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립의 이유
직립의 이유
  • 이주옥
  • 승인 2018.05.15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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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옥 수필가

 1천500여 일 동안 누워있던 물체가 일어서는 데 3시간 10분 걸렸다. 그동안 수많은 의혹과 분노와 원한들을 섞어서 아무리 일으켜 세우려고 발버둥 쳐도 꿈쩍도 안 하던 것이, 몇 가지 기술과 몇 개의 도구로 비교적 쉽게 똑바로 섰다.

 사고라는 이름하에 억울하게 떠난 어린 원혼들과 가슴에 몇 기의 무덤을 만들어 두고 원통해 하던 유가족들의 신산했던 지난 4년. 깊고 검은 바다 밑으로 무참히 가버린 자식의 이름을 부르고, 붉다 못해 벌겋게 타버린 가슴에서 핏덩이 같은 울음을 꺼내 던지고 그리고 돌아오지 못할 사람을 향한 허망한 기다림처럼 노란 깃발이 펄렁거리고, 그리움과 원망이 결국은 체념이 돼 서서히 고독해지고 황폐 졌던 곳 진도 앞바다. 그러나 그 많은 사연을 못 들은 척, 그 많은 눈물을 못 본 척, 시침 떼고 절대 일어서지 않던, 아니 일어서지 못하고 녹이 슬고 칠이 벗겨진 채 세월호가 누워있었던 목포항. 그날 이후 진도와 목포의 풍경은 온통 그것만이 배경이 돼 버린 듯하다.

 대한민국 역사에 그보다 더한 비극은 없으리라 감히 생각한다. 상식적으로도, 과학적으로도 용납이 어렵고 이해되지 않은 기기묘묘한 침몰사건. 무려 380여 명의 생떼 같은 목숨이 그냥 수수방관된 채 꺼져 갔던 일은 그저 상흔일 뿐이다.

 “2018년 5월 10일 낮 12시 10분부로 세월호 선체가 직립에 성공했음을 선언합니다.” 선체 직립 담당자의 공식 확인이었다. 현장을 지켜보던 사람들의 박수가 터져 나왔다고 한다. 언뜻 환호처럼 들렸지만 분명 탄식의 박수였을 것이다. 그동안 그곳에 자식을 잃고 형제를 잃은 사람들의 삶은 삶이 아니었을 것이다. 미수습자 5명의 유가족들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마음 졸이는 시간 동안 훼손되고 녹이 슬어가는 선체를 바라보며 그들은 얼마나 수없이 그 선체를 들어 올리고 일으켜 세웠을까.

 세상은 대부분 반듯한 것을 추구하고 요구한다. 그것이 정상이라고 생각한다. 직립은 명확하고 목표물을 향해 똑바로 갈 수 있는 수단이다. 매우 경제적이고 에너지 효율적이고 효과적이다. 인류만 보더라도 직립 보행을 통해 자유로운 두 손을 얻게 됐고 그것은 인류 진화에 놀라운 열쇠였다. 네 발을 이용해야 했다거나 누워서 발만 움직였다면 어떻게 이렇듯 거대한 발전을 가져왔겠는가. 직립은 눕거나 기운 것보다는, 분명 뭔가를 바로 알게 하고 바로 보게 한다. 세월호가 직립을 해야 하는 원론적인 이유였을 지도 모른다.

 천금 같은 인명의 존엄성이 무너지고, 혈육을 무참히 보내고 가슴에 피멍이 들어도 선체가 누워있던 상황에서는 어쩔 도리 없는 상황이 많았을 것이다. 아마 유족들도, 국민들의 마음도 선체처럼 녹이 슬고 망가지며 그렇게 누워 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직립 상태로 정밀 조사가 이루어지면 우리는 상상 밖의 사실들을 알게 될 것이다. 아니 가려지고 숨겨져 있던 사실들을 올바르게 알게 될 것이다. 조만간 그토록 숱하게 짐작하고 ‘카더라’ 했던 일명 ‘유비 통신’의 진실들이 밝혀질까. 무엇보다 미수습자 유족들은 행여나 하는 마음으로 선실을 들여다볼 것이다. 찾지 못했던 유해라도 그 안에 있기를 바라는 마음은 비단 나만의 염원은 아닐 것이다.

 지난 4년 동안 다분히 정치적 선동의 괴담이었던 세월호가 예산 1천억 원의 투입과 1천500일이라는 긴 시간을 지나고 육지에서 완전히 직립했다. 우선은 충돌 흔적이 없기 때문에 괴담은 괴담으로 끝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있을 수 없는 일’이 여전히 ‘있었던’ 일들이었던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큰 사고나 사건이 일어나면 늘 무엇엔가 연루시키고 비하인드 스토리에 무게를 싣게 된다. 대부분은 음성적이고 부정적이다. 반박의 여지가 없는 과학적 근거를 들어 해석을 하고 결론을 내도 얼마간은 받아들이거나 승복하지 않고 그 상황에 머물러 있게 된다. 우리가 의사나 약사에게 처방받은 약보다 오랫동안 구전돼 온 민간요법을 더 믿고 의지하듯이 말이다.

 세월호가 어렵게 직립을 한 만큼, 이제 조금 더 이성적이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철저하게 진상을 조사하고 분석할 시간적 여유가 필요하다. 그것이 녹슬고 부서져 가면서도 직립의 순간까지 버텼던 명분이고 당위성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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