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9 18:38 (금)
귀여운 아재
귀여운 아재
  • 이주옥
  • 승인 2017.11.21 19: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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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옥 수필가

 다리의 실루엣이 제법 드러나는 슬림한 핏의 바지, 단추 두어 개 풀어헤친 남방에 얇은 가디건, 등에는 최신 디자인의 백팩을 매고 얇은 밑창의 패셔너블한 스니커즈를 신은 남자. 결이 고운 뽀얀 피부의 얼굴은 아무리 쳐다봐도 나이 가늠이 어렵다. 얼핏 대학생처럼 보이기도 하고 신입사원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는 올해 사십 중반을 향해 가는 나이인데, 그와 키도 비슷하고 한창 변성기인 고등학생 아들을 둔 학부형이다. 개인회사의 중책을 맡고 있긴 하지만 비교적 자유로운 회사 분위기가 그의 스타일을 만드는 데 한몫하고 있다. 출퇴근에 꼭 넥타이 맨 정장 차림을 하지 않아도 되고 다분히 자유로운 개인 취향을 발휘해도 딱히 제재를 받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휴일이면 종종 국적 불명의 로고가 박힌 헐렁한 티셔츠나 통이 넓은 배기바지를 입기도 한다. 그래서 간혹 주변인에게 패셔니스트라는 평을 듣기도 한다. 유행하는 트렌드를 받아들이는 것도 빠른 편이어서 인터넷 쇼핑몰을 이용해 유행하는 생활용품이나 액세서리를 자주 구입한다. 고등학생 아들은 알게 모르게 그의 옷을 입고 외출하지만 짐짓 모른 체한다.

 동안이 대세인 시대다. 물리적인 나이는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보여지는 나이에 민감한 시대, 남성들의 피부과나 성형외과 출입이 어색하지 않다. 남성 화장품은 여성 화장품만큼이나 다양하다. 대충 스킨로션 정도 바르던 때와는 달리 세안 제품부터 피부 톤을 만드는 B.B크림까지 다양하기만 하다. 정형화된 몇 가지에 국한됐던 남성 의상들도 색깔부터 디자인까지 무궁무진한 변화를 보이고 있다.

 80년대를 주름잡던 남성세대는 X세대로 분류한다. 낡은 청바지에 닳은 농구화를 신어도 별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 상남자 스타일로, 한 시대를 장악했다. 고급 술집이나 유흥장에서 두려움 없이 돈을 쓰고 젊은 여자들의 오빠로 군림했다. 그 시절은 더치페이라는 단어는 낯설었고 커피 한잔이라도 여자에게 돈을 쓰게 하면 체면 구기는 일이었다. 상큼 발랄한 여자에게 무엇인가 해주는 능력을 보여줌으로써 때론 아저씨라는 호칭이 오히려 지위나 재력을 대신하는 말이기도 했으니 요즘과 비교하면 가히 유물 같은 사람들이다.

 하지만 요즘은 시대에 뒤처지는 단어를 구사하고 트렌드에 반(反)하는 패션으로 나서면 소위 말하는 ‘아재’가 된다. 시대 지난 유머라도 구사하면 ‘아재 개그’라고 치부해버린다. 물리적인 나이를 떠나 의식 자체가 구태의연하고 보여지는 비주얼이 요즘 트렌드에서 비껴나는 아재 스타일은 젊은 여자들의 기피 대상 1호다.

 나만의 스타일이나 의식은 소신일 수 있다. 그런 뚝심 있는 소신은 한 사람의 인품이 되기도 하는 것이기에 섣불리 변화를 요구할 수는 없다. 하지만 시류를 무시하고 유행을 무시하는 혼자만의 스타일은 더 이상 환영받지 못하는 현실, 그때그때 유행을 적당히 수용하고 따르는 것도 능력이며 긍정적인 삶의 방식일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지만 문화나 유행은 숨 가쁜 속도로 변한다. 그러니 어쩔 수 없이 그 시류를 따라갈 수밖에 없다. 유행은 돌고 돈다고 한다. 특히 가장 먼저 남녀 간 의상에서 그것을 확인할 때가 많다. 여자들은 물론이고 남자들의 의상에도 그에 못지않게 빠른 변화를 보인다. 무엇보다 우선 바지가 슬림 해진 것이 눈에 띈다. 나만 해도 여전히 통 넓은 신사 바지를 입은 남자를 보면 조금 생경하면서 안타까울 때가 있다. 발 빠르게 첨단 패션스타일을 따라가지는 못해도 최소한의 트렌드를 따를 수 있는 센스는 가졌으면 좋지 않을까 싶어서다.

 요즘도 통 넓은 바지에 검은 구두, 거기에 느닷없이 하얀 양말을 신는 배짱 있는 아재들을 종종 보게 된다. 하지만 이 시대는 남의 시선이나 평가에 연연하지 않는 뚝심이 더 이상 남자다움으로 분류되지 않으니 이 안타까움을 어찌할까. 시대가 요구하는 다양한 방식과 유행도 간과하지 말 일이다. 물론 어울리지 않는 난해한 복장이나 스스로 소화하지 못한 유행어를 마구 구사하라는 얘기는 아니다. 최첨단 패셔니스트를 무차별 넘보는 것이 아닌, 적당히 트렌드를 받아들이는 여유와 감각을 가짐으로써 세상 속에 파고드는 귀여운 아재가 되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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