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서 잘 하는 일
알아서 잘 하는 일
  • 김혜란
  • 승인 2018.03.21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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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혜란 공명 소통과 힐링센터 소장ㆍTBN 창원교통방송 진행자

  시진핑이 영구집권에 들어갔다고 전 세계가 중국대륙에 관심 집중이다. 공산당의 특징 때문도 있겠지만 100% 찬성으로 얻은 권좌다. 러시아의 푸틴도 꽤 오래 집권할 태세다. 큰 표 차이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 리더들이 더 만만치 않아 보인다.

 일본은 아베 수상의 현재 상태로 볼 때 장기집권은 힘들 것 같아 보인다. 오히려 가까운 시일 내에 돌파구를 찾지 않으면 낙마설까지 나온다. 그래선지 남북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에 이른바 ‘재팬 패싱’이 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면서 동시에 일본국민의 시선을 돌릴 건수도 애써 찾고 있다. 180도 노선을 바꾼 아베 수상은 문재인 대통령과 통화 중에 일본인 납치자 문제에 대해 북과 해결할 수 있기를 원했다고 한다.


 일본 국민 중에는 사학비리에 갇힌 아베 수상을 물러가라 하면서 한국의 촛불집회를 부러워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웃프다. 촛불집회가 자랑스러운 면도 있지만 사실은 남들이 부러워할 정도의 긍정적인 종류의 일은 아니지 않은가. 촛불을 든 이유 면에서 그렇다.

 아베 수상이 사학비리에 연루된 사실을 거짓말로 덮으려는 시도가 일본 국민들에게 더 심각하게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 생각하기 싫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이나 이명박 전 대통령이 자연스레 겹쳐진다. 특히 최근 다시 회자되는 일본사회의 ‘손타쿠(忖度)’란 단어는 우리와 절대로 관련이 없지 않다. ‘남의 마음을 미뤄 헤아리는 일’을 ‘촌탁(忖度)‘, ‘손타쿠’라고 하는데, 이미 지난해에 일본사회를 표현하는 말로 뽑혔던 단어다. 역시 아베 수상의 사학비리 관련해서 떠오른 말이다.

 손타쿠의 어원은 중국 고전 시경이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미리 헤아려서 안다(他人有心予忖度之)”에 나온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지위가 높은 사람이 일일이 지시하지 않아도 아랫사람이 알아서 일을 처리한다’는 뜻으로 바뀌었다. 지난해와 최근, 아베 수상의 고공지지율을 단숨에 끌어내리고 수상 자리에 심각한 위기를 가져온 사학비리에 대해 외국인 기자들이 질문했을 때 그 사학의 이사장이 대답했다고 한다. “총리가 직접 지시하지는 않아도 주변 사람들의 손타쿠가 있었을 것”이라고.

 지난해부터 소셜미디어에서부터 퍼진 일본의 유행어 ‘손타쿠’는 일본 사회 특유의 문화를 반영한다고 분석한다. 관료가 정치인들에게 알아서 머리를 숙이거나, 집권당 의원들이 지도부에게 제명당하지 않기 위해 당 주류와 다른 목소리를 내지 않으려는 태도가 모두 이 손타쿠 문화의 일환이라는 것이다. 심지어 일본인들은 분노하면서도 즐기는 것 같기도 하다. 지난해 말에는 일본 편의점에는 ‘손타쿠 도시락’도 등장했다. 너무 비싸서 팔리지는 않았다고 하지만.

 ‘촌탁(忖度)’이란 말, 우리는 낯설지만 엄연히 국어사전에도 있는 말이다. 동시에 우리 사회에도 알게 모르게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현상이다. 마치 흑역사처럼 느껴진다. ‘남의 마음을 미뤄서 헤아리는 일’은 ‘배려’와 같은 의미로도 받아들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그 부정적 쓰임새가 일본 못지않다. 가장 가까운 예로 이명박 전 대통령의 혐의들, 다스 의혹부터 시작해서 저렇게 일관되게 돈과 관련을 지을 수 있나 싶을 정도의 수많은 비리들에 대해 검찰에서 한 대답에도 이런 냄새가 난다. ‘아랫사람들이 알아서 했을 것 같지만 자신은 모르는 일’이라고. 그게 바로 자신의 아랫사람들의 ‘촌탁’, ‘손타쿠’ 때문이라는 거 아닌가. 비겁하게 떠넘기는 수법을 썼고 그의 이른바 아랫사람들은 모두 이명박 전 대통령이 시켜서 한 일이라고 했다. 어쩌면 한 명도 진짜 좋은 의미의 ‘촌탁’을 한 사람이 없는지 그 점도 연구대상이다.

 여기서 그냥 넘어가면 안 될 일이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비리들이 놀랍다 못해 지겹다고 욕하는 우리는 과연 ‘촌탁’인지 ‘손타쿠’에서 자유로울까. 절대 자유롭다고 말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우리 사회 적폐 대상으로 된서리를 맞고 있는 채용 비리부터 시작해, 평범한 회사생활과 일상에서조차 윗사람이나 권력자의 눈치를 봐서 미리 ‘알아서 기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오히려 그걸 못하면 눈치 없다고 인사고과점수 덜 받는 일도 있을 것이다. ‘알아서 잘 하라’던 선배의 충고는 하면 안 되는 부분까지 헤아려서 해버려야 무사한 일들이 된 경우도 많지 않았을까.

 권력을 가진 자의 횡포에 눌려 시작했다고 상황 탓할 수도 있다. 하지만 스스로 ‘알아서 기는’ 행태가 이미 익숙해진 모습이 내게 없는지 돌아본다. 전 대통령들과 이웃나라 수상의 위기는 그들만의 것이 아니라는 데까지 생각이 미친다. 누군가가 그런 일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라고 말한다면 아직도 뜨거운 맛을 못 봐서 일 것이니, 아예 가까이하지를 말자.

 강대국들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으려면 그들을 따라 할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 우리 자신을 나락으로 떨어트릴 원인을 스스로 제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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