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의 시작과 끝, 소리
소통의 시작과 끝, 소리
  • 김혜란
  • 승인 2018.01.17 21: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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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혜란 공명 소통과 힐링센터 소장 TBN ㆍ창원교통방송 진행자


 인간의 감각 중 어떤 기관이 가장 힘이 셀까. 심야 라디오 프로그램에 두 번째로 출연한 하모니카 선생님은 역시 프로였다. 첫 출연 때 가요를 연주했는데, 청취한 제자들의 모니터를 들었다. 팝송 프로그램인데 가요를 연주하는 것이 어색했다는 의견이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샹송만 세 곡을 준비하셨단다. 하모니카로 아코디언 맛을 냈다. 가뭄 끝에 내린 겨울비 속에 하모니카의 멋진 화음은 아늑하다 못해 찬란했다. 하모니카를 두 개, 혹은 네 개를 쥐고 들려준 샹송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연주였다.

 어렸을 때 하모니카를 배웠지만 업으로 삼은 이유는 오스트리아여행 덕분이었다고 했다. 도시에서 일상적으로 열리는 음악회를 보게 됐고, 하모니카 연주와 오케스트라가 사라사테의 ‘지고이네르바이젠’을 협연하는 장면을 보게 됐다고 한다. ‘바이올린이 하는 연주를 하모니카가 할 수 있다니!’ 그 순간, 감히 하모니카에 생을 걸 결심을 했다고 한다. 지역에서 시민들에게 하모니카를 가르치는 선생님은 돈을 버는 연주와 교육만 하지 않는다. 그의 제자들 중에는 병원환자들도 있다. 근육병 환자들에게 하모니카를 가르친 지 꽤 됐다. 몸이 자신의 뜻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 환자들이 하모니카를 불면서 자연스럽게 근육을 움직이게 하고 치료의 개념을 떠나 치유의 힘을 주고 있다. 환자가 연주를 통해 자신의 마음과 먼저 소통을 시작한 덕분이리라 여겨진다. 1년에 한 번씩은 일본을 방문해 재일교포 1세들을 위해 연주를 들려준다. 이제는 얼마 남지 않은 1세들 중 잊히지 않는 한 분이 있다고 했다. 청각 기능이 상실됐다는 판정을 받은 할머니셨는데, 최대한 귀 가까이에서 하모니카 연주를 들려줄 기회가 있었다. 귀가 들리지 않는다는 할머니는 하모니카 연주에 발장단을 맞추셨다고 한다.

 클래식 기타연주를 업으로 유튜브를 통해서 세계 연주자들과 소통하는 기타선생님이 계신다. 사십 년도 넘는 시간 동안 클래식 기타만을 연주한 분이다. 전국을 돌면서 약속된 장소에서 늘 그 시간이면 연주하기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의 연주를 들려줄 때마다 같은 곡이지만 새롭다. 늘 다른 버전으로 연주하기 때문이다. 혹은 다른 감정을 입혀서 연주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고조되거나 격한 곡도 선생님의 기타연주로 편곡되고 연주되는 동안은 그 격한 느낌만 살아있을 뿐 편안하고 순화된다.

 동생과 함께 듀오로도 활동했던 기타 선생님을 영광스럽게도 하모니카 선생님보다 자주 만난다. 젊은 날 기억되는 선생님은 감정의 기복도 꽤 컸던 예술가였다. 그러나 세월이 켜켜이 쌓인 그의 연주는 아프거나 때리는 감정을 싣지 않는다. 음악과 연주의 본래 기능은 그런 것이 아님을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듣기에 자연스럽고 편안한 연주야말로 가장 최고의 예술경지라고 소리로만 설득한다.

 해금을 연주하고 제자도 기르는 해금주자를 자주 스튜디오에 모신다. 해금은 전통악기 중에서도 개성이 부딪치는 소리들 사이를 메꾸는, 혹은 연결하는 소리의 ‘네고시에이터’ 역할을 한다. 깡깽이란 이름이 붙어있을 정도로 해금은 우는 듯한 소리를 낸다. 울고 싶은 사람 대신 실컷 울어줘서 마음을 달래주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해금으로 울지만은 않는다.

 어떨 때는 오케스트라 연주 같은 힘의 해금을 들려준다. 건반악기와의 협연을 즐기는데 동서양의 화합은 분명히 음악에서부터 시작됐을 거라고 확신하게 된다. 우리 국민 정서의 밑바닥에 깔려 있다는 한풀이를 해금 주자는 자신의 책임인 양 해낸다. 언제까지나 한만 풀고 있을 수는 없지 않느냐는 듯, 깜찍하게 신나고 유쾌한 연주로도 우리 마음에 말을 건다. 역시 축복이자 선물이다.

 사람의 오감 중 가장 마지막까지 남아있는 것이 청각이라고 한다. 그러면 감각의 시작은 어떨까. 드넓은 광야에 홀로 있는 사람에게 소리와 빛이 동시에 주어졌다고 하자. 청각, 소리를 먼저 만날 확률이 높다. 양 사방 어디에서 들려와도, 그 자리에서 바로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시각, 보는 것은 그다음이다. 보기 위해서는 그 방향으로 몸을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비주얼시대다. 시각이 모든 감각을 지배한다지만 청각은 묵묵히 그 임무를 다하면서 인간들을 위무(慰撫)한다. 찬찬히 살펴보면, 음악뿐 아니라 소음(백색소음)조차 우리에게 말을 건네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소통을 오감으로 한다. 그 소통의 시작과 끝은 청각, 소리, 음악임을 새해 벽두에 깨닫는다. 소리와 음악으로 사람들을 만나는 직업 역시, 축복이자 책임임을 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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