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04:21 (금)
새 학년을 조력하는 부모의 자세
새 학년을 조력하는 부모의 자세
  • 이영숙
  • 승인 2018.03.04 20: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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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영숙 담쟁이 가족상담 부모교육 연구소 소장

 칼바람이 유난히 많이 불었던 긴 겨울이 지나고 메말랐던 나뭇가지에 새싹의 눈이 수줍게 올라오고 있다. 꽃샘추위마저도 지나야겠지만 봄이 오는 걸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새싹은 거친 나뭇가지를 뚫고 나오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제 살을 찢어낸 나무는 싹을 틔우느라 얼마나 아팠을까?

 3월이면 새 학년을 맞이하는 아이들은 설렘과 더불어 걱정이라는 양가감정 때문에 불안해한다. 그동안 우정을 쌓았던 친구와 헤어지게 되고 누구와 친구가 될 것인지 어떤 선생님을 만나게 될 것인지 안개 속처럼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그것에 보태 학년이 높아질수록 학습에 대한 부담감도 무거워진다. 학습에 대해 부모가 아무런 압박을 주지 않는다 해도 본인 스스로 더 잘하고 싶은 자기실현 경향성을 갖기 때문이다. 성적이 낮은 아이일수록 부담감은 더 크다. 부모가 보기에 아무 생각이 없는 것 같아도 절대 아무 생각이 없을 수 없다. 자신의 걱정은 자기 자신이 가장 많이 하기 때문이다. 부모의 걱정이 아무리 크다 해도 아이의 걱정보다 더 클 수는 없다. 부모는 그 마음을 읽어주고 보듬어줘야 한다.

 그러나 부모의 걱정도 만만치가 않다.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할지 어떤 담임선생님을 만나게 될지 학습에 뒤처지지는 않을지 혹시라도 왕따나 은따를 당하지는 않을지 자녀에게 관심을 갖는 부모라면 당연한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무엇이라도 해주고 싶은 마음에 촉을 곤두세우고 학교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일들까지 알려고 한다. 알려고 하지 않아도 같은 반 엄마들의 단체 톡방에는 학교 안에서의 사건뿐만 아니라 학교 밖의 일상까지도 낱낱이 도마 위에 오른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부모들조차도 왕따나 은따가 되지 않으려고 전전긍긍하게 되는 현실이 개탄스럽다. 나름의 교육관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다른 집의 얘기를 듣다 보면 내가 부족한 건 아닌지 너무 무관심하게 방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내 아이만 낙오되는 건 아닌지 불안이 증폭되기도 한다. 중심 잡기가 정말 힘든 상황이 전개되기 십상이며 부모는 자녀의 성장과 함께 좌충우돌하며 자녀의 나이만큼 부모의 나이가 된다.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라는 노래 가사처럼 걱정과 불안은 걱정과 불안을 동반할 사건을 당기는 힘이 있다. 아이는 이미 강함과 선함, 현명함을 가지고 태어난다. 그 후 성장하며 강함과 선함, 현명함이 강화되기도 약화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어떤 양육 태도를 취할 것인가? 자녀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시시콜콜 알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알게 되면 관여하고 싶어진다. 아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회를 사랑과 관심이라는 이름으로 박탈하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무관심과 무반응으로 대응하라는 것은 결코 아니다. ‘너의 뒤에는 우리가 있다. 언제든지 무슨 일이라도 기꺼이 들어주고 너의 편이 돼 줄게’라는 메시지를 전하며 신뢰를 쌓고 유지해야 한다. 내 아이만 귀하게 여기는 이기심도 버려야 하지만 내 아이만 귀하게 여긴다는 비난이 싫어서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 유독 엄격하게 대하고 자녀의 편이 돼 주지 못하는 것은 더 큰 문제를 발생시킨다. 학교나 사회는 아이들의 실수나 바람직하지 못한 언행을 지적하고 비판한다. 감싸주고 위로해주는 역할은 가정에서 이뤄져야 한다. 아이들이 마음 붙일 자리는 가정인 것이다. 그래야만 외부 활동을 해낼 힘을 회복한다.

 새싹은 나무를 뚫고 나오느라 힘들었다. 나무는 제 살을 찢어내고 싹을 틔우느라 아팠다. 아이는 새싹일까? 부모는 나무일까? 그래서 아이와 부모는 봄꽃을 피울 수 있을까?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는 것이 당연한 자연의 섭리인 것처럼 자녀를 양육함에 있어 힘듦과 아픔을 넘어서야 하는 것 또한 당연하다. 지인들은 내게 어떻게 하면 아들딸과 그렇게나 잘 지내는지 부러움을 담아 질문한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힘듦이 있다. 이왕지사 힘듦이 있다면 그 힘듦을 어떻게 사용할지는 각자의 선택이다. 당연함을 당연하게 수용해야만 비바람을 견뎌내고 관계에 꽃을 피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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