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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돌아보는 힘 ‘여유’
삶을 돌아보는 힘 ‘여유’
  • 김혜란
  • 승인 2017.12.27 21: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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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혜란 공명 소통과 힐링센터 소장 TBN ㆍ창원교통방송 진행자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에서 발생한 화재는 소중한 29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불이 나게 된 원인으로는 1층 천장에 열선 작업을 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지만, 사고 규명의 핵심인 건물주인이나 불이 날 당시 발화 지점에서 작업을 한 건물 관리인이 제대로 대답하지 않고 있어서 결론이 나지 않은 상태다. 불이 난 이후 조치가 더 큰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유독가스가 나오는 드라이비트 공법시공이라든가, 화재가 났어도 스프링클러가 작동되지 않았다거나, 비상탈출구가 아예 가려져 있었고, 유리창을 깼다면 사람들이 더 탈출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물론 유리창의 경우는 유리창을 깼을 때 산소가 급격히 많아져서 불길이 더 커졌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도 나와서 논란은 있다. 소방차가 들어갈 수 없을 만큼 불법 주정차가 많았던 것도 큰 문제였다. 안전검사 때 지적을 받았지만 시정하지도 않았다. 총체적 난국이었지만 건물주인이나 건물 관리인은 얽혀있는 이해관계 때문에 쉽게 입을 열지 않고 있고 지켜보는 유족이나 국민들은 피눈물이 흐른다. 모든 원인이 확실하고 세세하게 밝혀져야 또 다른 참사를 막을 수 있다.

 제천 화재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성탄절 오후 수원에서 또 큰불이 났다. 수원 광교신도시 오피스텔 공사현장에서 불이 나서 1명이 숨지고 15명이 다쳤다. 화재가 난 오피스텔은 지하 5층에 지상 41층, 2개 동 규모로 14층까지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휴일이었지만 노동자들이 120여 명이 작업 중이었다고 한다. 목격자 진술 등에 따르면 불은 공사장 지하 2층에서 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절단 작업 중에 튄 불꽃이 단열재, 스티로폼으로 옮겨붙은 게 화재 원인이라고 잠정 결론 내리고 있다.

 용접ㆍ용단 등 불꽃작업 중 부주의로 발생한 화재들은 대부분 안전규정을 제대로 지키지 않아서다. 산업안전보건법에는 통풍이나 환기가 충분하지 않고 불에 쉽게 타는 물건이 있는 건축물 내부에서 불꽃작업을 할 때 반드시 지켜야 할 사항이 있다. 소화 기구가 있어야 하고, 용접불티 비산방지덮개나 용접방화포 등 불티가 튀는 것을 막는 조치 등이 있어야 한다. 또 불꽃작업이 진행될 때에는 물통과 모래를 담은 양동이를 추가로 배치할 것을 권고하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모든 조치의 유무에 상관없이 작업이 이뤄지고 있고 경남 도내에서도 이와 비슷한 사고는 계속 일어나고 있다.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나 성수대교가 무너졌을 때, 그리고 세월호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 사고들의 가장 큰 원인은 ‘안전 불감증’이다. 건물 주인이나 공사현장 책임자만의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 전반에 펴져 있는 ‘안전 불감증’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도대체 왜 근절되지 않은 것일까. 평소 우리의 사고방식을 이유로 들 수 있다. ‘나는 괜찮을 거야’라는 생각을 지금부터라도 ‘내가 문제는 아닐까?’로 바꾸지 않으면 같은 상황은 반복될 것이다. 쉽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너무 ‘여유’ 가 없다. 빨리 해치워야 하는 일들이 대부분이고 그것들은 제대로 돼 있지도 않는 매뉴얼마저 무시하고 일하게 만든다. ‘여유’라는 것은 돌아보게 하는 힘이다. 공사현장이나 건물의 안전관리나 삶의 전반에 공통으로 적용돼야 할 중요한 가치다. 이쯤 되면 ‘여유’는 사치가 아니라 필수이고 생존조건이지 않을까.

 제대로 된 매뉴얼을 만들고, 그 매뉴얼에 대한 숙지와 실천이 절실하다. 아주 가끔 목욕탕 벽면이나 엘리베이터 앞에 붙은 안전 요령이나 설명글을 볼 때가 있다. 너무 대충이거나 형식적이다. 어린이나 노인도 이해와 실행이 가능한 매뉴얼을 만들 필요가 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공공건물에서는 수시로 방문객을 대상으로 알려야 한다. 지진대피요령만 알아야 하는 것이 아니다. 평소 익숙하지 않은 어른들은 귀찮겠지만 익히려고 애쓴 사람들과 어릴 때부터 몸에 익힌 아이들의 미래는 지금보다 나을 것이다. 국ㆍ영ㆍ수보다 중요한 것이 너무 많다.

 하나 더 생각해야 할 것이 있다면 우리는 너무 눈앞의 문제만 본다는 사실이다. 제천참사나 광교화재에 대한 교훈과 생활 속 안전의식이 얼마나 갈까. 무엇인지 생각을 자극하는 일이 생기면 정말 중요한 문제일지라도 다 덮어버리는 정황이 발생할 것이다. 이미 발생한 일에 대해 제대로 문제점을 파악하고 해결할 방도를 세우지도 않았고 매뉴얼을 숙지하지 못했는데도 그냥 덮일 것이다. 그렇게 잊고 정신없이 살다가 같은 사고가 나면 다시 원점에서부터 흥분하고 난리 칠 것이다. 준비돼 있지 않았을 테니까. 국가나 개인이나 마찬가지다. 끊임없이 문제가 생기고 해결하는 과정이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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