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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리사의와 견물생심 사이에서
견리사의와 견물생심 사이에서
  • 원종하
  • 승인 2017.11.22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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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종하 인제대 국제경상학부 교수ㆍ금연교육연구소 소장ㆍ객원 논설위원

 대한민국의 이곳저곳에서 썩은 냄새가 진동하고 있다. 지진에서 파생된 진동도 잘 관측해야 하겠지만 그동안 소위 권력자들의 부패한 행위에서 오는 악취도 잘 살펴야 할 것 같다. 연말이 다가오고 추위가 더해가는 이 시기에 이러한 소식들이 우리의 삶을 더 힘들고 고단하게 하고 있다. 소위 지도자라고 하는 높은 사람들이 국민의 세금으로 조성된 공금에 대한 이상한 착각(?)을 하는 것 같다. 국가 돈은 먼저 보는 자의 것인가? 국가 예산을 마치 자기 호주머니 돈 주무르듯이 하는 국정원과 대통령, 그러한 잘못된 행위를 감시해야 할 국회의원 등 소위 높은 사람들은 돈을 보는 순간 모든 것이 다 자기 것으로 보는 것 같다. 관행처럼 이어진 이러한 적폐는 이제 일소돼야 한다.

 고려 말 최영 장군이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 했던 말의 의미를 우리 사회에서 잃은 지 오래됐다. 양심과 소신에 따라 국가의 사무를 봐야 할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하나같이 국민을 위한 권력을 자기 자신들이나 친인척의 배를 불리는 일에 적극적으로 쓰는데 나섰으니 ‘세금도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론적으로 도둑이 청와대에, 국정원에, 국회에, 대학에 있으면 그곳이 어떻게 되겠는가? 도둑의 소굴로 변하는 데는 시간문제일 것이다. 이러한 행위는 구조적 문제 이전에 양심의 문제이고 도덕의 문제이다. 늘 공무원(늘공)과 어쩌다 공무원(어공)이 된 사람은 당장 눈앞에 이익이 생기면 어떻게 행동하는가를 살펴보면 구분할 수 있다는 농담을 들은 적이 있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늘공은 규정과 법을 먼저 살피지만, 어공은 당장의 손실을 따지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다시는 기회가 오지 않을 것처럼 곧바로 행동으로 옮기는 데 주저함이 덜 한다는 것이다.

 물론 최근의 사례를 보면 이 양자 간의 구분이 사라진 것 같기는 하다. 견리사의(見利思義)와 견물생심(見物生心)은 똑같이 볼 견(見)이 들어있는 사자성어이다. 그러나 그 결과는 천지차이다. 누구나 보는데 그 바라봄이 무엇에 관심을 두고, 또 어떤 것을 생각하느냐에 따라 다른 결과를 가져온다. 견리사의는 논어에 나오는 말로 “눈앞에 이익을 보거든 먼저 그것을 취함이 옳음에 합당한가를 생각하라”는 의미이다. 견물생심은 물건을 보면 그것을 가지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는 뜻이다. 우리 인간은 이 둘 사이에서 고민을 할 수밖에 없는 존재일 것이다. 인간의 본성이 사물을 접하면서 드러나는 자연적인 감정인 7정(喜怒哀樂愛惡慾)인데 이러한 것을 다스릴 줄 알아야 진짜 지도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견물생심을 가진 인물이 지도자가 된다면 그 창고는 남아날 것이 없을 것이다. 사람은 믿을만한 존재가 못된 모양이다. 우리는 그 한 사람의 말만 믿고 선출해주기도 하고 “그냥 잘 할 것이다”라고 감시하는 기능의 작동을 멈추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그러나 세금이 들어가는 곳에는 이제 신뢰를 넘어 서로가 교차 감시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 세금을 뇌물로 쓰거나 권력을 남용해 부패할 가능성이 있는 곳에는 제도적으로 필터링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권력층으로 갈수록 그 제도마저도 무력화시키고 견물생심의 마음을 발동하는 것이 문제이다.

 성경 마태복음에 “진주를 돼지에게 던지지 마라”하는 말씀이 있다. 진주의 가치를 알지 못하는 돼지에게는 진주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오로지 먹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이런 비유가 나왔을 것이다. 최소한 국가 일을 하는 사람은 예나 지금이나 존 스튜어트 밀의 말처럼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낫다”라는 말을 가치 있게 받아들여야 할 시대이다. 공직은 두렵고 떨리는 경외(敬畏)하는 마음으로 수행해야 할 직무이지 내 주머니에 돈이나 챙기는 그런 이익의 차원에서 하면 안 될 일이다.

 인간은 탐욕 이상의 삶을 추구하는 태도를 가져야 함이 마땅할 것이다. 공자는 정치와 관련한 군자의 다섯 가지 미덕을 거론하며 그중 하나를 들었는데 “하고자 하되 탐내지 않는” 욕이불탐(欲而不貪)을 언급했다. 이외에도 “혜택을 주지만 헛수고는 하지 않으며, 애를 쓰지만 원망하지 않으며, 바라지만 탐하지 않으며, 당당하지만 교만하지 않으며, 위엄이 있지만 사납지 않은 것이다”고 했다. 이제 겨울은 더 깊어 가는데 우리의 사회는 언제쯤 따뜻한 소식들을 들을 수 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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