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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 시대, 무엇을 가르쳐야 하나?
4차 산업혁명 시대, 무엇을 가르쳐야 하나?
  • 정원영
  • 승인 2018.02.19 21:03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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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원영 인제대학교 교수 창업교육센터센터장 / PRIME사업단

 # 에피소드 1, 몇 일 전 어느 TV 방송사에서 방영된 과학사 프로그램으로 기억한다. 강연자가 강의 중 “제임스 와트가 영국(정확히는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나지 않고 프랑스에서 태어났더라도 과연 1차 산업혁명이 가능했겠는가?”라는 질문이 인상적이었다. 그 질문에 대한 강연자의 대답은 “아니요”였다. “당시 영국은 학문을 위한 학문보다 기술자들로 이뤄진 길드 중심의 실용주의의 사회였고, 프랑스는 진리와 원리를 추구하는 학자들 중심의 학문 중심의 사회여서 프랑스에서는 제임스 와트의 아이디어를 실제로 구현할 수 있는 기술자들이 충분치 않았기 때문이다”가 그의 논리였다.

 # 에피소드 2, 본인의 사업 영위를 위해 비 인륜적인 ‘사형집행용 전기의자’까지 만들어 직류의 위험성을 증명하고자 해서 유명해진 ‘토마스 에디슨의 직류와 니콜라이 테슬라의 교류 간의 논쟁’은 그 이면에는 토마스 에디슨이 소유한 제너럴일렉트릭사와 니콜라이 테슬라를 지원한 웨스팅하우스사간의 ‘시장독점’이라는 초기 자본주의의 추악한 모습을 보여주고는 있으나, 이 결과, 교류시스템의 효율성이 증명돼 2차산업 혁명을 선도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기도 하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제임스 와트가 ‘증기기관’을 발명했다고 잘못 알려진 것과 같이 ‘교류’ 역시 니콜라이 테슬라가 발명한 것이 아니라, ‘전자기유도’를 발견한 영국의 마이클 패러데이가 발견했으며, 니콜라이 테슬라는 ‘현대적 교류시스템의 기초’를 구축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고 비록 순수한 동기는 아니었더라도 교류 관련 특허를 공개함으로써 교류시스템 확산 및 산업화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좋든 싫든, 지금이 4차 산업혁명 시대임을 인정한다면 현재 30대 후반 이상의 사람들은 남들은 한 번 접하기도 힘든 산업혁명을 두 번씩이나 겪게 되니 행운이라고 해야 할지, 불행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4차 산업혁명이 ICT융합을 바탕으로 소비자들의 숨어있는 수요를 창출하고 이를 통한 산업ㆍ경영 전반의 패러다임을 바꾼다는 점에서 Airbnb, Pinterest, Dropbox와 같은 플랫폼기반 비즈니스의 약진과 함께 “전자상거래 시대는 곧 끝난다”라고 말한 알리바바의 창업자 마윈의 이야기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대비하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가?’라는 관점에서 많은 시사점을 준다고 생각한다.

 미래부의 “미래 일자리의 길을 찾다”에서 인간에게 필요한 3대 미래 역량을 ‘획일적이지 않은 문제 인식역량, 다양성의 가치를 조합하는 대안도출역량, 그리고 기계와의 협력적 소통역량’으로 정의하고 있다. 미국의 GE는 “미국제조업의 63%가 STEM(Science, Technology, Engineering, Mathematics) 분야의 교육 이수를 요구하고, 첨단제조분야의 15% 이상이 STEMP 분야의 석사학위 이상의 고급인재를 필요로 할 것”을 예측하고 있다. 또한, 보스톤컨설팅그룹은 “지속적인 학제간 학습(Interdisciplinary Learning)과 다양한 지식 활용을 기반으로 한 소프트 스킬(Soft Skills)이 미래사회에 더욱 중요한 역량이 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또한 맥킨지는 “인간이 수행하는 창의적인 업무(약 4%)와 감정적인 업무(약 29%)는 자동화되기 어려울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사실 이런 기사나 논문들을 보면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가 명확해지기보다는 도리어 더 막연해지는 느낌이 드는 것은 나만의 문제일까? 신발전문가가 가죽에 대해서 모른다면 이것이 진정 전문가인가? 2차 산업혁명으로 확산된 ‘분업’이란 시스템이 과연 ‘인간의 본성’과 ‘전문가’라는 관점에서 적합한 시스템인가? 라는 점을 반추해 보면 개인적으로 진정 4차 산업혁명 시대가 요구에 맞는 인재를 육성하기 위해서는 가정이 기본이 되고 학교가 중심이 돼야 한다. 언어, 수학, 과학, 사회ㆍ철학과 같은 극히 기본이 되는 중심으로 교육이 돼야 한다. 그리고 대신 학생들의 선택의 폭을 넓혀 본인들이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를 넓혀주는 것이 진정 대학 교육에서 필요한 것이 아닐까 한다. ‘뿌리가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으므로, 꽃이 좋게 피고 열매가 많다’라는 용비어천가의 구절도 있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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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45 2018-02-23 12:23:43
맏지않는이야기하다니꼽표야안데려가으이그 흑박이없어서

임용배 2018-03-16 08:15:37
'에피소드 2'에서 에디슨이 증명하기 위해 노력한 것은 직류의 위험성이 아니라 교류의 위험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