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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풍의 뒤안길에서
열풍의 뒤안길에서
  • 이주옥
  • 승인 2017.12.19 22: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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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옥 수필가

 내년 2월 9일부터 25일까지 열리는 동계 올림픽은 우리나라 평창에서 열린다. 우리나라에서 첫 번째로 치르는 동계 올림픽인 만큼 정부나 기업, 단체에서 홍보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거리 곳곳엔 발목까지 내려오는 긴 코트를 입은 사람들이 자주 눈에 띈다. 어른들부터 중고등학생들까지 다양하다. 마치 어느 선수촌을 연상시킨다. 키가 작건 크건 상관없이 발목까지 닿는 긴 코트를 입은 사람들. 옷 속에 푹 빠질 듯이 보인다. 아무리 혹한이라 해도 끄떡없을 것 같다.

 일명 평창 롱패딩. 평창에서 열리는 동계 올림픽을 상징해서 기획으로 출시한 방한복에 국민들이 뜨겁게 반응을 했다. 밤새 줄을 서고 중고 매장을 뒤적이는 데도 없어서 사지 못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고 한다. 물론 우리나라에서 유치한 스포츠 대전에 동참의 의미로 다가들면 오히려 축제 분위기가 나기도 한다. 하지만 언제나 과열은 물리적, 심리적 후유증을 동반하기에 우려되지 않을 수 없다.

 동계 올림픽과 패딩 소재의 긴 코트는 궁합으로도 안성맞춤이다. 운동 코치들이나 선수들이 입던 유니폼 같은 옷은, 상징적으로 나무랄 데 없기도 하다. 범세계적, 국가적 상징성을 가지고 의미를 부여하며 유난히 발 빠르게 반응하는 기업들. 그때를 겨냥해 마케팅으로 내놓은 상품은 언제나 불티난다. 국가적 기념일에 발매하는 우표가 그렇고 주화도 그렇다. 의미도 의미지만 거기에 희소성을 이용한 환금가치까지 있다면 금상첨화다. 하지만 대부분 한 시기에 불다 사라진 열풍이기에 다소 씁쓸한 것 또한 사실이다.

 다른 사람들, 특히 또래들이 하는 일이나 가지고 있는 물건은 무엇이든 해야 하고 가져야 하는 아이들. 자식의 그런 심리와 욕심을 생각하면 힘에 부쳐도 해 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을 이용한 마케팅은 언제나 제대로 먹힌다. 하지만 번번이 그런 열풍과 시류에 따라 부담해야 하는 부모들의 경제적 고통은 또 다른 문제점을 야기 시키는 것 같다.

 롱패딩의 열기는 아직 식지 않았건만 후속타로 이젠 스니커즈를 출시한다고 한다. 대한민국은 조만간 또 같은 신발을 신은 사람들로 물결을 이룰 것이다. 나는 어쩌다 나와 같은 옷이나 신발을 입은 사람을 길에서 우연히 마주치면 민망하기 이를 데 없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요즘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것을 할 때 더 의기양양하게 자신의 존재감이 세워지는 모양이다. 너와 같다는 동질감이 한 시대를 온전히 함께 누린다는 심리적 연대감으로 작용하는 것일까. 각자의 개성을 주장하고 각자의 성향에 취해, 오히려 메말라가는 인간성과 배려 없는 인성을 탓하는 판국에 웬 부화뇌동인지 이해 안 되는 일이기도 하다. 거리 곳곳에 같은 옷, 같은 신발 일색이다. 동계 올림픽이 끝나면 사라질 풍경이다. 부피가 큰 롱패딩은 애물단지가 될 것이고 너나 나나 신었던 신발은 어느 날 감추고 싶은 전리품이 될지도 모른다.

 지난 1988년 월드컵이 열렸을 때 온 국민에게 어필된 붉은 색은 가히 기록적이었다. 붉은 티셔츠를 입고 붉은 두건을 두르고 한마음으로 응원한 결과는 어마어마했다. 우리는 그 현장에서 오직 붉은 악마라는 이름으로 한마음이 됐으니까 말이다. 이번 롱패딩이나 스니커즈도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아마 가격 면에서 만만하지 않다는 것과 남녀노소 확연한 선호도에 따라 그때 만큼의 효과는 나타나지 않을 것 같다.

 경제학자들은 이런 열풍에 ‘지금 아니면 안 된다’는 희소성도 한 몫 한다는 해석을 한다. 희소가치라는 것은 남들이 갖지 못하는 것을 가질 수 있다는 기쁨에 의미가 크다고 볼 수 있고 그렇기에 많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 어려움을 감수하고라도 소유하고 싶은 것, 어쩌면 그것이 거사를 치르는 나라의 또 다른 저력을 보여주는 일이라는 말로 바꿔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열풍의 뒤안길엔 약간의 허무함이 남는다. 단발로 끝난 열기는 뒷골목에 불며 뒹구는 바람처럼 오히려 공허할 수 있다. 어떤 행사가 축제가 되는 것은 직접 참여하는 사람들의 역할도 크지만 그들을 응원하는 분위기도 한몫 한다. 들러리가 분위기를 이끌고 앞에서 설치면 선수들도 덩달아 힘이 날 것이다. 부디 롱패딩과 스니커즈를 향한 열정이 동계 올림픽을 성대하고 성공적인 축제로 이끄는 전초전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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