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8 23:09 (목)
인맥 다이어트
인맥 다이어트
  • 경남매일
  • 승인 2018.03.12 21:1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이광수 소설가

 요즘 청년세대 사이에 ‘인맥거지’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인맥이 가난해지면 인간관계가 단순해진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복잡해지면 신경 쓸 일이 많다. 사소한 오해로 인해 다투기도 해 친밀했던 관계가 소원해지고 상처받게 된다. 그래서 이런 복잡한 인간관계를 다이어트하고 혼밥, 혼술에 심플한 삶을 추구하는 싱글족들이 늘어나고 있다. 인간의 삶은 사회생활을 해나가면서 인간관계가 점점 복잡해진다. 친족관계에서 출발해 초중고대학을 다니며 학맥이 형성된다. 학업을 끝내고 직장생활을 시작하면 직장인맥이 생긴다. 그리고 각종 사회단체, 취미클럽, 회모임의 일원이 되면서 사회인맥이 형성된다. 한 개인의 성공 여부는 인맥관리에 있다고 흔히들 말한다. 소위 출세한 사람들을 보면 인맥관리에 무척 신경을 쓴다. 현대인들의 인맥은 예전의 대면적 인맥보다는 스마트 폰이나 컴퓨터를 매개로 한 사회관계망의 간접인맥이 더 큰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 사회관계망에는 시시콜콜한 일상사부터 자기 피알까지 다양한 내용들이 교류된다. 카톡이나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를 통한 인간관계에는 지인도 있고 생면부지의 사람들도 많다. 유명인들의 포털사이트엔 수천, 수만 명의 팔로워가 따라다니며 그 사람이나 집단의 일거수 일투족에 일희일비한다. 시의성 있는 이슈가 포털 사이트에 뜨면 무수한 댓글로 설전을 벌린다. 소위 댓글 부대의 탄생이 그걸 증명하고 있다.

 이처럼 복잡다단해진 인간관계에 염증을 느낀 20~30세대들이 인맥거지를 자처하며 골방으로 자취를 감추고 있다. 이는 N포세대로 자포자기 상태에 빠진 청춘들의 고민상과 오버랩 돼 마음이 편치 않다. 한창 많은 인맥을 쌓아야 하는 젊은이들이 인맥 다이어트를 해야 하는 우리의 팍팍한 현실이 씁쓸하기만 하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 인맥 다이어트는 자연스럽게 이뤄진다. 자신은 가만히 있어도 친밀했던 인간관계가 서서히 멀어지면서 인맥 다이어트가 된다. 나는 내 또래에 비해 비교적 정보화 기기에 익숙해져 스마트 폰이나 컴퓨터로 많은 인맥을 형성해 왔다. 5~6년 전만 해도 개인 불로그를 통해 년간 수만 회의 방문자 수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틀에 한 번 꼴로 글을 올리면 미국, 대만, 일본 등 외국에서도 단골 팔로워가 댓글을 달며 방문했다. 그러나 수년간 지속했던 블로그도 시들해져 몇 년 전 폐쇄해 버렸다. 이제 카톡과 페이스북으로 소통하고 있지만 불원간 이것도 다이어트할 참이다. 별 볼 일 없는 시시콜콜한 일상사와 자기 자랑을 올리고 주고받는 일에 신물이 났다. 간혹 주고받는 메시지로 인해 오해를 사기도 해서 카스와 밴드는 폐쇄해 버렸다. 업무상 필요한 E-mail과 문자서비스만 남겨 둘 참이다. 그리고 각종 사회단체도 서서히 인맥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이미 3개 단체에서 탈퇴했으며 문단모임도 불원간 정리할 계획이다. 이제 내 스스로를 돌아볼 나이가 됐기 때문이다. 나만의 시간을 통해서 하고 싶은 일에 매진하기로 했다. 쓸 데 없는 일들에 매달리다 보니 정신적으로 너무 지치고 인간관계가 복잡해지는 것이 싫어서다. 어떤 자리에 연연할 나이도 지났고, 남 앞에 나서는 것도 삼가야 할 나이가 됐다. 나이깨나 든 사람이 말실수라도 하게 되면 노망들었다는 소릴 듣기 마련이다. 노추는 나도 보기 싫은데 젊은 사람들이 보면 오죽하겠는가. 몇 년 전부터 푹 빠져있는 주역공부에 본격적으로 도전해서 끝장을 볼 참이다.

 거미줄처럼 얽히고설킨 인간관계에서 오는 피로감은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낙오되지 않기 위해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끊임없이 유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고립감을 느끼는데 이를 ‘군중 속의 고독’이라고 한다. 실제로 자신이 곤경에 처했을 때 진정으로 내 편이 돼 주는 사람은 드물다. 차라리 가볍게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인맥 과부화 부담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그다지 친밀하지도 않은 사람들과 의미 없이 나누는 메시지 교환을 줄이고, 별로 내키지 않는 단체나 모임에서 해방돼 사는 삶이 정신 건강에도 좋을 것 같다. 그럼 외로움을 느낄 거라고? 외로움은 인간이면 누구나 느끼는 감정이기에 피할 도리가 없다. 부부가 한 이불을 덮고 자면서도 외로움을 느낀다. 인간이기 때문에 원초적인 감정인 외로움은 스스로 다른 방법으로 극복하는 수밖에 없다. 세계적인 투자자이자 자선 사업가인 조지 소로스는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 연례총회에서 페이스북 같은 소셜미디어가 사람들의 마음과 행동을 부지불식간에 지배하기 때문에 민주주의 사회에서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정보독재를 경계한 말이다. 이제 사람 냄새나는 의미 있는 인간관계로 회귀해야 한다는 관점에서 인맥 다이어트를 한 번쯤 생각해봐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