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4 23:31 (수)
폭풍의 언덕을 읽고
폭풍의 언덕을 읽고
  • 은 종
  • 승인 2018.03.26 21: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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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 종 시인ㆍ독서지도사ㆍ심리상담사

 특정한 한 권의 책이 독자층을 많이 확보한다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숨어있을 것이다. 세계 10대 명작으로 손꼽히는 ‘에밀리 브론테’의 작품, ‘폭풍의 언덕’이 200여 년이 흐른 지금까지 왜 젊은이들 사이로 회자하며 인기를 누리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소설의 전개 내용을 암시해 주는 전체적인 갈등구조는 두 가정(家庭)의 입체적인 건물에서 시작되고, 이 두 공간이 주는 인상은 인물들의 갈등만큼 대조를 이룬다. 한 곳은 난폭하기 이를 데 없는 폭군이 지배하는 공간, 또 다른 한 공간은 성품이 온화하면서 신사다운 사람이 주인으로 있어 그 울타리 안에서는 지상의 낙원이라 할 만큼 깊은 신뢰와 사랑이 흐르는 곳이다. 양가가 기분 좋게 왕래하기엔 필요 이상의 장애물들이 놓여있다. 깊고도 위험한 계곡, 이리저리 뻗어져 있는 나무들, 잦은 폭우와 진흙탕, 사나운 사냥개, 전혀 닮은 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인물들의 성격들이 눈에 띈다.

 공존하는 인간의 세계를 들여다보면 먼저 악의 존재를 허용하는 사람들을 통해 균열과 상처가 생기기 마련이다. 이렇듯 대조를 이루는 두 가정의 교류는 오래가지 못한다. 서서히 암흑의 그림자가 다가오기 시작한다. 출생의 근거가 불분명한 ‘히스클리프’라는 인물을 등장시켜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그는 배신과 복수로 점철돼 있어 언행이 거칠고 극단적인 인물로 묘사된다. 선과 악을 철저히 구분시키는 이분법적 구조로 진행되는 이 소설은, 끝내 악의 화신이었던 인물은 파멸시키되 족보에서도 더는 등장시킬 이유를 찾지 못한다. 결국, 대를 잇게 되는 가문은 이웃에게 선을 행했던 양심의 주인공이 사는 가정이다. 결론은 권선징악이라는 교훈에 도달하지만, 그 당시 영국의 계급구조를 엿볼 수 있고 특권층의 토지확장, 재산, 상속, 결혼제도의 모순을 고발하고자 하는 의도가 깔려있음도 알 수 있다.

 소설의 구성은 전체적인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내레이터가 있고 그 이야기 속에 또 다른 내레이터가 이야기를 펼쳐 나가는 형식이다. 사회적 경험이 많지 않은 여성으로서 어떻게 이 거친 표현들을 썼을까에 대해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사람의 마음, 특히 악의 본성을 다루는 것에는 그 어떤 유사성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종교적 색채가 전체적 바탕에 깔려 있어, 등장인물의 사고나 행동에 선과 악의 잣대가 따라다니는데 이런 부분에서 작가의 신앙 세계도 엿볼 수 있다. 죽음을 다루는 부분에는 마치 작가 자신이 때 이른 죽음을 맞이할 것을 예견이라도 하듯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다. 몸이 병들고 허약해지면 누구나 이르게 되는 세계, 즉 사후에도 내세가 존재한다는 것을 부각하면서 은근히 등장인물들의 행동거지에 대한 책임감을 부과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지상에서의 치명적인 사랑을 죽음 그 이후까지 연결하는 것은 현존에 대한 비참함, 더 나아가 자신을 파멸시키는 연쇄 고리라고 독자들에게 암시해 준다. 이 땅에서 유한한 삶에 대한 인식이 필요하며 만일 허락되지 않은 사랑에 대해서는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키도록 권고하고 있다.

 뛰어난 예지력과 깊은 사색을 통해 얻은 사물에 대한 통찰력, 자연에서 얻은 풍부한 감수성과 상상력으로 많은 독자를 확보한 에밀리 브론테, 그녀는 우리가 잘 아는 ‘제인 에어’의 작가 ‘샬럿 브론테’의 여동생이기도 하다. 그들은 가난한 목사 가정에서 태어나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이모로부터 양육을 받는데 이모가 아이들을 선천적으로 좋아하는 타입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에밀리는 언니들에게 강한 애착 반응을 보이게 된다. 유일한 정신적 안식처였던 언니 셋 중, 두 명이 폐렴으로 죽고 만다. 그래서 그녀는 기숙사로 보내졌지만, 그곳에서도 적응하지 못해 향수병을 앓게 된다. 결국, 신경이 극도로 예민해져 집으로 돌아와 살림을 도우면서 소녀 시절을 보내게 된다. 이때, 많은 책을 섭렵하게 되는데 훗날, 그녀가 작품을 구상하는데 밑거름이 되고 대작을 완성하는 데 있어서 토양이 됐다고 한다.

 세계적 베스트셀러인 성경이 우리 삶의 원형, 본질을 다루는 것이라면 뿌리 깊은 고전은 삶의 가지들이 자라는 것을 도와 전통과 윤리, 가치를 더욱 뚜렷하게 만들어 생을 의미 있게 살도록 도와준다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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