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03:45 (금)
못 가진 자의 존재 선언
못 가진 자의 존재 선언
  • 류한열 논설위원
  • 승인 2018.04.25 21:1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부자를 덜 존경하는
사회가 바람직하다.
대한항공 사태로
못 가진 자들의
존재 선언이 더
일어나면 좋겠다.
▲ 류한열 논설위원

 역사는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사이에 벌어지는 모순으로 채워진다. 우리 사회를 둘러보면 실제 모순이 넘쳐난다. 거대한 자본에 노동자는 목을 매고 자신의 권리를 부르짖으며 바위 치기를 한다. 숱한 노동자의 눈물을 기름 삼아 거대 자본은 굴러간다. 노동자들이 막걸리를 마시고 힘든 삶을 되뇌일 때, 자본가는 와인을 마시며 노동자를 더 몰아붙일 궁리를 한다.

 대한항공 노조가 “우린 머슴이었다”고 목소리를 냈다. 대한항공 오너 갑질로 전국이 뜨겁다. 경영진 퇴진운동도 일어날 태세다. 오너 일가의 일탈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허탈해 하고 손가락질한다. 가진 자에 맞서 못 가진 자들의 반란이 일어나고 있다. 끊임없이 드러나는 대한항공 오너 일가의 못된 행동에 웬만한 사람들이 분통을 터뜨린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로 나눠진 사회구조에 반기를 드는 심리는 모든 사람의 내면에 들어있다.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에 그어진 선은 불가침의 영역인데 그 선이 허물어질지도 모른다. 철옹성 같은 재벌 벽이 무너지기까지 갈지는 단언할 수 없지만 그 벽이 조금씩 허물어지는 광경을 보는 것은 그렇게 나쁘지 않다. 대한항공 오너 일가의 도도한 행동에 마음을 찢어야 했던 못 가진 자들의 억눌린 목소리가 우리 귓전에 맴돈다.

 가진 자가 되려는 바람은 우리 인간의 마음 밑바닥에 깔려 있는 욕구다. 사회 전반에 모순의 카펫이 깔려 있어도 이 모순 딛고 가진 자 쪽에 서려는 사람이 많다. 그래서 대한항공 오너 일가를 보면서 한풀이하는 사람도 있다. 내가 가진 자가 되지 못할 바엔 그쪽을 향해 욕이라도 실컷 하고 싶은 게 나 같은 소인배의 솔직한 심정이다.

 가진 자를 존경하는 사회는 미래가 없다. 흙수저를 물고 태어난 사람이 금수저 휘두르는 사람을 따라가면 가랑이가 찢어진다. 흐르는 물을 거슬러 올라가기는 힘들다. 개천에서 용이 나기도 힘들뿐더러 용이 되려다 지렁이로 전락하는 사람들은 견고한 사회구조를 탓한다. 못 가진 자의 반란은 간혹 우리 사회에 신선한 물을 공급하는 구실을 한다. 이들이 있어 우리 사회에서 밑으로 기는 사람들이 희망을 노래할 수 있다. 이 발칙한 못 가진 자에게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대한항공이 하늘을 날면서 못 가진 자에게 선물 아닌 선물을 뿌리고 있다

 세상을 단순구조로 펼쳐 보면 가진 자는 항상 못 가진 자 위에 군림한다. 못 가진 자는 가진 자를 겉으로 타도의 대상으로 삼으면서 억지로 존경하기까지 한다. 부자를 존경하는 사회에 희망을 걸 수 있을까. 인간은 돈에 굴복해 살지만 돈을 많이 가진 사람을 겉으로는 내치는 이율배반적인 태도를 보인다. 지금까지 부자가 되는 과정에서 덮여 있던 불공정 행위를 못 가진 자가 애써 외면하지만, 기회를 만나면 폭발하기도 한다. 대한항공 노조가 머슴을 들먹였다는 것은 존재를 찾는 외침이다. 이제 시작일 뿐이다. 못 가진 자들의 외침이 사회 전반에 퍼져야 한다.

 존경하는 사람을 돈 많은 사람에 두면 실망하기 쉽다. 돈이 권력인 사회는 천박한 사회일 뿐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돈 때문에 인간이 기본적으로 누려야 할 권리를 포기한다.

 가진 자는 못 가진 자에게 아량을 베풀 줄 모른다. 우리 사회에서 가진 자로 서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의 희생이 따르지만 다른 사람의 희생을 생각하는 가진 자는 없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든 운이 좋아 금수저를 매일 사용하든 우리 사회에서 금수저와 흙수저의 모순을 지워내기는 힘들다. 역사가 말해주듯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는 한배를 탈 수가 없다. 거대한 모순의 강을 사이에 두고 함께 손을 잡기는 힘들다. 이는 역사가 말하고 현재 우리 사회는 이것을 증명하고 있다. 부자를 덜 존경하는 사회가 바람직하다. 대한항공 사태로 못 가진 자들의 존재 선언이 더 일어나면 좋겠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