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 칠 때 떠나라
박수 칠 때 떠나라
  • 이광수
  • 승인 2017.11.29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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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광수 소설가

 지난 26일 서울예술의 전당 오페라 극장에서 유니버설 발레단의 수석 무용수 황혜민과 그의 남편 엄재용 씨가 발레 인생 16년을 마감하는 고별공연이 있었다. 발레 ‘오네긴’을 끝으로 무대를 떠나는 은퇴공연장은 눈물과 감동의 물결이 넘쳐흘렀다. 두 스타 발레 부부의 마지막 무대는 그들을 사랑하는 발레 팬들의 아쉬움과 감사 표시로 열띤 분위기였다. ‘춤으로 쓴 이별의 편지’라는 신문기사 레이아웃이 말해 주듯이 ‘춤이 삶 자체의 표현이었던 두 사람을 눈물과 열정으로 기억해 달라’는 해설가의 목메인 멘트에 공연장을 가득 메운 청중들은 울먹였다. 한 인생이 자신이 목표로 삼았던 예술에의 열정을 그것도 부부가 돼 마감한 마지막 무대는 아름답고 감동적인 한 편의 드라마였다고 한다.

 우리는 성년이 되면 각자의 인생을 살기 위해 직업을 갖는다. 그 업종이 어떤 종류의 것이든 자기 삶의 둥지를 지켜 줄 든든한 바탕이기에 혼신의 힘을 다해 일한다. 일반적인 직업이든 문화예술 관련 직업이든 각자 타고난 소질과 희망에 따라 직업을 선택한다. 단순히 자신의 정신적 육체적 노동의 제공으로 밥벌이를 하는가 하면 문학과 예술이라는 이름으로도 직업을 갖는다. 또한 명예를 얻기 위해서, 지역사회의 봉사자로서, 사회개혁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선출직 리더가 되기도 한다. 특히,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리더가 되기 위해 정치 인생을 걷는 사람들은 명예를 먹고 사는 사람들이다. 앞서 언급한 예술인의 경우 자신이 지닌 천부적인 재능을 발휘해 많은 사람들에게 정서적 카타르시스를 제공해 행복감에 젖게 한다. 한편, 명예를 먹고 사는 정치지도자들은 신뢰와 존경의 리더십으로 이 사회를 이끌어간다는 측면에서 실질적인 무게감은 더 크다 할 것이다. 그러나 문화예술계에서도 종종 나타나는 감투싸움에서 보듯이 우리나라 정치판에서 느끼는 리더로서의 존경과 신뢰는 발레 부부의 은퇴공연에서 보여 준 청중들의 감동과 아쉬움과는 사뭇 거리가 멀다.


 탐관오리와 간신 모리배들이 들끓었던 조선 시대의 신하들 중에도 청렴결백과 애민정신으로 백성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던 현신(賢臣)들이 많았다. 한 고을의 수령이 돼 선정을 베풀다가 임기를 마치고 떠날 때 그 고을 백성들이 먼 길까지 나와 배웅했다고 한다. 마을 곳곳에 그분들의 선정과 덕행을 기리는 선정비와 애민비가 세워져 있는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그러나 해방 이후 우리나라 최고정치지도자치고 그 뒤끝이 거울처럼 명징했던 지도자는 한 분도 없었다. 지금 전직 대통령이 영어의 몸이 돼 재판을 받고 있다. 새로 권력을 잡은 정부에서는 적폐청산이라는 이름으로 전직 지도자의 허물 캐기에 몰두하며 전철을 밟고 있다. 아마 모르긴 해도 이 정부가 물러나고 난 뒤 다음 정부는 똑같은 일을 되풀이하지 않을 거라고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국민여론조사에서 가장 부패하고 존경받지 못하는 직군의 1순위가 바로 정치인이다.

 내년 6월 13일 제7회 전국 지방자치단체선거가 실시된다. 선거일을 불과 7개월여 앞두고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선거에 나서려는 후보자들의 면면이 자천타천으로 연일 지상에 보도되고 있다. 경남도지사의 경우 대행체제라서 그런지 20여 명의 후보자가 자천타천으로 거명되고 있다. 그러나 후보군으로 거명되는 면면을 살펴보면 과연 그분들이 도지사감으로 적격자인지 의문스럽다. 유력 후보군 중 전 현직 단체장이나 국회의원, 시장ㆍ군수, 고위공직자 출신들이 다수를 점하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그분들이 전 현직에 재직 중 시도 군민들로부터 존경과 신뢰를 받은 인물로서 조선 시대의 현신(賢臣)들처럼 청렴결백하고 애민정신이 투철했는지 묻고 싶다.

 후안무치(厚顔無恥)라는 말이 있다. 한자 그대로 풀이해보면 ‘낯이 두꺼워 부끄러운 줄 모른다’는 뜻이다. 자신이 전 현직 재직 시 육정(六正)은커녕 육사신(六邪臣)에 가까웠던 사람이 다시 한자리 해 보겠다고 나서는 몰염치에 개탄을 금치 못한다. 철인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고 했다. 사람은 제 분수를 알아야 그나마 죄를 짓고도 말년에 속죄하며 살다가 죽을 수 있다. 자신이 누렸던 권력의 달콤한 향수에 젖어 선거철만 되면 얼굴을 내미는 사람들을 보면 우리 사회가 아직도 맑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앞서 발레 부부가 16년간의 열정적인 예술 활동을 마감하면서 청중들의 박수갈채 속에 명예롭게 떠났듯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권력에 대한 미련을 떨쳐버리고 박수 칠 때 떠나라고 말하고 싶다. 민심은 천심이요 조석변이라고 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빠른 법이다. 정치 권력이 국민들로부터 존경받고 신뢰받는 시대에 살고 싶은 것은 나만의 염원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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