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 양심적 지식인 없소
우리나라에 양심적 지식인 없소
  • 오태영 기자
  • 승인 2018.03.11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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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태영



사회부 부국장



 우리는 오랫동안 동서갈등에 허덕인 적이 있다. 동서갈등은 우리의 고질병폐였다. 그러나 동서갈등에 기대어 반사이익을 얻으려는 일부 정치인을 빼고는 널리 하루빨리 척결해야 할 과제라는 인식은 모두가 가졌다. 그 덕인지 이제 동서갈등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만큼 사정이 좋아졌다. 그런데 언제 그랬는지도 모르는 사이에 이 빈자리를 보수ㆍ진보 갈등이 꿰차는 이상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그들만의 진영논리를 강화하고 그들만의 세상을 구축하는 데만 열중이다. 보수나 진보 진영이 운영하는 온라인 사이트에 들어가 보면 상대를 향한 적개심에 가득 찬 저주만이 난무한다. 어쩌다 자제와 균형을 주장하는 사람이 나오면 뭇매를 가한다. 내 편이 아니면 적이라는 살기가 가득하다. 동서갈등이 동서 불균형 개발과 소외, 광주사태가 빚어낸 외적 요인의 결과물이라면 보수 진보 갈등은 자발적이라는 점에서 훨씬 심각하다.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사람에 따라 얼마든지 달리 볼 수 있다. 정상적이라면 같은 진보, 같은 보수라도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다. 마치 주술에 걸린 것처럼 판박이 생각을 하고 있다. 내 편, 네 편이라는 진영논리가 학습을 통해 세상을 보는 눈을 똑같이 만들고 있다. 대화는 애초에 불가능한 철옹성이 구축되는 양상이다. 진보는 보수를 역사의식도 없는 부패한 기득권세력으로 간주한다. 보수는 진보를 말만 번지르르한 무능력한 집단으로 간주한다. 대한민국이 이처럼 갈라진 적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분열상이 심각하다. 동서갈등은 그래도 적어도 가족 간에는 볼 수 없었으나 진영갈등은 가족도 갈라놓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 보수를 지지하는 부모와 진보를 지지하는 자녀들이 싸웠다는 말도 많았다. 심지어 엄마를 보지 않겠다는 가족도 있었다.

 심각한 것은 책임 있는 어느 누구도 이 갈등을 치유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치지도자들은 오히려 갈등을 부추긴다. 대통령까지 이 갈등을 없애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것 같다. 이러니 말이 험악해지고 타협은 갈 때까지 가서야 마지못해서 하는 양상이다. 갈등 비용이 천정부지로 치솟는다. 시급한 법안이 기약 없이 국회 서랍에서 잠을 잔다. 일부 양심적 지식인들이 이런 문제를 질타라도 하면 변절자로 낙인찍힌다. 언로가 막히고 반대의 목소리는 감히 하지 못할 공포감까지 엄습한다. 정치적 견해가 다르면 술자리에서 마음 놓고 술을 마시지 못할 정도다. 언제부턴가 친구 사이에서도 술자리에서 정치 이야기는 금기시됐다. 말 잘 못 하면 잡혀가던 군사독재 시절이 연상된다.

 이토록 찢어질 정도로 이념이 중요한지 되물어 봐야 한다. 내가 바라보는 세상이, 내가 지향하는 세상이 정의고 진리라는 아집은 과연 옳은 것인가 반성해야 한다. 세상은 바른 생각만 갖고 있는 사람에 의해 움직여지지는 않는다. 온갖 군상의 인간들의 아귀다툼 속에서 세상은 물처럼 흘러간다. 이런 사실을 부정하면 혼란과 갈등은 피할 수 없다. 이 모든 것의 원인은 집권욕에서 비롯된다. 현 정권은 장기집권의 토대를 집권 기간 내에 구축하려 하고 야당은 정권탈환에 목을 맨다. 상대가 집권하면 대한민국이 무너지기라도 하듯 기겁을 한다. 이러다 보니 반대진영을 설득하고 껴안으려는 노력보다 자기 진영을 확대, 강화하려는 쪽에만 신경을 쓴다. 갈등이 날카로울 수밖에 없다. 상대를 향한 시선이 날카로울수록 세상은 메마를 수밖에 없다. 나는 보수 진보 갈등의 동참자가 되지 않겠다는 미투 운동이라도 해야 할 판이다. 우리나라에는 이 운동에 불을 지필 양심적 지식인은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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