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5 00:52 (목)
어떤 동행 ③
어떤 동행 ③
  • 이은정
  • 승인 2017.12.11 22: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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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은정 수필가ㆍ김해문협회원

 평범한 소도시의 모습 그대로인 식당 건너편의 풍경을 일별하고 다시 하동역 마당으로 들어서니 한 무리의 자전거족들이 웅성거리고 있었다. 커다란 화물차에 수십 대의 자전거가 실린 걸 보니 주말을 맞아 하동에 새로 조성된 자전거길 탐방을 즐기고 온 것 같았다.

 머리 희끗희끗한 초로의 남자, 배불뚝이 중년 여자, 그리고 이십 대의 젊은이 등 다양한 연령대가 모인 자전거 모임 같았는데, 그들의 얼굴에선 하나같이 자신감과 건강미가 넘쳐났다. 부러웠다. 벌써 몇 년째 먼지를 쓰고 낮잠을 자는 내 자전거를 떠올린다. 처음 자전거를 사서 집으로 오는 십리 길을 타다가 걷다가 넘어지기도 하면서 오던 그때의 열정이 다 어디로 갔는지, 아직 내 몸 상태가 자전거를 못 탈 정도는 아닌데도 페달을 밟고 기분 좋게 씽씽 들길을 달려보고 싶다는 용기가 안 생기니 그것이 쓸쓸하다.

 북천에서 여섯 시 기차가 하동에선 다섯 시 반에 출발했다. 세 칸뿐인 열차에 자전거족들이 한 칸을 메웠으니 입석 승객이 많았다. 두리번거리다가 옆 칸을 보니 음료수 등을 가득 채운 커다란 자판기만 보일 뿐, 의자도 없고 사람도 없는 무인카페였다. 구석진 자리에 수건을 깔고 다리를 뻗고 앉았다. 열차카페 한 칸을 내가 전세 낸 셈이었다. 덜컥거리는 열차의 진동이 온몸으로 전해져 오면서 내 몸도 따라 흔들렸다. 반쯤 졸다가 깨다가를 반복하는데, 승무원이 지나가다가 유심히 쳐다보기에 자리가 없어서 여기에 앉았다고 하니 그냥 지나갔다. 중리역에 도착해서 내 좌석을 찾아가니 젊은 남녀가 다정하게 손을 잡고 앉아있었다. 비켜달라고 차마 말 못 하고 구석진 곳에 있는 빈자리에 가 앉아 피로해진 몸을 의자 깊숙이 기대며 아무 생각 없이 눈을 감았다. 실속 없는 하루의 여정이 꿈속처럼 지나갔다.

 기차에서 내리니 캄캄한 밤이다. 지나가는 차들의 불빛에 의지해서 집으로 걸어왔다. 마당에 들어서니, 집안에 도사리고 있던 익숙한 적막과 쓸쓸함이 나를 맞이한다. 떠날 때와 다름없이 나는 다시 계절병 속으로 되돌아온 것이다.

 여행의 소득은 없다. 그냥 가을 속의 내 모습을 확인한 것일 뿐, 오늘 밤은 더욱 잠들기가 쉽지 않을 듯하다. 어쩌랴. 어차피 내가 견뎌야 할 계절병이라면 그것들과 싸우며 화해하며 슬기롭게 가을을 건너가야지. 그리하여 내가 좀 더 깊어질 수 있다면 병이 약이 될 수 있으리라.

 북쪽의 창문으로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 속에 가을밤이 깊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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