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20:07 (금)
나의 핫 플레이스
나의 핫 플레이스
  • 이주옥
  • 승인 2018.02.13 20: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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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옥 수필가

 SNS가 범람하는 시대에 한 개인의 발자취를 고스란히 따라다니며 누군가에게 어디인지 또는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인증샷은 필수다. 대부분 여행지나 놀이공원에서 음식을 앞에 두고 인증샷으로 자신의 행동반경을 알리고 취향을 밝힌다. 그리하여 지인, 또는 불특정 다수와 소통한다. 그런 장소와 음식들은 순식간에 명소가 되기도 한다. 시간이나 거리에 상관 않고 사진 속에서 혹은 영상 속에서 봤던 멋진 거리나 카페, 음식점 등을 순례하며 이 시대가 제공하는 문화의 향유를 만끽한다. 나 또한 뒤질세라 그런 곳을 검색하고 찾아다니려고 애쓰는 편이다. 그리고 가능하면 더 멋지고 더 맛있어 보이게 인증샷을 찍어 누군가에게 보여준다. 소위 말하는 핫 플레이스에 발자국을 찍는 것으로 이 시대에 내 존재감을 심으며 공감과 동질의 무리 속으로 끼어들기 하는 것이다.

 요즘 뜨는 곳. 일명 핫 플레이스를 방문한 지인들의 모습을 여러 경로를 통해 보게 된다. 때론 무리 지어서 찍기도 하고 때론 혼자서 셀카를 이용해 자신이 누리는 문화를 타인과 공유한다. 그런 인증샷을 보면서 그 사람의 삶을 동경하는 마음까지 갖는다. 핫 플레이스에 발자취를 찍기 위해서는 금전은 물론, 시간 또한 필수다. 거기에 발품 파는 노동력도 필요하다. 아무리 멀어도 남이 가고 남이 먹는 것은 나도 해야 한다는 심리일까, 아니면 그런 무리 속에 끼어들지 못하면 왠지 도태되는 것 같기라도 한 것일까.

 핫 플레이스의 수명은 생각보다 짧다. 언제는 지극히 한국적인 것을 간직한 동네가 뜨더니 어느 순간 우리나라가 맞는가 싶은 이국적인 거리가 화제가 된다. 떴다 가라앉는 시간이 번개 같아서 자칫 게으름을 피우다가는 그저 입맛만 다시고 말 때가 허다하다. 해외도 마찬가지다. 연휴 기간이나 휴가철이면 공항에는 여행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여행사에서 요즘 뜨는 곳을 파악해 상품으로 내놓으면 순식간에 매진이 된다고 한다. 인기 있는 TV 예능 프로그램에 나오는 장소라면 그곳은 어느새 사람들의 발길로 문전성시를 이룬다고 한다. 요즘 핫한 나라가 어딘지, 장소가 어딘지는 몇 사람의 SNS만 둘러보면 금방 알 수 있다.

 하지만 요즘 핫 플레이스에 역반응이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모두가 가는 곳에 나는 가지 않겠다는 의지가 바람처럼 분다고 한다. ‘핫’하다고 소문만 났다 하면 우후죽순 생겨나는 비슷한 테마나 분위기를 갖춘 경쟁가게가 생기는 바람에 오히려 매출이 떨어져서 상인들은 난색을 표하는 지경이고 사람들은 나만의 공간을 빼앗긴 느낌이 들어 발길을 끊는다고 한다. 어쩌다 들러 편안하게 술 한 잔 기울일 수 있는 술집, 공원을 천천히 걷다가 걸터앉아 쉬는 나만의 고정벤치, 언제고 들러서 마음을 부릴 수 있는 소박하고 자그마한 찻집이 어느 날 입소문을 타고 사람들의 발길로 북적이는 것이 싫다는 것이다. 나만의 공간이나 시간을 고수 하고 싶은 소유의 심리일까. 아니면 군중심리에 편승하지 않겠다는 뚝심일까.

 나는 학창시절부터 늘 단짝이 있었고 화장실조차도 늘 가던 곳만 이용할 정도로 변화나 변경을 싫어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동네 마트나 재래시장도 늘 같은 가게만 가고 세제나 화장품도 큰 이상이 없는 한 같은 제품만 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한번 맺어진 인연이라면 약간의 부대낌을 감수하고라도 오래 유지하는 편이며 웬만해서는 새로운 인연 만들기를 시도하지 않는다.

 삶에 있어 다양성은 중요하다. 하지만 변화를 싫어하다 보니 뭔가 새로운 일을 시도하거나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일은 언제나 망설여지고 두렵다. 그래서 늘 생활은 단조롭고 인간관계의 폭도 그리 넓지 않다. 하지만 SNS를 하다 보니 딱히 작정하지 않아도, 또는 애써 노력하지 않아도 이 시대에 존재하는 공간과 시간을 공유하게 된다. 그래서일까. 나만의 것이라고 고집하면서 소중히 여길 만한 것이 없다는 아쉬움과 공허함이 있다. 세상은 분명 누군가와 동행하며 공감하며 사는 것이겠지만 한편으로는 나만의 솔직한 감정이 머물고 나의 치부조차도 가릴 필요 없는 나만의 핫 플레이스도 필요할 것 같다. 고요하고 정결한 나의 핫 플레이스 구축이 새삼 절실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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