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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봉황동 유적지 "유력자 생활공간"
김해봉황동 유적지 "유력자 생활공간"
  • 김도영 기자
  • 승인 2017.11.21 19: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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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정 왕궁지 발굴 조사 공개 대형 건물지군 확인 큰 성과
의례용 유물 수백점 발굴 시대별 문화층 처음 밝혀내
▲ 금관가야 왕궁 추정지인 김해 봉황동 유적 발굴조사 지역 전경.

 금관가야 추정왕궁지로 알려진 `김해 봉황동 유적`에 대한 최신 발굴조사 성과가 공개된다.

 문화재청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는 지난 3월부터 김해 봉황동 유적 동쪽 지점의 전체적인 층위 양상을 확인했고 4세기 후반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대형 건물지 10여 기와 토기 수백 점을 발견했다. 이와 관련한 발굴조사 성과를 22일 오후 2시에 발굴현장(김해시 봉황동 312)에서 공개한다.

 21일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에 따르면 김해 봉황동 유적과 주변 일대에서는 지금까지 70여 차례의 발굴조사로 주거지, 고상건물지(기둥을 세워 높여 지은 건물터), 토성, 접안시설 등 다양한 유구가 확인됐다.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는 기존의 조사 성과와 `김해군읍지(지금의 김해시)`의 수로왕궁터 기록을 근거로, 금관가야 중심세력의 실체를 찾고, 그 실증적 자료 확보를 위해 지난 2015년부터 매년 김해 봉황동 유적 내의 추정왕궁지에 대한 발굴조사를 진행해왔다.

▲ 올해 김해 봉황동 유적에서 기마인물형토기(2번)에 달린 것과 흡사한 각배(1번)가 출토됐다.

 이번 발굴성과 중 눈에 띄는 점은 가야 시기 대형 건물지군의 존재를 확인한 것과 화로형토기, 통형기대(筒形器臺, 긴 원통을 세워둔 모양의 그릇받침), 각배(角杯, 뿔 모양 잔), 토우 등 의례용으로 추정되는 유물들을 다수 발견했다는 점이다.

 연구소는 층위 조사에서 현재 지표면으로부터 4.5m 아래에 있는 기반 층을 확인했다. 이로써 시대별 문화층(특정 시대의 문화 양상을 보여주는 지층)을 처음으로 확인했다.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관계자는 "지금까지 봉황동 유적 일대에서 시행한 수차례의 소규모 발굴조사에서 확인되지 않았던 기반 층부터 현 지표면까지의 전체 층위의 양상을 밝혀낸 것으로, 앞으로 유적 형성과정을 규명하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가야 시기 문화층 조사에서는 다수의 대형 건물지가 발견됐다. 건물지들은 대체로 지름 10m 이상으로, 일정 구역 내에 밀집된 양상을 보인다. 대표적인 건물지는 3호 건물지인데 바닥은 타원형이며 이 일대에서 가장 크고 기둥 자리가 비교적 잘 남아 있는 벽주건물지이다.

▲ 화로형 토기(1번)는 금관가야 수장층이 묻힌 것으로 알려진 대성동 고분군에서 나온 토기(2, 3번)와 문양이 비슷하다.

 이와 같은 대형 건물지군은 그동안 봉황동 유적 일대에서 발견된 일반 생활유적과는 차별화된 공간으로 활용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유물로는 의례용으로 추정되는 유물인 화로형토기, 통형기대, 각배, 토우 등이 다수 발견됐다. 화로형토기는 금관가야를 대표하는 김해 대성동고분군의 수장급 고분에서 출토된 것과 비슷한 모양이다. 이 유물들은 봉황동 유적을 점유하고 있었던 유력 집단의 존재를 시사하고 있다.

▲ 김해 봉황동 유적지 가야 문화층에서 지름 10m를 넘는 타원형 건물지들이 발견됐다.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관계자는 "이번 김해 봉황동 유적의 추정왕궁지 발굴조사는 당시 유력 계층의 흔적을 다수 확인하게 해줬다"며 "`가야의 왕궁`은 아직 베일에 싸여 있지만, 상위 계층의 존재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유구와 유물이 계속 발견되고 있어 앞으로의 조사 결과가 주목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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