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이시습지면 불역열호아
학이시습지면 불역열호아
  • 이광수
  • 승인 2018.04.15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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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광수 주역명리작명가

 우리 같은 60 이후 세대는 한글세대로 한자 공부를 하지 않았다. 문교부의 한글 전용정책으로 천자문 근처도 가보지 못했다. 국ㆍ영ㆍ수 공부에 매달려 중ㆍ고ㆍ대학을 치열한 경쟁을 거치며 통과했다. 그 때 나는 인문고에 입학해 대입 국어시험에 출제되는 한자에 대비해 개설한 한자기초과정을 한 학기 이수한 게 전부다. 이때 그 유명한 논어 학이편(學而編)에 나오는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 때때로 배우고 익히면 기쁘지 아니 한가)이다. 입시공부에 빠져 있을 때이니 가슴에 절절히 와 닿는 명언이었다. 그러나 한자 공부는 국어시험에 출제되는 한문 한두 문제를 대비한 구색맞추기식 과정이었을 뿐이다. 졸업 후 한자와 인연을 끊었으나 다행히 공직에 진출해, 쓰는 한자 실력은 부족해도 읽는 것은 많이 익히게 됐다. 공문서도 한글전용이었으니까. 나는 천성이 공부하는 게 취미일 정도로 배우기를 즐겨서 독서광이었다. 논어 등 4서도 번역본을 사서 읽었는데 오래돼 가물가물하다. 번역 자체도 직역이라 무슨 뜻인지 내용파악이 힘들었다. 한자 원전이 책 부록에 붙어 있었지만 써먹을 몇 구절 빼고는 읽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니 한자 교육을 등한시한 문교정책의 희생양이 바로 우리 이후 세대가 아닌가 생각된다. 이제 뒤늦게 시간 여유가 생겨 한문 공부를 하면서 동양고전들을 접하게 돼 다행스럽기는 하지만 한자기초가 부실하니 옥편 찾기가 예사 고역이 아니다. 동양고전과 역서 수십 권을 탐독하며 문중지 등 책도 집필하고 중국어 회화공부까지 했지만 한문의 진수를 터득하기엔 태부족임을 절감한다. 그러나 요즘 고전번역원과 신진 한학도들이 제대로 된 번역본을 출간하고 있어 동양고전을 공부하기가 한결 편해졌다. 몇 년 전 우연한 기회에 명리학을 접하게 돼 주역까지 그 영역을 넓히다 보니 온갖 중국 고전들을 섭렵하게 됐다. 그중 주역은 6경의 하나인 역경을 주나라 문왕이 치도로 삼아 널리 전파시킨 경서의 정수로 옛날 우리 선비들이 과거급제 시 반드시 이수해야 할 필수과목이었다. 4서 6경에서 시험문제를 출제하니 그 어려운 공부를 수십 년 해야 겨우 사마시와 대과를 거쳐 초급관리로 등용돼 입신양명의 길이 열렸다. 경쟁률로 따지면 지금의 공시ㆍ행시ㆍ사시의 몇십대의 일은 조족지혈이다. 수만 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합격의 영광을 안았으니 공부고생이 오죽했겠는가. 이조 시대엔 양반집 규수들도 한학에 통달했다고 하니 학습 열풍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 것 같다.

 내가 어쩌다 사주 명리학에 입문해 최고 경지인 주역까지 공부하다 보니 짧은 한문 실력에 곤욕을 치르고 있다. 그러나 5언, 7언 절구로 된 짧은 글 속에 담긴 내용들을 해석해 보면 그 심오한 사상에 가슴이 떨린다. 한글로 풀어쓰면 다섯 줄을 써야 할 내용을 5~7자로 함축시켜 놓았으니, 깨치고 이해하는 과정은 비록 힘들어도 한문 고유의 정형률이 있어 마치 노래 한 곡을 부르는 기분으로 낭송하면 참으로 즐겁다. 특히 역서로 번역한 서책들은 한결같이 부피가 크다. 한자를 풀어쓰다 보니 어쩔 도리가 없다. 1권이 보통 800쪽에서 1천쪽에 가깝다. 그러나 실상 읽어보면 책장은 잘 넘어간다. 한글 단행본 300쪽을 하루 만에 독파하기엔 무리다. 하지만 난해한 주역서나 명리서도 한문에 주석을 달아 번역한 글이라 대 분량의 책도 하루면 독파가 가능하다. 얼마 전 구입한 주역 관련 매화역수, 하락이수, 황국경세도 12권이나 되지만 1주일 만에 독파했다. 다른 명리서인 자평진전, 적천수, 궁통보감, 귀장술, 구성학, 육효, 육임서도 거의 800쪽이 넘지만 슬슬 읽어보면 생각보다 책장이 잘 넘어간다. 물론 1독으로 서책 내용을 통해하기는 역부족이지만 중요 내용 글 아래에 형광펜으로 밑줄을 긋고 상담 시 활용할 요량으로 표시해 두면, 수십 회의 상담 증험 때 반복해서 읽게 돼 저절로 암기된다.


 저자의 당부 중 하나가 무조건 백독을 하면 그 분야에 도통 지경에 이른다고 신신당부한다. 그런데 그게 인간의 게으름 때문에 실천하기는 말처럼 쉽지가 않다. 주역의 경우 우선 4상과 8괘의 상의(象意)를 암송할 정도가 돼야 문점 사항에 맞게 해당 항목을 적용해서 정단할 수가 있다. 그리고 64괘의 괘상(卦象)과 계사(卦辭)를 머리에 담고 있어야 하며, 나아가 변효인 384효의 각 효사 20개 항목을 꿰뚫고 있어야 문점자의 물음에 길흉과 성사 여부를 정단할 수가 있다. 육임의 경우에는 4과 3전의 해석 후 일시별 720국의 항목별 길흉성사 여부를 꿰뚫고 있어야 대답할 수가 있다. 한 인간의 능력으로 이런 많은 내용을 암기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그러나 많은 임상 증험을 통해 반복해서 읽다 보면 기억의 잔상으로 80% 정도는 정단할 수가 있다. 소위 도사라는 사람은 이 모든 것을 수십 년간 학습에 정진해 터득한 술사들이다. ‘학이시습지면 불역열호아’는 이런 역학 분야뿐만 아니라 자기가 하고 싶은 분야를 공부하는 데도 좋은 지침이 되는 경구이다. 놀이에 등산, 마라톤 등 운동하는 것도 좋지만 육체가 쇠퇴하는 시기의 무리한 운동은 오히려 몸을 상하게 한다. 노후 은퇴기의 학습은 치매를 예방하고 마음을 수양하며, 욕심을 비워 안빈낙도의 삶을 즐길 수가 있어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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