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0 05:01 (토)
“나이 먹었으니까”
“나이 먹었으니까”
  • 정영애
  • 승인 2018.04.30 21: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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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영애 금성주강(주) 대표이사

 “나이 먹었으니까 늙었으니까 혼자 죽은 듯이 살아야 하는 건가?” 모 방송국 토ㆍ일 연속극에서 남자 주인공이 큰딸에게 던진 자조적인 말이다. 홀아비가 돼 공방을 운영하는 아버지가 평판이 좋지 않은 모령의 여인과 만나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한 큰딸이 아버지의 로맨스에 브레이크를 걸며 따지자 한 말이다. 1남 3녀의 장녀로서 엄마 노릇을 해온 큰딸로서는 아버지가 지금 그대로 자신들의 아버지로만 있어 주기를 바라는 욕심이자 간섭일 것이다. 그러나 자식들은 성장해 성인이 되면 언젠가 제 짝을 찾아 부모 곁을 떠나기 마련이다. 그리고 홀로 남은 아버지는 외톨이로 쓸쓸하게 여생을 보내야 한다. 자식이 내 품안에 있을 땐 외로움을 크게 느끼지 않는다. 그들의 장래 걱정에 그럴 틈이 없고 아내 대신 말벗이 돼 주기 때문이다. 열심히 일해서 뭔가 자식들의 뒷바라지를 하고 싶은 부모 마음이 더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날 문득 옛 사랑의 여인이 찾아와 지난 날의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며 함께 살기를 원한다면 마음이 흔들리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그 추억 때문에 잠시 자신의 기억 속에만 머물렀던 여인의 출현은 내면에 침잠했던 사랑의 열정에 불을 지필 것이다. 사람들은 항상 자신의 처지 중심으로 생각하기 마련이다. 혼자 된 아버지가 무시로 느끼는 외로움과 고독감은 자신들과는 아무 상관없는 관심 밖의 일이다. 어느 날 문득 죽은 엄마를 대신해 새로운 사람(경쟁자)이 나타나면 심한 거부반응을 일으킨다. 그런 반응은 아들보다 딸들이 더 민감하다. 아버지의 새로운 여인은 딸에게 이성이 아닌 동성이기 때문이다. 물론 거부 반응의 이유와 명분은 있을 것이다. 내 아버지가 이 세상에서 제일 최고이기 때문에 아버지의 위상에 걸맞는 평판 좋은 여성이라면 그 거부감은 다소 덜할 것이다. 아니 솔직히 말해서 죽은 엄마를 대신해서 자신들이 덕(?)을 볼 만큼 좋은 사람이라면 거부 반응은 일시적일 것이다. 어차피 인간은 이기적이니까. 편부나 편모의 자식들은 우리 부모만은 죽을 때까지 자식들의 곁을 떠나지 않고 혼자 조용히 죽은 듯이 살다가 돌아가시길 바랄지도 모른다. 부모님의 입장 보다 내 입장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100세 장수시대를 맞아 독거세대수가 570만에 이르며 그 중 65세 이상 독거노인이 135만 명이라고 한다. 고령사회를 맞아 그 추세는 급속도로 증가할 것이다. 나이 70이면 옛날에는 제 수명을 다한 연령대이다. 그러나 요즘엔 칠순 잔치도 하지 않을 만큼 팔팔한 나이다. 내 주변에는 70대 어른이 50~60대 못지않을 만큼 정정한 분들이 많다. 오히려 장년세대보다 더 열정적으로 일하며 활기찬 모습들이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이 실감나는 시대이다. 한창 유행했던 ‘내 나이가 어때서’와 ‘백세인생’이라는 대중가요가 히트 친 것도 그것을 증명하고도 남는다. 이로 미루어 나이든 사람이라고 가슴에 열정과 사랑의 감정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위대한 시성 괴테는 그의 나이 73세에 평소 알고 지내던 여자 친구의 딸인 19세 처녀 울리케에게 사랑을 고백했다. 70 노인이 새파란 이팔청춘에게 청혼을 한 셈이다. 그러나 보기 좋게 거절당하고 실연의 아픔을 달래야만 했다. 그는 실연의 아픔을 10년 동안 가슴에 품은 채 불후의 명작 ‘파우스트’를 완성했다. 그것은 위대한 사랑의 힘이었다. 그 시대에 70이라면 곰팡내 나는 늙은이 축에 들었다. 그러나 그는 실연의 상처를 딛고 20대에 구상한 작품을 뒤늦게 완성시키는 저력을 발휘했다. 어디 그뿐이랴.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시대’까지 완성함으로써 위대한 시성의 노익장을 과시했다.

 한국의 지성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는 지금 98세의 연세에도 불구하고 활발하게 강연과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우리 인생의 최절정기는 60~75세”라고 했다. 그는 지금 100수에 가까운 나이임에도 현역으로 활동하며 인생 말년을 가치 있게 살아가고 있는 존경받는 지성의 사표이다. 이처럼 나이 먹었다고 열정이 식거나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젊든 나이가 들었든 사랑과 열정 없는 삶이란 사막과도 같은 삭막하고 고독한 삶일 뿐이다. 나이든 부모라고 혼자 살기를 바라는 것은 지극히 이기적인 자식들의 욕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비록 연속극 속의 스토리지만 타이틀 그대로 ‘같이 살래요’가 네 자식들의 열렬한 응원과 축복 속에 함께 사는 삶으로 해피엔딩 되기를 기대해 본다. 인생이란 혼자 이 세상에 와서 혼자 떠나는 것이 숙명이지만, 이 땅에 존재하는 동안만이라도 외톨이로 외롭게 살지 말고 누군가와 함께 살다가 떠나야 후회 없는 삶이 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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