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8 17:15 (목)
스스로 추스를 자유
스스로 추스를 자유
  • 김혜란
  • 승인 2017.12.20 22: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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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혜란 공명 소통과 힐링센터 소장 TBN ㆍ창원교통방송 진행자

 세계스타 5인조 아이돌 그룹 ‘샤이니’의 종현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그는 우울증을 앓고 있었고 절친한 친구에게 미리 유서를 남겼다. 누나에게 마지막 인사를 문자로 보냈고 경찰과 누나가 그를 찾았지만 이미 때를 놓쳤다. 위기의 신호는 곳곳에 이미 있었다. 10년 전 ‘누난 너무 예뻐’로 시작해서 바로 며칠 전 솔로 콘서트까지 성황리에 치른 ‘샤이니’의 종현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사실에 대해 팬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이해할 수 없어 한다. 최고 정점에 선 그였다. 하지만 화려한 콘서트를 끝내고 큰 박수와 열광 이후 본연의 모습으로 자신과 마주했을 때 유독 더 허탈해하고 외로움을 타며 힘들어하는 스타들이 많다.

 그의 방송을 자주 들은 적 있다. 현재 진행 하는 TBN창원 교통방송 ‘낭만이 있는 곳에’ 프로그램을 마치면 밤 12시다. 귀갓길에 라디오 채널을 돌리다가 만난 종현의 목소리는 그가 속한 ‘샤이니’의 노래 분위기에 비해 늘 지나치게 어둡고 가라앉아 있었다. 연출인가 했지만 이번 종현의 선택을 보면서 그의 목소리에 자신의 상태가 담겨 있었던 것은 아닐까 싶다. 사람을 위로 할 때 ‘다들 그렇게 산다’는 이야기는 하지 말아 달라고, 그 사람 입장에서만 생각해서 말해 달라던 그의 방송 멘트가 결국 자신에 대한 말이었음도 짐작할 수 있지만 이미 때가 늦었다.

 무엇이 10년 경력의 최고 정점에 선 스타를 죽음에 이르는 우울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했을까? 다른 아이돌 그룹과 비교되고 더 나은 위치로 가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컸을 것이다. 자신들보다 늦게 출발한 방탄소년단 같은 아이돌 그룹은 세계 속으로 약진 중이기도 하다. 또한 한국 아이돌 그룹들에 대한 소속회사의 지나친 자유 속박이나 실력향상을 위한 압박은 세계적으로도 소문나 있다. 종현 역시 작사ㆍ작곡에 많은 부분들을 감당했고 벅찼을 것이다. 그가 소속된 SM은 혹시라도 닥칠 우려를 막기 위해 소속연예인들을 대상으로 정기적으로 심리검사까지 받게 한다고 들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안타깝게 놓쳤다. 힘든 자신에게 누군가 답을 주기를 바랐지만 불가능했고, 화려한 무대 끝에 텅 비어버린 자신을 감당하기 위해 쓸 에너지가 너무 부족했던 것은 아닐까. 대중을 위로하는데 자신의 에너지를 다 써버린 종현은 결국 작아진 스스로를 추스릴 힘을 얻지 못하고 자신을 포기한 것일 터이다.

 스타의 갑작스러운 비보를 들으며 한 예비 고3이 떠오른다. 예비 고3의 겨울방학은 세계대전을 코앞에 둔 병사들의 상황처럼 초비상사태이고 ‘화이팅’이란 말을 건네지 못할 정도로 비장하다. 종현처럼 천부적인 음악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고 돈 많은 부모를 둔 것도 아니라면 대부분은 대학입시라는 죽음의 강을 건너야 한다. 이 예비 고3은 지금껏 괜찮다가 가장 중요한 이 시점에 엇나가기 시작했다고 어머니인 지인의 걱정이 크다. 엄마와 대화도 곧잘 하고 부모가 시키는 대로 잘 하더니, 찬바람 불면서 대화도 피하고 공부도 독서실이나 밖에서 하겠다고 겉돈다고 한다. 체육과 가겠다는데 이과를 지망토록 한데에 일차적인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지인 스스로가 진단하고 있다.

 어쩌면 우리는 모든 문제의 답을 알면서도 굳이 다른 데서 고민하는 것은 아닐까. 예비 고3의 엄마인 지인 역시 문제를 당사자인 아들 위주로 푸는 것이 아니라 엄마의 입장에서 풀고 싶어서 고민 중이라고 봐야 한다. 어쩌면 다행인 점도 있다. 예비 고3 입장에서는 그동안 아무 생각 없이 부모나 선생님의 의견에 끌려오다가 지금 이 순간, 스스로 자신을 돌아보기 시작한 것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냥 공부가 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체육과 가고 싶은 자신이 굳이 이과를 와서 억지로 수학을 공부해야 할 이유를 모르거나 찾고 있을 것이다. 이때 부모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66일 공부법’ 책자를 내미는 일이 아니라 충분히 자신을 파악할 기회를 주는 일이다.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말하라는 신호만 주고 기다려 주는 일이다. 초시계를 재는 부모 입장에서야 피가 거꾸로 돌 정도로 힘들겠지만 이 순간, 예비 고3을 억지로 끌고 가려다가는 자식의 한평생을 어긋나게 할 수도 있다. 사람들이 ‘다들 그렇게 산다’면서 수많은 기회를 선택할 수 있는 아들도 그렇게만 살아가라는 법은 어디에도 없다. 자신 스스로가 자신을 돌아볼 수 있을 기회가 흔히 오는 것도 아니다. 위기의 순간마다 온다. 위기와 고통 직전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추스를 기회만 있다면 스스로를 포기하는 선택을 하지 않아도 될 확률이 높아지니 차라리 행운일 수 있다. 종현처럼 만들지 말아야 한다. 믿어주고 기다려 주자. 방법은 그것뿐이다. 긴 인생에서 몇 년 정도는 순간에 불과하다. 길게 보고 아이를 기다려 주자. 종현에게도 진작에 시간을 줬어야 했다. 자유롭게 영혼이 숨 쉴 시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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