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7 03:50 (수)
인생의 만루 홈런
인생의 만루 홈런
  • 이주옥
  • 승인 2017.11.28 23: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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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옥 수필가

 만루 홈런. 야구용어다. 1루, 2루, 3루에 모두 주자(走者)가 있을 때 타자가 친 홈런을 말한다. 막판 만루 홈런 한 방은 경기 내내 지지부진하며 고전한 선수도, 성에 차지 않는 경기에 야유를 보내는 관람객도 한순간 통쾌함의 진수를 맛본다. 점수 또한 4점을 보태니 순위까지도 순식간에 바뀔 수 있는 강력함을 갖는다.

 사람의 인생을 흔히 야구 경기에 비교할 때가 많다. 야구게임의 경기 방식이나 진행되는 내용이 우리 인생의 흐름과 비슷해서 누구나 공감할 만하다. 누구는 인생은 운칠기삼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또 어느 누구는 하루하루 노력과 성실함이 쌓여서 이뤄지는 공든 탑이라고 말하기도 있다. 물론 ‘인생은 정답은 없다’는 것이 정답일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우리의 삶은 오묘한 것임엔 틀림없다. 누구나 주어진 자기 몫의 생을 산다고는 하지만 알게 모르게 지배하는 절대자의 힘을 느낄 때가 있다. 말 그대로 뼈 빠지게 노력하고 애쓰며 살아도 지난한 삶의 연속일 때도 있기에 온전히 나만의 것이 아닌, 어떤 절대자와 함께 엮어가는 것이 아닐까 싶을 때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끔은 선물처럼 내려주는 행운을 만나기도 한다. 대부분 소소한 기쁨을 주는 것이지만 하루아침에 인생의 반전일 수 있는 엄청난 것일 때도 있다. 그때 우리를 지배하는 절대자의 격려며 응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절실히 하게 된다.

 누구의 인생이든 한결같지는 않을 것이다. 대부분 오르막 내리막 적당한 굴곡을 겪기 마련이다. 흔히 삶은, 길을 가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길에 박힌 돌덩이에 발이 걸려 넘어질 때도 있고 세찬 비바람을 만나기도 하듯이. 삶이 아무 일 없이 무난하기만 하다면 무슨 재미냐고 하지만 유난히 그 ‘아무 일’이 빈번한 사람에게는 그야말로 인생은 고해이기만 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어떤 고통의 순간이 지나면 찾아오는 환희의 순간이 있기에 참고 견디는 것이 아닐까.

  인생의 한 방. 쉽게 말해 대박이다. 삶의 한 자락에서 누구든 한 번쯤 꾸는 꿈이다. 그 한 방은 누구에게는 노력의 보상이기도 하고 또 누구에게는 우연히 만난 행운이기도 할 것이다. 사람의 일생에 칠 수 있는 만루 홈런은 무엇일까. 아마 운명처럼 만나는 진정한 인연의 사람이거나 일의 성공, 또는 꿈의 실현일 수 있을 것이다. 그 대상이나 모양은 주관적이거나 객관적인 차이일 수가 있으니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경이로운 순간임에는 틀림없을 터, 만루 홈런의 순간에 짓는 회심의 미소, 그때 흘리는 환희의 눈물은 지난한 인생의 찬란한 보상임엔 틀림없을 것이다. 사는 동안에 겪는 갖가지 사연들, 그 사연 속에서 틈틈이 노력하는 삶의 다양한 모습들, 그런 삶의 이력 속에서 칠 수 있는 인생의 만루 홈런. 그 통쾌한 환희를 맛보고 싶다.

 어떤 이는 나의 현재 모습을 보며 만루 홈런을 쳤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아직 환희의 미소를 짓지는 못한다. 내 스스로 온전하게 인정하지 않는다는 의미도 되고 어느 날 잃어버릴지 모르는 불안감이기도 하다.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정해진 운명과 타고난 숙명이 있다. 흔히 운명은 내 노력에 따라 어찌해 볼 수 있는 여지가 있지만 숙명은 도저히 어찌해 볼 수 없는 상태로 구분되는 것 같다. 우리는 대체로 그 운명에 순응하며 꾸려가고 어찌해 볼 수 없는 숙명과도 싸우며 삶의 진중함과 겸손을 알게 되는 것이리라.

 만루 홈런은 언제나 끄트머리에 있다. 인생의 끝자락 즈음에 성실한 삶의 보상처럼, 행운의 여신이 보내주는 미소처럼, 통쾌하게 날리는 한 방. 그 짜릿함은 어떨까. 짧지 않은 인생. 누구에게나 만루 홈런의 기회는 있을 것이다. 오늘이 잠시 괴롭고 힘들더라도 그 극렬한 쾌감을 위해 언제나 주저앉지 말고 노력을 멈추지 말 일이다. 우리도 한 번쯤 내게 주어진 인생의 그라운드 위에서 만루 홈런 한 방 날리고 내 삶의 동행자들에게 멋지게 손 한번 흔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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