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30 00:12 (토)
“이 세상 떠나는 날까지 봉사하는 게 꿈이죠”
“이 세상 떠나는 날까지 봉사하는 게 꿈이죠”
  • 이병영 제2사회부 부장
  • 승인 2018.04.16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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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병영 제2사회부 부장

 대한적십자사 경남지사와 각 봉사단체를 출입하는 기자로서 오랫동안 수많은 봉사활동의 사례를 보도 했지만 이번만큼 가슴이 뭉클한 사연은 접할 기회가 자주 없는 것 같다. 그래서 경남적십자사 경남지사 홍보담당 김은지 씨의 자료를 바탕으로 일일이 봉사원들의 소개를 다 하질 못할 것 같아, 본지의 e시각에 소개해 지면을 할애해 볼까 한다.

 우선 이같이 좋은 자료를 제공한 대한적십자사 경남지사에 감사의 말을 전하면서 행사의 소개 및 ‘노란 조끼의 천사’들의 봉사활동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자.

 대한적십자사 경남지사(회장 김종길)는 지난 12일 창원시 성산구 인터내셔널 호텔 본관 2층 로망스홀에서 만 77세 이상 고령 적십자 봉사원에게 ‘노란 조끼의 천사, 감사패 전수식’을 진행했다.

 ‘노란 조끼의 천사, 감사패 전수식’은 경남의 고락을 함께한 77세 이상 고령 봉사원들의 노고에 존경과 감사를 표하기 위해 준비됐다. 이날 전수식에 참여하는 봉사원은 적게는 2천시간부터 많게는 1만 9천시간까지 평생을 봉사에 헌신해온 진정한 노란 조끼의 천사들로서, 전수식에서는 감사패 전달뿐만 아니라 국회 보건복지위원장 표창, 대한적십자사 회장 표창 등이 전달됐다.

 이 자리에서 대한적십자사 경남지사 김종길 회장은 “적십자 인도주의 정신을 가슴에 품고 평생 봉사에 헌신하신 적십자 봉사원님들은 우리 모두의 자랑이자 자부심이다. 적십자 가족을 대표해 존경과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고 정중히 인사를 전했다.

 특히 이날 행사장에서 ‘노란 조끼의 천사’ 감사패를 전수받은 고령 봉사원들 중 세 분의 봉사스토리는 다음과 같다.

 △황인해 봉사원(만 81세ㆍ창원용지동봉사회)은 봉사기간이 54년이며, 봉사시간은 1만 9천378시간이다. 적십자 간호학교 졸업 후 간호사로 일하다 결혼 후 적십자 봉사회에 가입했으며, 주요 봉사활동은 월남전 참전군인 급식, 농촌일손돕기, 독거노인 방문 등이다.

 황인해 봉사원은 “월남전 참전군인 급식을 하러 가면 하루종일 눈물을 줄줄 흘리며 양파를 썰어도 봉사를 할 수 있다는 게 기뻤어요”라고 당시 소감을 말했다.

 이어 “옛날에는 농촌 일손 돕기를 많이 갔는데, 어느 미망인이 농사짓는 논에 모심기를 하러 갔었어요. 옛날에는 양 끝에서 줄을 잡아서 모 심을 자리를 표시해줬는데 한참 일을 하다 보니 모 줄이 없어진 거야. 왜 줄을 안 잡아 주냐고 물었더니 사진 다 찍었으니 갈 거 아니오 하더라고. 그래서 모가 이만큼이나 있는데 어딜 가냐고 다 해주고 왔어요. 그러고 사흘 동안 앓아누웠었지. 그래도 즐거웠어”라고 했다.

 △김복순 봉사원(만 84세ㆍ마산합포교방동봉사회)은 봉사기간이 54년이며, 봉사시간은 1만 1천286시간이다.

 김복순 봉사원은 남편이 공무원이었는데 그 당시 공무원 부인들이 적십자 봉사회에 많이 가입해 자연스럽게 적십자 봉사원으로 입회했으며, 주요활동은 김해지역 고아원 봉사활동(목욕ㆍ미용), 국군통합병원 봉사활동(입원 장병 병간호ㆍ생일잔치ㆍ청소 등)이다.

 “국군통합병원이 마산에 있어서 전국 군인들이 마산역을 통해서 왔어. 우리 집이 마산역 앞이라 역에 도착한 군인들을 우리 집으로 데려와서 우유와 죽을 대접하고 병원으로 데리고 갔어요. 군인들은 간호해 줄 가족이 없으니까 우리가 간호도 하고 생일이면 생일잔치도 열고 그랬어요. 그 당시에는 고무장갑도 없을 때인데 피고름 묻은 빨래를 맨손으로 하면서도 한 번도 힘든지 몰랐어요”라며 당시를 회고했다.

 △성명숙 봉사원(만 84세ㆍ거창아림봉사회)은 봉사기간이 47년이며, 봉사시간이 1만 5천519시간이다.

 성병숙 봉사원은 전 거창군청 공무원으로서 당시 여성 공무원들은 적십자 봉사원으로 많이 활동해 자연스럽게 적십자 봉사회에 입회하게 됐으며 주요활동은 농번기 급식봉사활동, 화재 현장 환경미화 등으로 실시했다.

 “그 당시에는 다들 농사를 업으로 살았잖아요. 농번기가 되면 우리 적십자 봉사원들이 가서 참으로 국수도 삶아 주고 밥도 해주고 그랬어요. 요즘은 마음만 먹으면 어디든 갈 수 있지만 그 당시에는 기동력이 없어서 다른 면으로 이동하는 일이 아주 큰 일이었는데 우리 봉사원 중에 남편 몰래 다른 면에 국수 봉사 갔다가 쫓겨날 뻔하고 그랬어요. 여러모로 여건은 척박했지만 다른 봉사원들이랑 같이 봉사활동을 다니고 부산에 교육받으러 가고 하면서 우리끼리 참 즐거웠어요”라고 당시를 떠올렸다.

 아직도 몇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봉사활동을 하고 나면 자식들이 잘 됩니다.” 자기는 남의 집 월세에 살고 있지만 남을 위해서라면 어디든지 찾아다니면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신마산 월영동 떡집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귓전을 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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