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광불급(不狂不及)과 덕후
불광불급(不狂不及)과 덕후
  • 이유갑
  • 승인 2017.12.07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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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유갑 (사)지효청소년인성교육원 이사장 / 전 경남도의원ㆍ심리학박사

 한 해의 끝자락인 12월이다. 이번 주에는 필자가 맡은 대학의 강의도 대부분 종강을 하고, 새해에 시작한 이런저런 사업들을 조만간 마무리해야 한다. 연초에 뜨거운 열정과 강한 의지를 가지고 세웠던 계획들을 얼마나 이뤘는지, 아니 이루려고 애썼는지 되돌아보면서 나 스스로에게 미안하고 부끄럽다.

 보통의 사람들은 처음의 의지가 사흘을 넘기기 어렵다고 하는 말을 실감하면서 옛 문헌에 나오는 ‘불광불급(不狂不及)’의 참뜻을 새겨보게 된다. 자신의 일에 미치지 않으면 목표에 도달하지 못한다는 뜻을 담고 있는 이 고사성어는 ‘미쳐야 미친다’는 말로도 표현된다. 다시 말해서 감히 남이 미치지 못할 경지에 다다르려면 스스로가 미치지 않고는 안 된다는 것이다.


 최근에 ‘덕후’라는 말이 많이 쓰이고 있다. 이 용어는 원래 일본어의 ‘오타쿠’라는 단어에서 나온 것인데, ‘오타쿠’의 한국식 발음인 ‘오덕후’를 줄여서 ‘덕후’가 됐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일본에서 사용된 ‘오타쿠’와 우리나라에서 요즘 많이 쓰고 있는 ‘덕후’는 그 의미가 다르다.

 일본에서 사용되는 ‘오타쿠’는 사람들과 어울리지도 않고 좋아하는 만화나 게임에 빠져서 사는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라면, 한국의 ‘덕후’는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 흠뻑 빠져서 몰두하는 사람을 뜻한다. 사람은 각자 자기가 좋아하고 잘 하는 일이 있게 마련인데, ‘덕후’들은 자신이 선택한 분야를 끈기 있게 파고듦으로써 전문가의 수준에 오르기도 하고, 실제로 놀라운 성과를 이루기도 한다.

 그래서 이들이 주목을 받고 있으며, 새로운 인간형으로 불리기도 한다. 지금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흐름을 바꿔가고 있는 세계적인 인물들이 이 범주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살아온 세상을 근본적으로, 또 엄청난 속도로 바꿔 갈 것이라고 전문가들이 예상하는 4차 사업혁명의 시대에 반드시 필요한 인재들이다.

 조선시대에도 무언가에 미친 ‘벽(癖)’을 가지고 있어서 이상한 사람 혹은 미친 사람 취급을 받았지만, 자기 분야에서 최고의 경지에 오른 사람들이 있었다. 더우나 추우나 아랑곳하지 않고 책에 미친 사람, 천문학에 미친 사람, 그림이나 서예에 미친 사람, 조선 팔도를 돌아다니는 데 미친 사람, 귀한 조선백자를 만드는데 미친 사람 등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조선의 덕후’들이 존재했던 것이다.

 조선시대의 이런 ‘마니아’들은 대부분 당대에는 주류에 속하지도 못하고 빛도 보지 못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이들이 이뤄 놓은 정신적, 문화적 가치와 실질적인 성취는 후세에 큰 도움이 됐다. 조선의 부흥을 꿈꿨던 정조 시대를 포함한 18세기의 조선에는 이런 창의적인 광기(狂氣)가 가득했고, 혁명적인 덕후들이 많았다.

 21세기 최첨단의 시대에 들어선 지금의 한국에는 오히려 이런 ‘마니아’나 ‘덕후’들을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는 안타까움이 필자만의 생각일까? 어린 시절부터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가다 보니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해보려는 도전적이고 모험적인 시도보다는 정해진 길, 규격화된 길을 가는 데 익숙해진 측면이 있다고 생각된다.

 ‘블루 오션(Blue ocean)’이라는 책이 한동안 많이 읽혔다. ‘블루 오션’이란 대부분의 사람들이 주목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그 길로 가면 성공의 가능성이 훨씬 더 많다는 개념이다. 남이 가는 길을 그냥 따라가기보다는 자신이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그 길을 찾아가면 새로운 세상을 스스로의 힘으로 열어 갈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와는 반대로 대부분의 청년들은 위험 부담(risk taking)을 피하고 싶고, 또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대다수의 사람들이 가는 무난한 길을 더 선호하는 경향성이 있다. 이 길에는 수많은 경쟁자가 몰리고, 이미 효용 가치는 거의 사라지고 없기 때문에 실패의 가능성이 더 높게 마련이다. 즉, ‘레드 오션(Red ocean)’의 길이다.

 남들과 다른 독특한 생각을 하는 창의적 사고와 서로 관련이 없는 다양한 분야를 아우름으로써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융합적 사고를 필요로 하는 4차 산업혁명의 시대는 이미 시작됐다. 더 늦기 전에 부모들이 생각을 바꾸고, 국가는 교육의 내용과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꿔 줌으로써 자라나는 신세대들이 제각각의 덕후들이 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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