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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루킹’이 우리에게 남긴 숙제
‘드루킹’이 우리에게 남긴 숙제
  • 이대형 서울지사 정치부장
  • 승인 2018.04.24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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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대형 서울지사 정치부장

 필명 ‘드루킹’으로 불리는 민주당원의 댓글 조작 사건이 우리나라 정국을 휘감았다.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 등 여권에서는 이 사건을 개인의 일탈로 간주하고 있지만 문재인 대통령의 최측근인 김경수 의원이 연루됐다는 사실이 드러난 만큼 이 사건은 민간인 차원을 넘어선 사건임이 틀림없다. 사건 발생 초기부터 현재까지 경찰의 수사 태도는 의혹을 해소시키기보다 오히려 의혹을 증폭시키기에 충분했다.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은 여론의 공론화 장인 인터넷 공간을 인위적으로 조작해 민의를 왜곡시키고, 특히 선거 정국에서는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양산한다는 점에서 중대한 범죄가 아닐 수 없다. 또한 헌법이 보장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공정한 선거 문화를 타락시킨다는 점에서 자유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엄중한 사건이다.

 과거 국정원 댓글의혹 사건으로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치렀음에도 유사한 사건이 발생한 것 또한 유감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사건이 반복될수록 국민들로 하여금 정치에 대한 불신감을 쌓게 해 결국 정치 냉소와 외면으로 또 다른 사회적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특검으로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에 대해 한 치의 의혹도 없이 철저히 진상을 규명해 더 이상 자유민주주의가 왜곡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방송 출신의 한 국회의원이 포털로 하여금 뉴스 이용 독자에 관한 데이터를 언론사들에게 제공하도록 하는 법안을 발의한다고 한다. 분명 반가운 사실이다.

 그나마 근래에 포털 관련 정책 중에서 가장 고민다운 고민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즉 고민의 방향이 그럴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씁쓸하다. 우선 타이밍이 많이 늦었다는 점에서 그렇다. 실제로 이미 관련 데이터가 언론사들에게 제공되고 있다. 뒷북 같다는 느낌이다.

 씁쓸하게 만드는 또 다른 이유는 제 밥그릇도 챙겨 먹지 못하는 언론의 모습을 또 보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다. 그렇게 무능하다고 욕하던 국회에서 발의될 때까지 언론은 도대체 뭘 했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법안이 통과돼도 그다지 별다른 소득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저 포털에게 굴레 하나를 더 씌웠다는 즐거움에 그칠 공산이 크다.

 오랫동안 우리 언론사들은 독자에 대해 무신경해 왔다. 기업에게 ‘고객 만족’을 강조하는 기사를 쓰면서 정작 자신의 고객에 대해서는 철저히 무신경했다. 따라서 지금 포털이 독자에 관한 정보를 각 언론사에게 제공한들 얼마나 이용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거듭 말하지만 지금도 그 정보는 언론사에게 제공되고 있다. 그 정보를 이용하기보다는 ‘실검 기사’ 하나 잘 쓰는 게 훨씬 ‘효율적’인 ‘환경’을 탓하고 싶다.

 워싱턴포스트나 뉴욕타임즈, 가디언 등 해외 언론사들이 피 터지게 독자를 분석하고 독자에게 다가가려 노력할 때도 우리는 독자를 생각하지 않았다. 이제 그 노하우의 격차는 제법 많이 벌어져 있다.

 포털로부터 정보를 받아봐야 언론사별로 대동소이할 것이라는 얘기다. 그 데이터는 포털 독자에 대한 정보 성격이 더 크기 때문이다. 실제로 코리안클릭의 인구통계분석이나 현재 포털이 제공하고 있는 언론사별 데이터를 보면 언론사별로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이것이 지금의 국내 언론의 가장 큰 문제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 속에 언론의 어리석고 잘못된 판단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또 포털과 언론과의 관계 맺기를 잘못한 역사와 그것을 지원하고 바로잡아야 할 언론단체나 기관의 무지와 무능의 역사가 녹아 있다고 본다. 드루킹 사건이 인터넷 선진국인 우리에게 많은 숙제도 함께 남긴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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