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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강국으로 가는 길
문화강국으로 가는 길
  • 신화남
  • 승인 2018.05.02 19: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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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화남 대한민국산업현장 교수

   임진왜란이 끝나가던 1598년 12월, 왜장 시마즈요시히로는 전라도 남원 등지에서 뛰어난 조선 도공 80여 명을 납치해 일본으로 돌아가 도자기를 굽기 위한 가마를 만들었다. 왜군의 말발굽 아래 고향 마을이 핏빛으로 물들던 날, 미처 피난을 가지 못하고 왜군들에게 끌려 현해탄의 검푸른 파도를 넘어 낯선 미개의 땅에 도착한 조선인 도공들…. 이들 가운데에는 훗날 사스마도기를 개창하는 심당길(沈當吉)과 박평의(朴平意)가 있었고, 심당길의 제15세손인 심수관이 현재까지도 ‘심수관요(沈壽官燒)’를 이어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일본은 조선인 도공 심당길을 도자기의 신으로 추앙하고 있으며 심수관가(沈壽官家)를 일본 도자기 예술의 자부심으로 여기고 있다. 우리 민족의 뛰어난 도공들이 적국 일본에 강제로 끌려가 찬란한 도자기문화를 꽃피웠다는 역사적 사실에 직면하면 어찌 비탄을 금할 수가 있겠는가! 일본의 도자기문화를 비롯한 대다수의 문화 예술은 백제나 가야시대에 우리 선조들로부터 배워간 것이며 임진왜란 당시 우리 민족의 것을 약탈해간 범죄 행위의 소산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본의 도자기문화가 우리 한민족에서 비롯된 것이기는 하나 그들은 도공들이 망향의 한을 달래며 도자기를 만들 수 있는 여건을 충족시켜 줬고 극진히 예우했다. 도자기뿐만 아니라 일본은 한 분야에서 탁월함을 보이는 장인정신을 높이 평가하는 나라이다. 일본의 교토에는 몇백 년 된 음식점이 즐비하다. 초밥이나 우동을 몇 대를 이어오는 음식점들이 널려 있다. 음식뿐만 아니라 각종 식재료도 대를 이어 파는 장인들이 수두룩하다. 일본에는 100년 이상 된 가계나 기업이 2만 3천700개나 된다. 그들은 기술직을 존중하는 의식이 정착돼 있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양반 선비문화가 지배해오면서 예술인이나 장인(匠人)들을 천시해온 결과, 대를 이어 가업을 발전시켜온 경우가 매우 적다. 이탈리아에서는 예로부터 수제(手製) 구두를 만드는 사람은 대단한 명성과 부를 누려 왔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갖바치는 백정과 똑같은 천민 중의 천민이었다.

 봉건 군주시대에는 직업 선택의 자유가 없었다. 양반의 자식은 대를 이어 양반이며 백정의 자식은 대를 이어 백정이었다. 그러나 우리 민족의 문화와 예술혼을 이어온 사람은 양반이 아니라 평민이나 천민들이었다. 그러다가 이 땅에 민주주의가 실시되면서 직업의 자유를 갖게 되자 천대받던 직종들을 자식에게 물려주기를 꺼리는 통에 그 맥이 끊기는 사례가 빈번했다. 우리나라는 손에 흙을 묻히지 않고 오로지 글만 읽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여겨온 탓에 교육열이 가장 높은 나라임과 동시에 대졸 백수가 가장 많은 나라이기도 하다. 일찍이 백범 김구 선생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富力)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백범의 말처럼 가장 인간다운 삶이란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남에게도 행복을 주는’ 문화적 삶이다. 우리가 문화강ㄴ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며 어떤 것에 인생을 걸 것인가? 하는 생각을 어릴 때부터 갖게 해야 한다. 그러나 유치원 때부터 시작되는 치열한 공부 경쟁으로 인해 자신의 타고난 끼를 발견하고 키우기란 참으로 어렵다. 다행히한 학기 동안 학생들이 중간ㆍ기말고사 등 시험부담에서 벗어나 꿈과 끼를 찾을 수 있도록 자유학기제를 실시하게 된 것은 혁신적 교육제도라 할 수 있다. 문화와 예술은 획일성을 거부한다. 어떤 고정된 틀에 얽매여 있으면 창의성의 싹이 자랄 수 없다. 어릴 때부터 자신만의 독창적 사고를 기르고 다양한 경험을 쌓는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21세기는 문화와 예술의 시대이다. 문화와 예술은 인간이 추구하는 최고의 가치이다. 인간이 동물과 구분되는 것에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차이를 확연하게 갈라놓는 것이 바로 문화와 예술이다. 동물에게는 문화와 예술이 존재하지 않는다. 허기를 달래기 위해 먹는 것을 ‘끼니를 때운다’고 하지만 요리하는 과정과 환경, 그리고 맛을 음미하면 문화가 된다. 그러니 어릴 때부터 문화적 소양을 길러주는 것은 삶을 기름지게 하는 것이다. 꼭 문화와 예술분야에 인생을 걸지 않는다 하더라도 사회 전반에 걸쳐 문화와 예술을 숭상하는 분위기가 조성된다면 우리나라는 정신적으로 얼마나 풍요한 나라가 되겠는가! 그윽한 문화의 향기는 우리의 사회와 국가를 여유롭게 하고 개인의 삶 또한 아름답게 하는 가장 소중한 바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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