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5 08:58 (목)
신명과 흥은 사회적 자산
신명과 흥은 사회적 자산
  • 이유갑
  • 승인 2018.02.18 20:4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이유갑(사)지효청소년인성교육원 이사장 전 경남도의원ㆍ심리학박사

 며칠 전 차가운 눈 속에서 피어난 노란 복수초를 보면서 가냘픈 식물의 힘찬 생명력에 가슴이 뛰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말처럼, 우리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온갖 새싹들이 바깥세상으로 나올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봄이 저 너머에 오고 있음이 느껴진다.

 지난 16일은 새해 1월 1일에 맞았던 양력설에 이어서 음력으로 맞이하는 진짜 설이다. 우리는 한 해에 두 번이나 설을 맞이하는 복 받은 민족이다. 새해의 각오를 또 한 번 다지고, 서로의 건강과 행복을 빌어주면서 정을 나누는 마음 푸근한 명절 연휴가 됐었기를 빌어본다.

 요즘 들어 주민센터를 포함한 여러 기관들에서 운영하는 노래교실들이 부쩍 많아졌다. 노래교실에 들어올 때에 비해 한두 시간 노래를 실컷 부르고 나갈 때의 수강생들의 표정이 사뭇 밝아져 있음을 보게 된다. 이런 것을 두고 노래의 카타르시스 효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옛날부터 우리 민족은 신명이 많고 가무(歌舞)를 무척 즐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상부상조하면서 살아가는 두레 문화가 일찍부터 발달한 우리나라에서는 농사지으면서 마을 사람들이 함께 부르는 노동요(勞動謠)가 상당히 많이 있다.

 한 해 농사를 위해 씨를 뿌리고 난 5월이나 추수가 끝나고 난 후, 또는 추석과 같은 명절에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떼를 지어서 노래와 춤을 즐기면서 술 마시고 놀았다는 기록들이 옛 문헌에 많이 남아 있다. 오랫동안 이어져 온 이런 사회적 전통이 한국인의 ‘가무 DNA’로 자리 잡게 됐다는 생각이 든다.

 초ㆍ중ㆍ고 학창시절에 소풍을 가면 반드시 반별, 학년별로 노래와 춤의 장기 자랑 대회가 열렸고, 지역에서도 수시로 노래 콩쿠르가 열리곤 했다. 필자의 청년 시절의 술자리에서는 늘 돌아가면서 노래를 부르는 순서가 있게 마련이었고, 흥이 나면 모두가 젓가락 장단을 두드리면서 노래를 부르고 일어나서 어울려 춤을 췄다.

 우리가 이렇게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다 보니 일본에서 처음으로 만든 ‘카라오케’라는 노래 반주기가 한국에서 노래방이라는 독특한 문화를 만들어 냈다. 최근에는 블루투스로 스마트폰의 노래방 앱과 연결해 노래방에 가지 않고 집에서도 가족들이 흥겹게 노래를 부를 수 있게 됐다.

 여기에 더해 개개인이 자신의 음반을 가질 수 있는 ‘모두 다 가수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코인 노래방에는 녹음이나 녹화가 되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어서 춤추고 스스로 노래 부른 장면을 녹음본이나 녹화본으로 떠서 이메일이나 USB로 옮겨 보관할 수 있다. 마니아들은 첨단의 전자 장비들(이퀄라이저 등)을 이용해 녹음을 좀 더 세밀하게도 하고, 카메라를 활용해 나만의 뮤직비디오를 만들기도 하게 됐다.

 전통적으로 성악의 본고장인 유럽의 이태리 사람들이 노래를 무척 좋아하고 잘한다고 알려져 왔다. 이태리를 떠나서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는 배 위에서 멀어져 가는 고향의 푸른 바다를 보면서 ‘산타루치아’를 멋들어지게 부르던 금발의 청년이 나오는 영화의 장면이 떠오른다.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의 노래 실력과 노래를 즐기는 신명의 정도는 이태리 사람들을 능가한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 K-pop으로 대표되는 한류 문화가 동남아는 물론이고 미국을 비롯해 고급문화의 본고장인 유럽에서도 위세를 떨치는 것을 보면 확실히 알 수 있다.

 미국 하버드 대학 인류학과의 니콜라스 하크니스(Nicholas Haykness) 교수는 지난 2014년 ‘서울의 노래: 한국 기독교의 목소리에 관한 민족지학’을 발표했다. 하크니스 교수는 이태리와 한국 두 나라는 산과 언덕이 많고 삼면이 바다인 반도 지형이고, 모국어의 자음 발음이 비교적 선명해 가사 전달력이 좋으며, 우리나라의 남도 사람과 이태리 사람 모두 기질적으로 쾌활해 표현력이 풍부하다는 닮은 점이 한국인들이 이태리인들과 함께 노래를 잘하는 이유들 중의 하나로 꼽았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잠재돼 있는 이런 신명과 흥은 엄청난 사회적 자산이라고 생각한다. 개개인이 일상의 무기력함과 우울에서 벗어나서 세상과 자신의 미래를 밝고 낙천적으로 보면서 힘차게 달려가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우리 대한민국은 다시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