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18:00 (금)
저녁놀에 걸터앉은 부모님
저녁놀에 걸터앉은 부모님
  • 은 종
  • 승인 2018.01.05 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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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 종 시인ㆍ독서지도사ㆍ심리상담사

 토요일마다 부모님 댁에 간다. 되도록 빠뜨리지 않으려고 모든 일정을 주중에 조정해 놓고 동생과 조카를 데리고 간다. 부모님이 사시는 곳은 시골이라 자연의 숨소리까지 만질 수 있으며 사계절 변화를 읽고 사색할 수 있어 더없이 포근한 곳이기도 하다.

 해가 대체로 빨리 넘어가는 겨울은 조금 일찍 저녁상을 물려 놓고 사랑방에 모여 앉는다. 아궁이로 장작더미 밀어 넣는 어머니 곁에 쪼그리고 앉아 불을 쬐며 삶이 그러하듯 열띤 불꽃들 점점 사위어가는 장면도 지켜보곤 한다.

 온돌방이 서서히 달궈지면 나란히 두 분을 눕히고서 아버지는 큰딸이, 어머니는 작은딸이 맡아 발부터 주무르기 시작한다. 딱히 혈 자리에 대해 배운 것은 없어도 그냥 몸을 푸는 의미에서 가볍게 발바닥과 발등 그리고 발가락 사이를 헤집고 올라가 발목, 무릎까지 손으로 정성껏 만지면서 뭉친 혈을 풀어드린다. 크림을 적당히 발라 꼼꼼히 발을 만져드리면 흐뭇해하시는 그 모습이 더 좋아 이마에 땀이 송송 맺혀도 힘든 줄 모른다.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다. 다음 코스는 얼굴 마사지다. 미세한 숨소리도 들릴 만큼 가까이 앉아 들여다보면 부모님 얼굴은 아무리 닦아 보아도 지워지지 않는 세굴이 패여 있다. 여태껏 자식들 키우시느라 갖은 고생 다 해 이마와 눈가, 턱까지 번져있는 주름살을 매만지며 속울음을 삼킨다. 얼굴 손질을 마무리하려면 온ㆍ냉 수건이 필요한데 이미 솥뚜껑 위 올려뒀던 물수건은 스팀 타올로 탈바꿈돼 안성맞춤이다.

 간간이 바깥 공기 들이켜려 창문을 열면 뒷동산 부엉이 소리가 앞마당까지 내려와 떨어진 별빛들 쪼아 먹는 듯하다. 세상은 분요해도 ㄷ산등성이 온 동네를 감싸 껴안은 부모님 집에는 고양이들만이 담장을 넘어올 뿐 그 어떤 소란스러움도 고요를 무너뜨리지 않는다.

 인생의 먼 길 걸어오시느라 이미 군살이 박혀 밤껍질처럼 딱딱해진 발뒤꿈치, 지압하는 내 손끝이 아려올 정도지만 그 밤껍질 속 혈류가 원활히 통할 때까지 주무르고 또 만져드리리라. 평생 자식들 마음에 걸려 당신들 좋아하는 것 다 포기하고 사셨던 부모님, 언젠가 하늘길 오르실 때 불편하지 않도록 몸과 마음 홀가분하게 가꿔드려야 하리라.

 새해가 밝았다. 막힌 담이나 경계 없이 하루를 쓸고 가는 태양의 성실함이 부모님의 속성과 닮았다고 생각해 본다. 오로지 자식들을 위해 달려오시느라 지쳐 있는 몸과 마음을 정성껏 쓰다듬으며 받은 사랑 보답해 드리고 싶다. 하늘 한 번 열나게 달궈놓고 사위어가는 저녁놀처럼 언젠가 부모님 얼굴 그리워서 눈시울 붉어질 때 저녁 하늘이 내 마음 위로해 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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