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03:00 (금)
조기 공천 유감
조기 공천 유감
  • 오태영 사회부 부국장
  • 승인 2018.01.14 21: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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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태영 사회부 부국장

 이번 지방선거는 유례없는 깜깜이 선거가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각 정당이 조기 공천 방침을 밝히면서 빚어지는 현상이다. 민주당은 오는 3월 초에는 공천을 마무리한다는 입장이고, 한국당에서는 다음 달 말 공천설까지 나오고 있다. 역대 선거에서 공천이 당초 일정보다 다소 늦어졌던 점을 감안하더라고 늦어도 3월 중순에는 공천이 마무리될 가능성이 높다. 역대 지방선거에서 후보등록을 코앞에 두고 당 공천을 마무리했던 것과 비교하면 공천이 두 달가량이나 앞당겨지는 셈이다. 이렇게 되면 본선은 문제가 없겠지만 당내 경선에는 적지 않은 문제점이 노출될 수밖에 없다. 예비후보자 등록이 개시되는 시점은 도지사 및 교육감 선거 2월 13일, 시장 및 지역구 도의원과 지역구 시의원 선거 3월 2일, 군수 및 지역구 군의원 선거 4월 1일이다. 예비후보들이 자신의 공약도 제대로 알릴 여유가 없다. 도지사, 교육감 선거는 그나마 한 달여 여유가 있지만 나머지 선거는 선거운동 한번 못해보고 당 후보가 결정되는 사태를 맞을 수도 있다.

 식상한 이야기지만 지방선거는 풀뿌리민주주의의 꽃이다. 지역주민들이 자신의 손으로 고향 대표들을 뽑는 선거인 만큼 당연히 주인공은 그 지역의 주민이다. 조기 공천은 그런 주민의 당연한 권리를 빼앗는 결과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그 식상한 대원칙이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여지없이 무너지는 셈이다. 후보의 정견이나 정치철학, 공약은 고사하고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는 인물을 뽑아야 할지 모른다. 자유한국당은 여론조사 또는 전략공천으로, 민주당은 권리당원, 여론조사 50%씩 반영해 공천한다는 것이 현재까지의 각 당 공천룰이다. 후보 홍보물 하나 받아보지 못한 상태에서 누가 적임자라고 얘기할 수밖에 없는 어이없는 선거가 이번 지방선거다. 가뜩이나 깜깜이 선거라는 비판을 받아온 지방선거가 올해는 아예 눈을 가린 채 손을 더듬어 누가 누군지를 맞춰야 하는 사태까지 맞게 됐다. 당 후보 결정을 위한 여론조사가 시작되면 무응답이나 모르겠다는 대답이 어느 때보다 많이 나올 것이다. 이런 조사로 결정된 후보가 대표성을 가질지 의문스럽다. 지명도가 높은 인물이 유리하고 정치신인은 높은 진입장벽을 절감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결국은 당, 보다 더 좁혀 말하면 당권을 쥔 쪽의 입김대로 공천이 이뤄질 공산이 매우 크다. 지방선거인데도 지방은 없고 중앙당만 있는 꼴이다. 지난 대선에서 지방자치 확대를 경쟁적으로 외쳤지만 드러난 결과는 지방의 예속이다.

 조기 공천은 선거 모양새까지 바꾸고 있다. 공천은 임박해 가는데 자신을 알릴 기회가 없자 후보군들이 지역 현안을 두고 입장을 밝히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각종 현안에 대한 입장 표명을 통해 이름이라도 알려볼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마저도 당 조직을 가진 쪽이 유리하다. 당의 조직을 업은 쪽은 당의 입장이라는 공신력을 확보할 수 있지만 당 조직의 후원을 얻지 못하는 쪽은 공신력이 없는 개인 입장에 불과해 입장 표명조차도 여의치 않다. 불공정 게임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현직 단체장은 예전 선거에서는 생각지도 못한 뭇매까지 맞고 있다.

 각 당이 조기 공천을 하려는 이유는 짐작건대 공천 후유증을 선거 본선까지 끌고 가지 않고 본선에 올인하려는 데 있다. 전열을 가다듬어 필승하겠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지방 권력까지 장악해 대한민국 권력 지도를 이번 기회에 확 바꿔 장기집권의 기반을 마련해 보겠다는 것이고, 한국당은 지방선거를 통해 지리멸렬한 보수의 재건 기반을 마련하겠다는 속셈이 있다. 각 당의 정치적 이해에 지방선거가 기형화되고 지방자치는 뒷걸음치고 있는 것이다. 지방자치 확대를 골자로 하는 개헌이 논의되고 있지만 이런 식으로라면 개헌을 한들 무슨 소용인가. 지방에 대한 인식이 이런 수준이라면 개헌을 한들 지방이 제대로 대접받을까 의문이다. 중앙언론은 이런 문제점에 대한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 하기야 그들 눈에 지방이 있기는 했냐 만은. 또 한가지 짚지 않을 수 없는 것은 후보들이다. 단체장을 맡아보겠다는 사람들이 조기 공천이 가져오는 지방 실종 사태에 대해 아무런 말도 안 하는 점이다. 혹여 공천에서 불이익을 받을까 봐 입도 뻥긋 못한다. 참으로 놀라울 정도의 무관심과 의도적 외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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