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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읽고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읽고
  • 은 종
  • 승인 2018.02.12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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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 종 시인ㆍ독서지도사ㆍ심리상담

 삶의 일회성을 바탕으로 두고 주인공 넷을 인물로 설정해 존재의 가벼움과 무거움이 어떤 태도인지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풀어나가고 있다. 이 소설은 30년 전 ‘프라하의 봄’이라는 영화의 원작이기도 하다. 체코의 역사와 시대적 배경을 알고 난 후 이 책을 읽으면 도움이 될 것 같다.

 소련의 압제하에 공산체제로 돌변하는 사회 곳곳의 현상들을 마치, 카메라가 따라다니는 것처럼 보여주고 있다. 전체적 맥락에서 이념과 사상의 탈바꿈으로 인해 인간사의 괴리가 어떻게 펼쳐지는지 알 수 있다.

 인물들이 펼치는 사랑과 배신, 불신과 고통 등의 심리전은 존재 자체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수 있게 한다. 역사가 겪는 전쟁도 일회성이며 사랑도, 죽음도 다시 돌아올 수 없는 단일적인 것이라 가벼움 그 자체라고 묘사한다.

 그래서 배경도 칙칙한 어두움이 깔린 데다, 사건들이 베일에 가려있어 그것을 밝혀주는 환한 조명은 등장하지 않는다. 뭔가를 암시하고 있듯이 침묵과 고정된 시선이 모든 걸 대변해 주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모든 작품이 그렇듯이 밀란 쿤데라 역시 자신이 겪은 전쟁과 쿠데타, 지식인들에게서 봤던 현실에서 살아남으려는 절대적 권력에의 굴종, 비겁함 등을 작품 곳곳에 드러내고 있다.

 토마시의 끝없는 여성 편력, 그 뒤의 은닉은 마치 소련의 공산주의에 맞대응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숨어다닐 수밖에 없는 인간의 나약함이 가벼움 그 자체로 묘사된다.

 여주인공 테레자의 자라온 가정환경이 성숙한 사랑을 엮어나가는 데 있어서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독자들에게 측은함을 느끼게 할 정도로 결단성이 부족하다. 아니 어쩌면 그것조차 자신의 운명이라고 단정 지으면서 상대에게 애착 반응으로 자신을 몰고 간다. 질서와 규범들이 주인공 인물들 사이에는 와해한 지 이미 오래됐지만 토마시 역시 그것을 ‘Es muss sein(독일어: 그래야만 한다)’이라 읊조린다. 그것은 혼돈과 무질서 속에 진행되고 있는 사회의 분위기와 흡사하다고 할 수 있다.

 규모만 다를 뿐, 인간 대 인간, 그것이 확장돼 한 민족을 침략해 온 나라, 이 둘 사이를 오가는 무질서는 역사가 치러내야 할 고통이었다.

 인물들의 태도에서 보여주는 무거움과 가벼움에는 어떤 모순이 있으며 그 모순을 어떻게 정의해야 하는지는 독자 자신들이 내려야 할 몫으로 남겨둔다.

 사비나와 프란츠 역시 연인이지만 언어의 무늬마저 이해하지 못하는 경계선 밖의 사람들로 묘사된다. 국경이 다르니 나라를 생각하는 가치나 기준들이 다를 수밖에 없으며 성향도 다르다. 교수와 화가라는 직업이 어쩌면 그것을 대변해 주는지도 모르겠다.

 한 사람은 좌뇌에 충실해 지극히 이성적인 사고가 있다면, 사비나는 화폭 저 너머에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것들로 가득 차다. 인간이 누리는 문화는 그 어떤 초월성에 대한 끊임없는 열망일지도 모른다. 사비나가 바로 그런 유형의 사람이다.

 자유를 갈망하지만 직면해 있는 현실은 박차버리는, 어쩌면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는 도피형, 아마도 그것은 자신을 옭아매는 것 모두를 외면하고 싶은 인간의 방어기제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백만 분의 일 정도의 여성 상이성에 대한 탐구로 시작된 토마시와 같은 인물이 실제 존재했다는 역사적 증거가 있다면 독자들은 이 소설의 소재 거리가 결코 허구성을 띤 가벼움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한 번 살다 가는 인생, 그래서 더 소중한 삶이어야 하는 것, 그것을 만들어가는 것은 자신들의 몫이다. 결코, 존재 자체가 가볍게 만들어진 것이 아닐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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