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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멀 한 관계
미니멀 한 관계
  • 이주옥
  • 승인 2018.01.23 20: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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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옥 수필가

 단순하기, 덜어내기. 요즘 조용히 번지고 있는 미니멀 라이프를 보다 쉽게 표현한다면 이것이 적절할까?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불필요한 물건을 줄이고 최소한의 것으로 살아가는 생활방식, 다시 말해 물건을 줄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적게 가짐으로써 삶의 중요한 부분에 집중한다는 것이다.

 치열하게 일하고 많은 물질을 소유하면서 거미줄처럼 얽힌 관계의 홍수 속에 사는 것이 21세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텍스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루 24시간이 부족하게 살아가는 것을 오히려 열정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며 육체와 정신을 혹사 시킨다. 무엇인가 꽉꽉 채움으로써 만족을 하고 포만감을 느낀다. 기왕이면 더 큰 집, 더 큰 차, 집안 가득 빼곡한 물건들을 보며 자신의 소진된 에너지를 보상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넘치는 돈과 넘치는 물건이 사람보다 더 중한 가치가 되고 사람의 정신을 무참히 덮쳐 버렸을까. 점점 알 수 없는 부대낌을 느끼면서 허기와 갈증을 불러일으켰던 모양이다. 그러면서 무엇이 삶에 진정 중요한 것인지 심각하게 고민하고 갈등하기 시작한 것 같다.

 미니멀 라이프는 지난 2010년 영미권에서부터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우선은 집 안에 가득 차 있는 물건부터 빼내기 시작한 것이다. 집 안을 호화롭게 인테리어하고 몸에 갖은 치장을 함으로써 부와 명예를 뽐내고자 했던 사람들이 점점 단순하고 단조로운 생활패턴을 추구하고 모던한 차림새를 지향하게 된 것이다. 무엇인가 빼내거나 빠져나가면 그 자리에 다시 무언가를 채워 넣어야 한다는 강박증 같은 것이 있었을까. 오래된 가구나 TV도 교체하게 되면 오히려 더 큰 것으로 채워 넣었다. 사람이 사는 집이 아니라 가구가 사는 집에 사람이 얹혀사는 것 같은 모양새였다.

 어느 날 커다란 소파가 빠져나간 자리는 어딘가 휑해 보이지만 이내 알 수 없는 후련함과 개운함이 있었다. 한두 번 입다가 걸어둔 장롱 안 옷가지들도 모두 정리했더니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었다. 먼지 뒤집어쓰고 쟁여져 있던 묵은 책들도 골라냈더니 오히려 책꽂이에 더 자주 눈이 갔다. 눈과 귀는 스마트 폰에 있으면서도 습관처럼 켜 놓던 TV도 없앴지만 내 일상에 별다른 영향을 끼치는 것은 없었다. 거실에 두툼하게 걸린 커튼, 주방 창을 가리는 커튼, 집안이 온통 무엇인가 걸쳐진 것 투성이었지만 걷어냈더니 햇살도 더 많이 들어오고 바람도 더 많이 날아다니는 것 같았다. 늘 답답하던 가슴마저 뻥 뚫리는 것 같다. 그렇듯 비우고 덜어낸 결과는 사람에게 의외로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 같다.

 우리의 마음속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비워 내거나 버리지 않고 모든 감정과 소리와 모습을 켜켜이 담아두고 사는 까닭에 곳곳에 멍이 들고 생채기가 나기도 하고 때때로 호흡곤란마저 느끼지 않나 싶다. 마음을 비우는 방법도 가지가지일 것이다. 때로는 눈물을 흘려서 찌꺼기를 빼내고 때로는 소리 질러 날려 보내기도 한다. 감정의 앙금과 찌꺼기가 빠져나온 자리에 어느 날 안정된 숨결이 들어앉고 평화의 바람이 향긋한 꽃을 피웠던 경험들.

 사람과의 관계도 그럴 것이다. 사는 중에 만나고 얽어지는 인간관계도 수시로 조율과 정리정돈이 필요하리라. 상처받으면서도 붙들고만 있었던 인연들도 정리하고 나면 오히려 명쾌해지고 더 깊은 내면의 만남으로 재탄생되지 않겠는가. 너무 뜨겁게 만날 일도 아니고 너무 차갑게 멀어질 일도 아니다. 또한 사람이 머물다 지나간 자리에 꼭 사람으로 채우지 않아도 그리 아쉬운 일은 아니다. 서로 동의 없이 무심히 인연을 다한다 해도 아프지 않고 상처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마음속에 유연하고 담백한 공간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추운 겨울이 지나면 따뜻한 봄이 온다는 그 착한 순리처럼, 보낸 자리에 또 그렇게 담백하게 공간을 남겨 둔다면 어쩌면 그것이 진정한 비움이고 덜어내는 일일지도 모른다. 사람이건 사물이건 무조건 버리지 않는 것이 정이나 사랑은 아닐 것이다. 엉거주춤 쟁여놓거나 붙들어 놓지 않고 말끔히 비우고 덜어냄으로써 더 없는 충만함을 갖는 것이 진정한 미니멀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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