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9 22:57 (금)
차라리 오지 않는 것이 나을 듯
차라리 오지 않는 것이 나을 듯
  • 원종하
  • 승인 2018.01.31 23: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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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종하 인제대 국제경상학부 교수ㆍ금연교육연구소 소장ㆍ객원 논설위원

 지난주 지속되는 강추위보다 더 우리 마음을 아프고 힘들게 한 것은 밀양 세종병원의 화재 사고였다. 단일 건물화재 사고로는 최고의 사망자를 낸 이번 참사는 한 달 전의 제천 화재사고와 더불어 우리 사회에 만연돼 있는 안전 불감증과 부실한 안전장비, 형식적인 안전진단, 적절치 못한 초기대응 등 구체적인 문제점의 종합세트를 보는듯하다. 현장을 찾은 행정책임자나 정치지도자들은 한결같이 대책을 마련하겠다고는 목청을 높이지만 사후약방문격이거나 현장을 떠나면 함흥차사와 같은 언행을 보이기 일쑤다.

 안전이나 생명보다는 당장의 문제점 해결과 비용을 덜 지불하는 방법들을 생각하면서 마치 사상누각과 같은 일들을 당연시하면서 살아온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야말로 앞만 보고 달려온 것이다. 그 결과 이곳저곳에서 예상하지 못한 참사들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옆도 쳐다보고 뒤도 돌아봐야 할 때이다. 사회 전반적인 시스템과 제도를 개혁하고 혁신해야 한다. 그것만이 또 다른 참사를 막을 수 있는 지름길이다. 안전 국가는 말로만 되는 것이 아니다. 국가의 전반적인 시스템 구축과 사회의 안전망 확충이 중요하다. 그리고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와 문화 조성, 법의 준수와 더불어 윤리의식을 가진 개인의 안전의식 등이 하나 될 때 안전국가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에게 익숙한 방법으로는 안전한 국가를 만들 수 없다. 새로운 방식을 찾아야 한다. 그것은 기본을 지키는 것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는 것보다 더 중요한 국가의 책무가 무엇인가? 이러한 영역에 있어서는 개개인의 사정을 다 헤아려서는 곤란하다. 무엇보다 국가가 강력한 공권력을 발휘해야 한다. 제도가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면 국회에서는 빠르게 입법을 해야 한다.

 이번 참사의 현장에 나타난 정치인들이 할 일을 하지 않고 여야 서로 네 탓 만하는 모습을 보면서 너무나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정치인들의 현장방문은 최대한 자제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아니면 현장의 지휘관들에게 부담이 되지 않는 방법을 찾아 소리 없이 다녀가든지 해야 할 것이다. 일 분 일초가 급한 현장의 지휘관들에게 부담을 덜 줘야 사건의 신속한 처리를 할 수 있다. 유가족들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위로한다고는 하지만 가족을 잃은 그 황망함 속에서 무슨 위로가 될 것이며 또한 누구의 말이 진짜 위로가 될 것인가. 사고현장에는 그 문제를 빨리 수습할 사람이 필요한 것이지 의전을 해야 하거나 보고를 해야 할 사람은 당장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그동안 습관적으로 최고 먼저 현장에 달려가야만 무슨 중요한 일을 한 정치인처럼 생각한다면 사건에 대한 시급성은 인식했지만 중요성은 인식하지 못한 행동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개인의 욕망을 억누르지 못하면 그 결과는 참담한 현실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특히 공인의 경우에는 더욱더 그렇다. 정치인이 우선해야 할 일은 사건의 중요성을 먼저 인식해 다시는 사고가 나지 않도록 무슨 일을 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봐야 한다. 사회적으로 고령화 현상이 심화되면 거동이 불편하거나 심신이 약한 사람들이 늘어나기 때문에 질병이 없는 건강한 사람이라 해도 작은 충격이나 화재에 취약할 수 있다. 이러한 환경을 고려해 최상이 아닌 최악의 상태를 가상한 시나리오를 만들어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보다 먼저 고령화 시대를 경험한 국가에서는 어떻게 하고 있는지 벤치마킹할 분야는 배워 와야 한다. 또 그동안 안전과 생명의 관점에서 생각하지 못한 사각지대는 없는지 꼼꼼하고 주도면밀하게 살펴야 한다.

 이제는 당장 눈으로 볼 수 있거나 지금의 손해를 넘어, 지금은 볼 수 없고 오지 않았지만 다가올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과 책임이다. 안전과 생명에 관한 한 선제적으로 기민하게 움직인 기동정책이 필요하다. 밀양이 우리나라의 생명의 기준이 되고 안전한 나라의 시발점이 돼야 할 것이다. 큰 슬픔에 잠긴 밀양이 조속한 시일에 다시 일어서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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