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02:33 (금)
어느 부부의 학력ㆍ신분 맞추기
어느 부부의 학력ㆍ신분 맞추기
  • 권우상
  • 승인 2018.01.10 18:5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권우상 명리학자ㆍ역사소설가

 어느 대기업 부장인 Y씨는 부산의 한 중형급 병원의 원장 H씨의 남편이다. 이들 부부의 금실은 매우 좋았다. 하지만 남편 Y씨는 부인보다 학력이 낮은 것이 남자의 자존심을 구기는 것 같아 늘 고민이었다. 자신의 대졸이 의대 대학원을 나와 전문의사 자격을 가진 아내의 학력보다 낮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Y씨는 외국 현지 법인에 3년간 근무하는 동안 현지에서 대학원을 졸업해 부인과 학력이 같아졌다. 그는 부인 때문에 공부를 더 하게 됐다면서 부인이 대학원을 나오지 않았다면 자신도 공부를 더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좋아했다. 이를 보면서 문득 신라의 화랑 문노가 생각난다.

 신라는 진평왕, 진지왕 때 매관매직이 성행해 사회가 매우 혼란했다. 신라 조정이 부패의 늪으로 빠져든 것은 진지왕이 미실의 미모에 홀려 그녀가 권력을 좌지우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군대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화랑도를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군권까지 미실이 거머쥐고 있었지만 미실파와 문노파로 갈라졌다.

 문노가 풍월주에 오르기까지는 윤궁 여인의 헌신적인 배려와 보살핌이 있었다. 윤궁 여인은 거칠부의 딸이며, 어머니는 미진부의 친누나였고, 윤궁 여인과 미실은 종형제 사이였다.

 윤궁 여인은 원래 동륜 태자와 사통해 윤실 공주를 낳았다. 그런데 동륜 태자가 죽은 후에는 과부로 혼자 살았다. 이때 문노는 마흔에 가까운 나이에도 결혼을 하지 않았다. 세종은 그런 처지를 안타깝게 여겨 근심하자, 미실이 윤궁 여인을 추천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내 동생 윤궁이 이 사람(문노)과 어울릴 법한데 지위가 낮은 것이 문제가 되네요.” 그런데 정작 당자사인 윤궁은 그 말을 듣고 이렇게 말했다. “그 사람이 좋다면 그따위 위품이 문제이겠습니까?” 그때 문노의 부제(풍월주 아래 직위)로 있던 비보랑이 윤궁을 찾아와 문노를 계부(둘째 남편)로 맞이할 것은 권했다.

 비보랑 역시 윤궁과 종형제 사이였는데 문노를 높이 평가해 윤궁과 부부인연을 맺어주려 했었다. 하지만 윤궁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윤궁은 먼저 문노의 지위(신분)가 낮음을 문제 삼았고, 그것이 자기 집안에 누(陋)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윤궁은 마음속으로 문노를 몹시 그리워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문노의 위상이 점점 높아지자, 윤궁은 마침내 미실의 제의로 문노와 만났다. 문노를 만난 윤궁은 한눈에 반해 버렸고, 문노 역시 윤궁이 마음에 들었다. 문노가 말했다 “낭주가 아니면 저에게 선모가 없을 것이니 국선에 나아가지 못할 것입니다.” 이 말은 윤궁이 아니면 결혼하지 못한다는 말이었다. 윤궁이 말했다. “내가 낭군을 그리워한 지 이미 오래돼 창자가 끓어졌습니다. 비록 우리 집안 골품을 더럽힌다 해도 할 수 없는데, 선모의 귀함을 내가 어찌 받아들이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해서 두 사람은 왕의 허락을 받아 부부가 됐다. 하지만 골품이 낮은 문노는 골품이 높은 윤궁을 상전으로 모셔야 했다. 문노는 부인보다 신분이 낮은 것이 늘 고민이었다. 이때 조정에서는 전쟁에 대비해 군대를 총괄 지휘할 대장군을 선발하는 행사가 열리게 됐다. 이원화된 조직을 하나의 조직으로 통합해 많은 병력이 신속하게 전쟁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화랑도에서 무예가 가장 뛰어난 대장군을 선발하는 무술시험에서 최고의 실력을 인정받은 문노의 벼슬은 아찬에 올랐고, 병부령 최고의 수장이 됐다. 문노가 아찬 벼슬에 오르자 골품이 높아지면서 문노와 윤궁은 골품이 같아졌다. 그동안 골품이 달라 부부로 살아도 서로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이제 두 사람은 골품이 같아지게 된 것이다.

 윤궁이 말했다. “어제까지는 낭군님께서 첩의 신했으나 오늘부터는 소첩이 낭군님의 아내가 됐습니다. 그래서 이제까지는 낭군님께서 소첩의 명령을 받았으나 이제부터는 소첩이 마땅히 낭군님의 명령을 따르겠습니다.” 문노는 술도 마시지 않았고 여색을 즐기지도 않았다. 이러한 모습을 본 윤궁은 첩을 붙여 주려고 했지만 문노는 거절했다.

 백성들은 이를 보고 지아비를 얻을 때는 문노와 같은 남자를 얻어야 하고, 아내를 얻을 때는 윤궁과 같은 여자를 택해야 한다고 말했다. 어느 재벌 총수 자녀의 이혼 소송을 보면 평행을 유지해야 할 부부의 저울대가 어느 한쪽에 기울어져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