반쪽짜리가 된다
너무 ‘정치적’이면 반쪽짜리가 된다
  • 류한열 논설실장
  • 승인 2018.05.24 19: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노 전 대통령 참배객이
찾는 봉하마을이 순수한
성지로 자리 잡아야 한다.
너무 ‘정치적’이면
성지는 반쪽짜리가
될지도 모른다.
▲ 류한열 논설실장

 6ㆍ13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적 목적’을 둔 행위가 넘쳐난다. ‘정치적’이라고 말할 땐 아주 넓은 뜻이 펼쳐진다. 야당이 여당을 비판하는 행위뿐 아니라 세상을 어떤 방향으로 끌고 가기 위한 욕망도 ‘정치적’이라 할 수 있다. 어떤 국가를 지향할 것인가를 내세워 진보와 보수가 싸우고,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가에 초점을 두고 당 후보끼리 힘을 겨룬다. 남의 생각을 바꾸려는 욕망이 강한 사람이 선거에서 승리한다.

 정치인의 민낯을 보긴 힘들다. 대부분 정치인은 자신을 포장해 대중 앞에 나선다. 정치인은 자신을 그대로 노출하고 유권자와 손을 잡고 얼굴에 웃음을 담기는 싶지 않다. 여론만 해도 그렇다. 여론이 대중 사이에서 자연스레 만들어진다고 믿는 사람은 순진하다고 봐도 무방하다. 여론은 미디어가 만들어내는 허상과 실제가 범벅이 돼 대중 앞에 강력한 힘으로 나타난다. 정치적이란 지극히 자의적으로 만들어지는 구석이 크다.

 지난 23일 김해 봉하마을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 9주기 추도식. ‘평화가 온다’는 주제로 많은 사람들이 추도의 물결에 동참했다. 추도식은 국민의례, 노래를 찾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가수 이승철의 추모곡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 공연, 추도사, 추모 영상과 유족 인사말, ‘아침이슬’ 추모공연, 참배 등 순서로 진행됐다. 추도식에 유족이 참석하는 건 아름다움 모습이다. 유족뿐 아니라 정치인이 대거 참석했다. 전 대통령의 추도식에 많은 정치인이 참여하는 것 또한 당연하다. 하지만 추도식에 ‘정치적 행위’가 너무 강하게 비쳐 주객이 바뀐 모양새다.

 노 전 대통령 서거 후 봉하마을은 전국에서 사람이 몰리는 ‘성지’가 됐다. 추도식이 열리면 봉하마을에는 소탈한 이미지에 사람 사는 세상을 꿈꿨던 대통령의 마음을 그리며 추모객이 몰린다. 정치인들은 선거에 출사표를 넘지거나 큰 일을 앞두고 봉하마을을 찾는 경우가 잦다. 김경수 민주당 경남지사 예비후보는 이번에 노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긴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대장님 잘 계시죠? 저, 경수입니다. 우리는 대통령을 대장이라고 불렀다. 오늘 나지막하게 다시 불러본다”고 한 후 노 전 대통령과 추억을 떠올리며 경남을 새롭게 만들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김 예비후보는 경남지사 선거에서 반드시 승리하겠다는 결의가 남다르다. 김 예비후보는 선거일정을 접고 대통령에 ‘예의’를 다했다. 다른 선거일정을 소화하기보다 추도식에 참석하는 게 더 ‘정치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겠지만 결과적으로 효과는 더 컸다.

 이날 추도식은 6ㆍ13 지방선거를 얼마 앞두지 않은 시점이라 특히 많은 정치인들이 눈에 띄었다. 선거에 나가는 후보가 추도식에 얼굴을 내미는 것은 정치적 행위로 볼 수 있다. 추도식에서 정치 행위를 보고 있기에 마음이 편하지 않은 사람이 많다. 이날 행사장을 가기 위해 김경수 후보가 등장하자 참배객 사이에선 ‘김경수’가 울려 퍼졌다. 추도식에서 작은 선거운동이 벌어진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김경수’를 연호하는 목소리는 행사가 끝난 후 김 후보가 퇴장할 때도 이어졌다.

 ‘정치적’이라는 말엔 ‘냉정한’이란 뜻이 들어있다. 노 전 대통령 추도일에 이명박 전 대통령의 피고인으로 처음 법정에 섰다. 정치판에선 우연이라도 여러 해석이 붙는다. 바로 1년 전 이날 박근혜 전 대통령도 피고인으로 처음 법정에 얼굴을 드러냈다. 그날 노 전 대통령 8주기 추도식이 열렸다. 정치적인 행위는 여러 가지 해석을 낳고 냉정한 세상을 보게 만든다. ‘정치적’ 만큼 묘한 여운을 남기는 일은 드물다.

 경남에 봉하마을이 있다는 것은 도민의 자랑이다. 봉하마을 들녘을 바라보면서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생각하고 훌륭한 대통령을 떠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노 전 대통령의 불행한 개인사는 많은 사람의 가슴에서 아름다운 눈물로 승화됐다. 노 전 대통령 참배객이 찾는 봉하마을이 순수한 성지로 자리 잡아야 한다. 너무 ‘정치적’이면 성지는 반쪽짜리가 될지도 모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