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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집이 늘어간다
빈집이 늘어간다
  • 정영애
  • 승인 2018.02.22 20: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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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영애 금성주강(주) 대표이사

 올해 서울지역 일반고 신입생 수 상위 1~3등 고교를 보니 1위가 99명, 2위가 105명, 3위가 115명이었다. 지난 2002년 저출산 세대가 올해 고교에 진학해서이다. 그런데 시골은 폐교위기에 처한 학교가 수두룩하다. 서울에 비해 지방은 갈수록 미니학교가 늘어나고 종국에 가서는 정책적으로 ‘1면 1학교’라는 비상수단을 동원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시골의 엑소더스에 이어 대도심 인구탈출이 점점 가속화되고 있다. 도심의 인구탈출은 결국 빈집의 양산으로 귀결된다. 그런데 서울 강남의 아파트값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정부에서 온갖 투기억제 수단을 다 동원해도 꿈쩍도 안 한다. 소위 강남 불패의 신화는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한편, 강북지역은 도심 인구감소로 빈집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서울의 양극화 현상이다. 도시지역의 양극화는 결국 계층 간의 갈등과 빈부격차를 심화시킨다.

 가끔 볼일이 있어서 고향을 찾을 때가 있다. 내가 살던 동네를 둘러보면 곳곳에 빈집이 보인다. 젊은이들과 아이들은 보이지 않고 등 굽은 늙은 할머니들만 골목길을 지나간다. 허물어져 가는 담장과 떨어져 나간 빈집의 창문을 볼 때마다 배고팠던 어린 시절이 떠올라 가슴이 찡해온다. 어른들은 일 나가고 혼자 빈집에 남아 밀린 숙제를 하며 창 넘어 호수같이 잔잔한 당항만을 바라보고 자랐다. 그땐 골목 어귀마다 사람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일 나간 어른들이 돌아오면 동네가 한바탕 시끌벅적했다. 이제 적막감이 감도는 고향마을을 둘러보면 가슴이 아프다. 돌아와 살 사람이 없는 빈집은 결국 시간이 흐르면 허물어져 사라지고 빈터만 남을 것이다.

 도심의 공동화 현상은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농촌인구의 엑소더스는 산업화, 도시화의 산물이다. 그러나 도심 공동화 현상은 절대 인구의 감소가 그 원인이다. 1.14명이라는 초저출산국으로 전락한 한국의 인구증가율은 우리의 미래를 위협하고 있다. 이웃 나라 일본의 경우 일찍이 초고령사회로 접어든 탓인지 빈집이 전체 가구의 13.5%를 차지하는 820만 채나 된다고 한다. 후지쓰 종합연구소의 추계에 의하면 오는 2033년에는 일본의 빈집은 전체주택의 30%인 2천15만 채가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즉 10채 중 3채가 빈집이 되는 셈이다. 젊은 층은 부모의 시골 주택과 땅마저 부동산 거품이 사라지자 상속을 꺼리고 팔려고 해도 팔리지 않아 방치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지자체에서는 빈집처리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빈집은 방범과 화재의 위험성이 크기 때문에 정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일본 정부에서는 지난 2015년 ‘빈집대책 특별조치법’을 전면 시행해 붕괴위험에 처한 6천400채의 빈집을 주인이 철거하지 않을 경우 행정기관이 강제철거한 뒤 철거비용을 부담시키고 있다. 그러나 이 역시 주소불명이나 우편물 수취거부, 배 째라는 식 버티기로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물론 빈집 중 쓸 만한 주택을 이용해 민박, 보육시설, 지역민의 커뮤니티 공간, 문화예술인 창작공간으로 활용하기는 하지만 계속 늘어나는 빈집처리엔 역부족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도 일부 도시 생활이 싫어 시골이나 지방 도시의 빈집이나 학교시설을 임대하거나 구입해 활용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대개 민박집이나 시골 카페, 문학예술인 창작공간으로 활용하거나 노후 삶터로 이용하고 있으나 미미한 수준이다.

 지금 정부에서는 서울 강남의 아파트 투기 바람을 차단하기 위해 온갖 정책을 총동원하고 있다. 1천400조 원에 달하는 가계부채의 진원지가 바로 아파트 구입에 따른 융자금 때문이다. 얼마 전 신문 보도를 보니 한국의 가계부채비율이 세계 10위 안에 랭크돼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서울 강남 집값은 계속 올라 정부 투기대책을 무색하게 하고 있다. 오히려 이런 부동산 대책으로 실소유자의 주택 구입을 어렵게 하고, 지방의 아파트값은 곤두박질을 쳐서 죽을 쑤고 있다. 수도권과 지방의 양극화는 아파트 가격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는 셈이다. 정부 정책이 먹혀들지 않는 서울 강남아파트값의 고공행진도 언젠가는 멈추게 될 날이 올 것이다.

 일본의 빈집사태에서 보듯이 생산인구의 감소와 초고령사회로의 진입은 아파트에 대한 투기 환상을 거품으로 만들 공산이 크다. 이는 요즘 20~30세대들의 욜로족 화 현상에서도 읽을 수 있다. 이제 집은 서양처럼 소유개념에서 거주개념으로 변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두 늙은이가 노후에 큰 집에 살면서 관리비용으로 끙끙대다가 죽은 후 자식들이 살지 않는 빈집만 남겨줘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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