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17:05 (금)
출판 기념회 계절이 돌아왔다
출판 기념회 계절이 돌아왔다
  • 류한열 편집국장
  • 승인 2017.12.07 22: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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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선거 출마 예상자가
내놓는 책에는 저의가
깔려 있다. 너무나 명확한
목적을 두고 책을 이용하지만
책 속에라도 진실한 내용을
담길 바랄 뿐이다."
▲ 류한열 편집국장

 출판 기념회 계절이 돌아왔다. 지방선거가 다가오면서 출판 기념회가 자주 열린다. 책을 쓰는 행위는 작가 등 특정인만 누리는 호사가 아니다. 보통 사람들도 평생 책 한 권쯤 쓰고 싶은 순수한 욕심이 있다. 이런 욕심은 순수하다 못해 순진하기까지 하다.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고 겪은 사건과 의미를 책에 펼쳐 놓으면 여러 사람이 읽을 줄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순수하다. 하지만 이런 책은 글쓴이의 주위 몇 사람만 읽지 그 외 사람은 책을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그래서 순진한 구석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요즘 출판 기념회가 눈총을 사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책을 내는 목적이 지극히 정치적이기 때문이다.

 요즘 출판 기념회는 내년 지방선거 출마를 알리는 신호탄이다. ‘시장ㆍ군수로 나갈 내가 이 정도 사람이다’는 걸 알리는 책이다. 한 사람의 인생 역정을 담은 책은 감동을 주지만 왠지 노림수를 둔 책은 괜스레 가식이 많을 것 같은 선입감이 발동한다. 출마용 책에 등장하는 내용은 ‘어릴 적에 힘들게 공부하고, 오직 한 길 공직에 힘썼다’, ‘지방의원으로 의정활동을 하면서 지역을 제대로 섬겼다’, 또 아니면 ‘지금까지 공직 경험을 잘 살려 마지막 지역 봉사를 하겠다’ 등등 자기를 알리는 책이다. 책에 무슨 문학적 향기를 기대하거나 깔끔한 글쓰기를 바라면 낭패를 볼 수 있다. 그저 자신을 홍보하는 책이라 보면 마음이 편하다. 출판 기념회에 와서 책값을 내고 책을 집어 드는 사람들의 탐탁스럽지 않은 얼굴을 쉽게 상상할 수 있다.

 책을 써 시쳇말로 인생 대박을 치는 사람이 화제를 모을 때가 있다. 남편이 실직해 아내가 6년째 하루 한 권 책을 읽고 인생을 바꿨다는 이야기, 대학 시절 도서관에서 닥치는 대로 책만 읽고 성공 인생을 만들었다는 이야기, 책만 읽다 작가로 나서 엄청난 돈을 모았다는 이야기는 “그래 책엔 길이 있기 있구나”라는 반응을 이끈다. 책을 1천 권 읽었으면 ‘하수’, 책을 2천 권 내지 3천 권쯤 읽었으면 ‘중치’, 5천 권 이상 읽어야 ‘고수’ 반열에 든다는 말도 있다. 다독가이면서 강연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온 말이니 믿을 만도 하다. 책 몇 권 읽은 것으로 생각의 깊이나 넓이를 논하는 건 억지스러운 데가 있기는 하다. 책 읽기를 즐기는 그 자체가 훌륭한 삶을 이루는 큰 부분인 건 사실이다.

 지방이나 중앙 정치를 하려는 사람이 책을 내세우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우선 책 한 권 내지 못한 사람은 허술해 보이기 짝이 없다. 책 한 권쯤 출판한 사람을 속이 찬 배추처럼 보는 풍토가 엄연히 살아 있다. 책을 내지 않고 행세하면 한 축이 빠진 것처럼 보인다. 지방선거에서 꿈을 이루기 위해 책을 대중 앞에 내놓고 출사표를 던지는 전략은 괜찮은 축에 든다. 출판회에서 많은 사람 앞에서 ‘이번에 지역을 위해 봉사하기 위해 큰 결심을 했다’고 하면 박수를 받을 수 있다. 책은 이런 머쓱한 자리를 부드럽게 해 준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예상 출마자들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지방신문을 펼치면 하루가 멀다 하고 출판 기념회를 예고하는 기사가 뜬다. 예전 출판 기념회가 많은 문제를 일으켜 개선책을 논의했지만 허사였다. 출판 기념회 한 번에 수억 원을 모았다는 말이 공공연했다. 출판 기념회를 열면 책 판매는 기본이고 한 번에 수천 명의 사람을 모을 수 있어 홍보 효과가 뛰어나다. 책을 내도 손해 볼 일이 없기 때문에 웬만하면 출마 예정자들이 출간을 한다. 초청장을 보내고 SNS에서 출판 기념회를 알리는 활동에 제한을 안 받기 때문에 출마 예상자는 여러모로 출판 기념회가 요긴하다.

 지방선거 출마 예상자들이 굳이 출판 기념회를 여는 까닭은 자명하다. 오랫동안 자신이 생각한 지방 발전 방안이나 정치적인 야심을 드러내기 위해서다. 자신이 묵혀 온 생각을 책으로 표출하는 행위는 정당하다. 어쩌면 공감을 살 수도 있다. 하지만 자신을 과대 포장하거나 정치적 상대를 짓누르기 위한 출판이면 비난을 받아야 한다. 자신의 이름을 걸고 내놓은 책을 오직 정치적 목적 달성에만 맞춘다면 그 책은 ‘쓰레기’에 가까울 수 있다.

 지방선거 출마 예상자가 내놓는 책에 저의가 깔려 있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그렇지만 어쩌랴. 독서를 지독하게 한 후 글을 써서 자신의 어려운 상황을 탈피했다는 ‘인생 간증’이 심심찮게 일어나는 판에, 시장ㆍ군수를 꿈꾸는 사람이 책 잘 써 꿈을 이뤘다면 훌륭한 이야깃거리가 된다. 이들은 너무나 명확한 목적을 두고 책을 이용하지만 책 속에라도 진실한 내용을 담기를 바랄 뿐이다. 책은 사람의 마음을 사는 최고의 도구이기 때문에 악용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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