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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교… 화려한 변신보다 공동 공간 꿈꾼다
폐교… 화려한 변신보다 공동 공간 꿈꾼다
  • 이덕진
  • 승인 2017.12.13 19: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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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덕진 문화학박사 / 동의과학대 교양 교수

 삐걱거리는 나무 바닥, 무수한 괴담이 깃든 위인 동상, 녹슨 그네와 철봉, 기억 속 학교는 아직 옛 모습 그대로인데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사라진 지 오래다. 사람들의 발길이 뚝 끊겨 잡초만 무성할 뿐 아이들이 떠나간 교정엔 침묵만 흐른다. 다행히 을씨년스럽던 폐교가 지자체의 다양한 폐교 활용 정책을 통해 쓸모 있는 문화 예술 공간으로 재탄생해 예술 창작 공간, 숙박 시설, 글쓰기 학교, 산림 교육 센터 등으로 점차 진화하고 있으나 고민이 필요한 때이다. 최근 우리나라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유휴공간을 활성화하거나 재개발하는 방안에 사회적 접근과 시각이 달라지고 있다. 이들 공간은 다양한 잠재력을 가진 곳으로 21세기에 들어오면서 새로운 활용방안이며 도시발전의 활성화 전략에 매우 중요한 요소로 주목받고 있다. 뿐만 아니라 과거의 시간과 역사적 상징을 지닌 도시와 건축물들은 그 자체만으로 추억과 기억 보존의 장소가 된다. 재활용된 유휴공간은 이런 시간과 역사, 추억과 기억을 보존하는 중요한 매개체로 역할을 하며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이 아닌 기존의 것을 이용함으로써 그 가치를 유지하는 데 기여한다.

 현재 전국에서 문 닫은 학교는 3천곳이 훌쩍 넘는다. 도시나 도시근교의 폐교들이 화려한 문화공간으로 변신을 꿈꾸고 있다. 폐교 공연장, 갤러리, 시각예술 창작촌, 박물관, 문화 기획자들의 스튜디오, 이색 문화 공간, 공공 복합 문화 공간 등 문화의 피를 수혈받고 산뜻하게 새 옷을 갈아입은 전국의 수많은 폐교들, 중소도시에서 모범적인 사례를 살펴보면 아직 갈 길이 멀다. 대개 재활용이나 소극적 개조의 차원에 머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수많은 예술가와 기획자가 폐교를 문화사업 성공의 발판으로 생각하고 도전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씁쓸한 표정으로 돌아선 사례를 주변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실패는 운영자뿐 아니라 마을과 주민에게도 상처를 남긴다. 많은 폐교 유휴공간은 예산 특혜와 행정 지원에도 불구하고 해당 지역에 안착하지 못했고, 지역주민들과도 심각한 갈등을 빚었다. 많은 폐교 예술 공간들이 처음에는 좋은 반응을 얻고 시작했지만 상주하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면서 폐교 시설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

 폐교의 주인은 지방자치단체도, 교육청도, 운영자도 아니다. 그 학교를 다녔던 졸업생과 주민들이 진짜 주인이다. 특히 시골의 경우 학교를 처음 설립할 때 주민들이 십시일반으로 땅을 내놓고 공사를 벌인 경우가 흔하다. 법적 소유권은 교육청이 가지고 있지만, 폐교를 활용에 있어서 주민 정서를 무시할 수 없는 이유도 그런 배경 때문이다. 그럼에도 많은 폐교 문화 공간 운영자들이 이를 간과해 주민들과 갈등을 일으키고, 결국 손을 털고 나오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반면 성공 사례로 꼽히는 폐교 문화공간의 운영자들은 주민 관계를 잘 만든 것이 지역에서 자리를 잡게 된 계기가 됐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폐교는 마을의 문화공간이다. 자신이 운영자라고 하더라도 결코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라는 말이다. 외지인이 운영자라 할지라도 마을주민들을 초청하고, 식사를 대접하고, 공동체로 함께 나누면서 상생할 길을 모색한다면 외지인 운영자에 대한 선입견을 걷어낼 수 있다.

 공간을 어떻게 재활용할지는 너무나 중요한 문제이다. 지역의 특산품을 개발하고, 지역 특산품을 디자인화시키고 토박이와 이주민 모두를 위한 커뮤니티센터가 돼야 한다. 또한 폐교 문화공간 운영자는 절제심과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주민들이 참여하도록 기다려야 한다. 마을 사람들과 대화 나누는 기회를 자주 갖고, 좋은 친구로서 역할을 할 수 있는 자세와 마음을 가져야 한다. 고립적 행동이 정착하는 데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조용히 혼자서 작업하고 주민들과의 접촉도 최소화하려는 예술가적 속성을 깨뜨려야 한다. 폐교를 재활용한 문화공간 탄생이 도시와 지역과 주민 삶의 변화를 낳는 순기능을 낳기 위해서는 유휴공간의 복합화, 지역주민의 예술 향유와 평생교육을 위한 참여 유도, 창작물의 생산과 유통의 다각화와 지역민들의 고민거리를 함께하는 것이 절실하다.

 이처럼 폐교가 그대로 방치되고 있을 때의 사회적 비용까지 포함한다면 폐교 문화공간의 사회적 기여도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높다. 가장 중요한 것은 폐교를 단지 죽은 공간으로 여기지 않고, 예술과 행정, 그리고 아이디어의 결합으로 완전히 새로운 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끊임없이 확인하고 이를 실천하는 것이 답이다. 이러한 실천이 폐교뿐 아니라 다른 유휴공간 재활용으로 연결돼 도시 재생이라는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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