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04:24 (금)
자연과 더불어 사는 이탈리아
자연과 더불어 사는 이탈리아
  • 김성곤
  • 승인 2018.03.21 22: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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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곤 교육학 박사ㆍ독서치료전문가

 도시 전체가 박물관 같은 로마! 분수의 도시라는 명성에 걸맞게 분수가 많았고 그 가운데 트레비 분수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트레비 분수를 등지고 서서 동전을 던져 넣으면 다시 로마를 방문할 수 있다고 하는 속설이 있지만 그런 속설을 믿기에는 나이가 너무 들었나 보다. 동전을 던지지 않고 그 돈으로 분수 앞 가게에서 본젤라또를 사 먹었다. 오드리 헵번이 주연한 영화 ‘로마의 휴일’에 나오는 스페인 계단도 밟아 봤다. 바티칸 시티도 가봤는데 너무 많은 조각들과 미술품으로 눈이 피곤할 지경이었다. 미켈란젤로의 천장 벽화는 역시 장관이었고 그 웅장함에 압도됐다. 거리에는 로마의 오래된 건물과 잘 어울리는 우산소나무가 많았고 소나무가 거리의 풍경을 한결 아름답고 고풍스럽게 했다.

 로마를 거쳐 냉정과 열정이라는 일본 영화로 더 유명해진 피렌체 두오모 성당과 가죽공예로 유명한 토스카나 지방을 거쳐 피사의 사탑도 봤다. 토스카나 지방의 끝없이 펼쳐진 초원은 장관이었고 동화 ‘장화 신은 고양이’가 생각나게 했다. 멀리 산 위로 보이는 것이 만년설인가 했더니 돌이란다. 아! 이렇게 돌이 많아서 돌로 집도 짓고 조각도 하는구나! 이해가 됐다. 언제봐도 신기한 피사의 사탑! 인터넷에 올려놓은 피사의 사탑 사진들을 보면 쓰러지는 탑을 손으로 바치고 있는 사진들이 있던데 그 모습을 흉내 내려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뭐든 쉽게 되는 건 없나 보다.

 이른 아침 전세버스에서 내려 기차를 타고 이탈리아 중부 레반토 지역 바닷가에 있는 친퀘테레로 향했다. 친퀘테레는 면적 3천860㏊ 인구 4천189명이 거주하는 해안마을로 1997년 마을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친퀘테레는 이탈리아어로 ‘다섯 개의 마을’이란 뜻이다. 바위 해안을 따라서 몬테로소, 베르나차, 코르니글리아, 마나롤라, 리오마조레 5개의 마을이 있다. 전체 18㎞ 길이의 마을들은 화산 폭발로 화산재에 묻혀 있다 1748년에 발굴 작업이 시작돼 빛을 보게 된 것이다. 마을은 절벽 위의 좁은 길로 연결돼 있고 교통수단은 기차뿐이다. 친퀘테레에서는 마을과 마을을 걸으며 마을에서 숙박을 하고 여행을 즐기는 사람들로 늘 붐빈다. 다섯 개의 마을 중 걷기여행자들이 즐겨 찾는 곳은 리오 마지오레에서 시작돼 마나롤라를 잇는 코스로 ‘비아델라모르’라는 연인의 길로도 유명하다. 그곳에는 연인들의 사랑의 약속을 간직한 자물쇠 더미가 울타리를 가득 채우고 있다.

 내가 다녀온 곳도 마나롤라와 리오마지오레이다. 리오마지오레에 가기 위해 라스페치아에서 기차를 타고 역에 내려서 마을 중앙으로 걸어서 갈 수 있는 터널을 지나면 아름다운 리오마지오레의 그림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마치 미로 같은 골목에는 오밀조밀 대문들이 길과 맞닿아있었고 벼랑 끝과 벼랑 위에도 집들이 매달리듯 붙어 있고 형형색색의 물감을 뿌려 놓은 듯 정겨운 집들, 파란 하늘, 파란 바다는 밀라노의 부자들이 고요한 사치를 즐기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는 말이 실감이 나게 했다. 계단식 땅 위에는 포도나무와 올리브나무가 줄지어 있었으며 여행객들이 다니는 길 위에도 여전히 작은 배들이 쉬고 있었고 그곳의 사람들은 우리에게 특별히 친절하지도 않았고 여전히 어부로 물고기를 잡기도 하고 여행객들에게 민박을 제공하며 자신들의 일에만 집중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부담 없어 좋았다. 집 대문 앞에는 갓 잡은 물고기와 밭에서 갓 따온 흙 묻은 토마토와 야채가 놓여 있어서 지나가는 여행객들에게 집 생각이 나게 했다.

 마지막 여행지는 베니스이다. 갯벌 위에 나무를 박아 조성한 물 위의 도시 베니스 나무가 썩지 않을까? 하고 의구심을 가졌는데 짠 바닷물에서는 나무가 썩지 않는다는 가이드의 말을 들었음에도 항구에 내릴 때 바다 한가운데 건물을 바치고 있는 나무기둥들을 보는 것은 역시 신기했다. 베니스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종탑에 올라 베니스 시내를 보는 것은 장관이었고 유럽에서 두 번째로 만들어진 298년 된 카페에서 핫초코를 사 먹었다. 카페 안은 예전의 모습을 간직한 듯 특별히 꾸밈없이 자연스러운 모습이어서 처음 방문하는 사람도 주눅 들지 않고 편했다. 지나치게 달지도 않으면서 부드러운 핫초코는 여행의 피로를 풀어줬고 세계각지에서 모인 사람들의 여유 있는 얼굴과 웃음에서 평온함이 느껴졌다.

 이탈리아의 거리를 지나가다 보면 헌책을 가득 내놓고 파는 길 책방을 볼 수 있는데 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는 이탈리아 사람들의 아나바다 정신이 생활 속에 스며 있었다. 성당 바닥의 타일 하나조차도 복원사를 불러서 수리하는 모습에서 전통을 존중하는 이탈리아 사람들의 정성스러운 삶의 태도를 볼 수 있었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나는 일상의 소중함과 평범한 삶의 소중함을 새삼 깨닫게 됐고 손때 묻은 집안의 가구와 옷가지들이 더 소중하게 여겨졌다. 이번 여행에서 나는 낡은 것의 아름다움과 오래된 것들에 대해 새삼 고마움을 느끼게 됐다. 그리고 나도 그렇게 오래 봐도 질리지 않는 사람으로 남고 싶은 소망도 가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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