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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섭이 필요해요
간섭이 필요해요
  • 경남매일
  • 승인 2018.01.16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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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옥 수필가

 ‘내 인생은 나의 것.’ 나와 무관한 사람의 말이면 그 결연한 의지에 박수가 나오고 자식의 말이면 기특하면서도 왠지 서운한 맘도 생기는 말이다. 아무튼 의지로도, 치기로도 비장한 말인 것은 사실이고 독립적인 의지의 표명으로 그만한 것이 없다. 하지만 결코 쉽지 않은 일이기에 때론 짠한 마음도 들고 눈물도 난다. ‘내 인생’이니 내가 알아서 하지만 온전히 내 뜻과 매 마음만으로 끌어가지 못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삶의 희로애락을 가장 실감 나게 느끼는 부분은 자식을 키우면서 생기는 일에서일 것이다. 나 또한 아이 둘을 키우면서 가장 확실하게, 때로는 냉혹하게 삶에 대해서 알게 된 것 같다. 부모로서 자식과의 동행은 적당히 소유의 선상에서 시작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그러니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독립개체를 선언하고 부모가 그것을 인정하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을 수밖에 없다.

 이 세상에 나의 유전자를 지닌 나의 분신이 있다는 것은 경이로운 일이다. 그래서였을까. 내 소신과 의지가 아이들에게 적용돼 그 아이의 주관이 되고 인격이 되는 과정에서 내 역할은 언제나 조금 적극적인 편이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적당히 그들에게서 벗어나고 물러나야 할지도 모른다는 자각의 시간이 왔다.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비록 부모 자식 간에도 적당한 때에 치고 빠지는 시간과 요령이 필요함을 뼈아프게 느낀 순간이었다.

 언제부턴가 아이들에게 내 참여와 관심은 간섭이라는 이물질이 되기 시작했다. 혼자서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무사히 이동을 완료하면서부터였을까. 아이는 부쩍 혼자를 부르짖고 독립적이 됐던 것 같다. 그리고 내가 알기 전까지 얼마간 비밀 연애를 하면서부터 수시로 알아서 한다는 말을 하고 몰라도 된다고 했다. 요즘 엄마들은 자식의 귀가 시간을 세세히 묻지 않아야 하고 누구를 만나는 건지 캐묻지 않는 게 좋다는 냉정한 말도 하면서. 그건 관심이 아니고 간섭이라면서 말이다.

 밥을 안 먹으려는 아이들을 쫓아다니며 밥을 먹일 때 어른들은 말씀하셨다. 몇 끼만 그냥 굶겨보라고. 하지만 자식에게 밥 한 끼 굶기면 세상이라도 무너질 듯 혼신을 다 해 입안으로 숟가락을 들이밀곤 했었다. 그랬는데 자식들은 제 스스로 밥을 먹고 맛있는 음식을 사 먹을 수 있게 되자 부모의 애정은 과잉 간섭이라고 말한다. 우리 아이들뿐만 아니라 대부분 젊은이들이 보이는 현상이란다.

 하지만 멀어지면 다가가고 버리면 줍고 싶은 것이 사람의 본성인가. 철저하게 보호받고 관심받던 젊은이들이 이제 조금 방치하나 싶으니, 새삼 관심 갖고 간섭해 주기를 바란다고 한다. 그것도 가족이나 친지가 아닌, 생판 남에게 말이다. 아침에 깨워주는 일부터 건강, 운동, 식단, 그리고 일기 쓰기까지 내 생활 전반을 그에게 노출하고 공유하면서 컨트롤 받는다는 것이다. 부모로부터는 독립을 선언하면서 타인과의 끈끈한 결합이라니 아이러니하지 않을 수 없다. 내 인생은 나의 것이라며 간섭과 관여를 거부하더니 말이다.

 지금껏 부모의 보호 아래서 케어를 받고 학습을 관리해 주던 학원 프로그램에 익숙한 탓이라고 분석하는 사람들도 있다. 결국 어떤 목표 성취를 위해 다른 시스템이나 사람이 필요한 것. 어떤 식으로든 스스로 자립하지 못한 요즘 젊은이들의 안타까운 단상이 아닐 수 없다. 혼자 노력하는 것이 비효율적이라는 뒤늦은 자각일까. 사람들은 물론, 심지어 부모 형제간에도 점점 단절돼가는 세상에 낯선 타인과 서로 간섭의 품앗이를 하는, 정말 세상은 요지경이다.

 무엇이든 올바르고 안정된 궤도에 오르기까지는 시행착오를 거쳐야 한다. 그들이 그것을 알게 되기까지 누군가의 관심은 간섭이었겠지만 어느 순간 극렬하게 알게 된 것이다. 누군가 일상을 들여다보며 끊임없이 질문을 하고 참여하는 것이 얼마나 큰 사랑이라는 것을. 삶은 누군가와의 동행이며 상관으로 유지되는 것, 사소한 감정일지라도 들여다보며 토닥이고 작은 행동에도 기꺼이 동행해 주는 사람이 곁에 있음이 얼마나 커다란 힘이고 축복인가. 또한 그것이 얼마나 따뜻한 삶의 순리인가. 결국 관심은 간섭이 아니고 사랑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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