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05:24 (금)
‘롱패딩과 촛불’
‘롱패딩과 촛불’
  • 류한열 편집국장
  • 승인 2017.11.30 22: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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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좋은 패딩도
겨울이 지나면 입을
수 없다. 촛불이 모여
태풍에 맞섰지만 촛불이
하나씩 분리되면
작은 입김에도
꺼지는 법이다."
▲ 류한열 편집국장

 ‘평창 롱패딩’을 살 마지막 기회가 끝났다. 막판 잔치에 참여하기 위해 3박 4일을 기다린 사람도 있다. 백화점에서 판 평창 동계올림픽 공식 제품 ‘구스롱다운점퍼’의 인기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았다. 한 백화점에서 잔여 물량을 내놓자 사람들은 대기 번호표를 받기 위해 길게 줄까지 섰다. 마지막 3천 벌 판매가 끝나면서 롱패딩 열풍은 사그라들었다. 하지만 평창 브랜드 외 다른 롱패딩은 여전히 대세다. 올겨울 롱패딩 한 벌 없는 사람은 자칫 동사(凍死) 할지도 모른다. 이만한 열기를 뿜은 옷이 언제 또 있었을까.

 평창 올림픽과 한정판 상술이 멋지게 맞아떨어졌다. 이번에 롱패딩을 사지 않으면 무슨 탈이라도 나는 듯 난리법석을 피웠다. 가격에 비해 품질이 뛰어난 패딩을 갖고 싶다는 마음을 탓할 수 없다. ‘남들이 가지는데 나만 못 가지면 어떻게 되나’라는 불안한 심리까지 이용했다. 마케팅 전략에 쉽게 무너지는 게 소비자의 심리다. 마케팅 전략이 살아있는 한 앞으로도 며칠씩 밤을 새우는 충성스러운 고객이 나올 수밖에 없다.

 소셜네트워크 서비스(SNS)가 생활 속에 깊이 들어오면서 SNS 마케팅이 덩달아 상한가를 치고 있다. 사람들은 대체로 우매하다. SNS가 대세인 요즘에 사람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군중 속에서 찾지 않는다. 사람 속에서 더 고독한 현대인들은 SNS에서 자신을 표출한다. 사람들은 옳고 그름을 제쳐두고 SNS의 교묘한 덫에 걸리면 빠져나오기 어렵다. 거짓이 참을 가장하면 쉽게 무너지는 게 현대인이다. 마치 롱패딩을 안 사면 지질한 사람이 된다는 착각에 빠지듯이.

 조지 오웰의 통찰이 담긴 책 ‘1984’은 요즘 봐도 섬뜩하다. 지배층은 전쟁을 벌여 국민을 통제할 명분을 찾는다. 지배자 계급인 ‘빅브라더’는 시민들을 24시간 감시한다. 텔레스크린으로 시민을 세뇌시키기 위한 방송을 보내고 조작한 통계자료는 삶이 나아졌다고 우긴다. 텔레스크린을 끌 수 없다는 게 문제다. 텔레스크린이 폐쇄회로(CC)TV처럼 사람을 감시한다. 소설은 전체적으로 절망적 문장으로 가득 차 있다. 실낱같은 희망을 보다가도 끝내 희망을 닫을 수밖에 없는 암울한 현실이그려진다. 조지 오웰이 현재 세상을 알지 못했지만 거대한 힘에 의해 나약한 인간이 굴복한다는 예견은 지금도 유효하다. 여론 왜곡은 쉽게 할 수 있다. 현대인들은 유토피아를 꿈꾸면서 실제는 디스토피아를 향해 꾸역꾸역 가고 있다.

 ‘1984’ 주인공 윈스턴 스미스는 빅브라더 사회에서 반골이다. 그는 자기가 보는 사회가 진실이 아닐 수 있다는 의심을 품는다. 지배자 계급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빅브라더 사회에서는 이런 사람은 필요가 없다. 윈스턴 스미스는 실종 처리될 위기에서도 의심을 거두지 못한다. 그는 모순을 보고 그냥 믿고 넘겨야 하는데 의심을 품다 비극을 맞는다. 하지만 그도 결국 빅브라더를 사랑한다. 그게 삶이니까.

 ‘촛불 혁명’ 1주년을 보냈다. 많은 사람들은 힘없는 촛불이 모여 거대한 적폐를 태웠다고 말한다. 촛불의 힘으로 새 정부가 들어서고 여전히 그 힘으로 전 정권의 적폐를 도려내야 한다고 말한다. 촛불 혁명 1년이 지나면서 양심과 정의의 심지에 또 불을 붙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이 있다. 촛불 하나하나가 모여 거대한 불이 됐지만 그 속에 침묵한 많은 사람들은 관심 밖에 있었다. 촛불을 누가 대세라고 했는지 모른다. 그냥 그렇게 믿는다. 그 결과가 거대한 변화를 몰고 왔다. 윈스턴 스미스가 빅브라더를 사랑한 것처럼. 우리는 함성을 지를 때 지르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촛불에 맞서 맞불이라도 놓고 싶어도 쉽게 포기한다. 우리는 중대한 문제라고 하면서 의식을 차리지 않고 슬쩍 넘기는 이상한 지혜를 발휘할 때가 많다.

 지금 평창 롱패딩 아류가 판을 친다. 평창 롱패딩의 인기를 등에 업고 설치는 꼴이다. 아류 롱패딩에는 평창동계올림픽을 연상시키는 홍보문구가번듯이 씌여 있다. 진짜면 어떻고 가짜는 어떤가. 많이 팔리면 그뿐인데. 충성스러운 고객이 있으면 아무런 상관이 없다.

 평창 롱패딩은 침묵을 강요했다. 제품을 무조건 믿으면 횡재한다는 믿음을 던졌다. 많은 사람이 롱패딩을 사서 집에 뒀다. 추운 날 몇 번은 걸쳐 입겠지만 실제 롱패딩을 입기가 거추장스러울 때가 많다. 그래도 한 번씩 입을 땐 만족도가 높다. 쉽게 구할 수 없는 옷을 당당하게 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촛불은 거대한 함의를 이뤘다는 것도 반만 맞는 얘기다. 아직도 촛불을 들먹이며 또 다른 수를 쓰는 데 불편해할 사람이 많다. 아무리 좋은 패딩도 겨울이 지나면 입을 수 없다. 촛불이 모여 태풍에 맞섰지만 촛불이 하나씩 분리되면 작은 입김에도 꺼지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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