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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 보복성 정치 악연 끊어야
문 대통령 보복성 정치 악연 끊어야
  • 이태균
  • 승인 2017.11.20 21: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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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태균 칼럼니스트

 새 정부가 들어서면 전직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대한 깎아 내리기식 비판이나 평가를 하는 것을 당연시하는 새 정부 지지자들이 증가하고 있어 국민통합과 더불어 지역감정을 없애겠다는 대선공약은 대부분 공염불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은 이러한 적폐를 청산하고 대한민국의 새로운 대통령상을 세울 것으로 기대했으나 문 대통령의 취임 후 행보를 보면 실망감을 지울 수 없다.

 문재인 정부는 국정농단 사건으로 구속수감된 채로 형사재판을 받고 있는 박근혜 전 대통령은 유례없는 6개월의 구속 만기에도 불구하고 구속 연장을 재판부가 결정함으로써 정치 보복 논란이 전면으로 부각됐고, 이명박 정부 시절 국정원 간부들을 구속하고 이 대통령을 검찰에 불러 세우기로 한 것을 보면 문재인 정부 역시 정치보복의 적폐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대통령제의 최대 적폐 중 하나인 승리자의 싹쓸이가 자행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권을 잡은 쪽이 휘두르는 칼날에 다음은 누구의 차례가 다가오고 있는지도 아리송하다. 적폐청산도 좋고 전 정권의 비리와 관련된 범죄사실을 밝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러한 수식어를 동원해 승리자가 전임 대통령과 정부 요직을 담당했던 인사들의 비리 캐기에 수사력을 집중하는 것을 바라보는 상대방은 정치보복이라며 결사 항전이라도 할 모양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은 대통령에 당선되자 그를 고문하고 흑인을 탄압했던 백인 경찰관과 우익 관련자들에게 사면령을 내리면서 “그들은 나에게 모진 고문을 가하고 많은 흑인을 죽였으나 그것은 오로지 정부의 지시에 따른 것임으로 장차 흑인 정부가 새로운 질서를 잡아가기 위해서는 그들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선언했다. 그는 선거 때 폭탄 테러를 감행한 무장 백인 극우 단체도 협상 테이블에 초대하고 “백인들이 소중히 여겨온 기념탑이나 기념물, 그리고 동상들을 허무는 일도 없을 것”이라고 약속했다.

 반면 대한민국은 단일민족으로 구성된 국가로 인종 대립은 존재하지 않는 세계에서 보기 드문 나라다. 남아공에 비하면 경제적인 수준은 높지만, 남아공의 만델라만큼 위대한 정치 지도자는 없다. 더욱이 국민통합을 이루기 위한 리더십을 발휘할 유능한 정치가는 없고 정치꾼뿐이니 안타깝다. 이러다 보니 정권을 잡았을 때 권력이란 힘을 사용해 상대방을 초토화 시키는 것을 반복하게 되는데, 또다시 5년 후 미래의 권력으로부터 또 보복의 악순환을 이어가게 된다는 사실은 외면하고 있다.

 지난 정권의 국정 운영을 되새겨 볼 때 틀어서 먼지 안 날 정권이 있을 수 있겠는가. 옳고 그름을 판단할 기준을 정형화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과거에 잘못된 것이 있다면 개선해야 하고, 범죄사실이 있다면 처벌해야 옳다. 하지만 이것도 상식과 정도에 벗어나지 않도록 행사해야 한다. 사실상 정치적 사형선고를 받은 전 대통령을 구속 연장까지 해가면서 그의 부하들까지 일일이 까발리는 것은 엎어진 사람의 등어리를 짓밟는 행위다. 냉정한 승부 세계인 복싱에서도 강렬한 펀치를 맞고 상대방 선수가 쓰러지면 공격을 멈추고 그 선수가 정신을 차린 후 일어설 때까지 기다리거나 만약 카운터 열(10)을 셀 때까지 일어나지 못하면 KO로 판정하는 것이 복싱경기의 룰이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이제 이명박 대통령의 문제까지 끄집어 내어 시시비비를 가리겠다고 나섰는데 이것은 아무리 좋은 방향으로 해석해도 노무현 전 대통령을 죽음에 이르게 한 데 대한 앙갚음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청와대와 집권여당은 마치 정의의 사도처럼 자처하고 있으나, 국민들의 냉소도 있음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역대 정권을 돌아보면 새 대통령이 취임한 후 30개월을 주목해야 한다. 취임 후 고공으로 치솟던 그 인기도 역대 다섯 분의 대통령을 살펴보면 자녀나 친인척 비리, 또는 최측근들의 범죄로 대통령의 인기는 급속한 하향곡선을 그리며 레임덕에 시달려야 했다. 이러한 현상은 새 정부가 앞으로 가야 할 정도(正道)의 진로를 가로막는 걸림돌이 됐다.

 문 대통령은 그들의 집권이 ‘촛불 혁명’이며 그래서 적폐 청산이 정당하다고 주장하지만 이런 것을 뛰어넘지 않고서는 최고지도자의 자질과 역량은 훗날 재평가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문 대통령이 집권 기간 5년을 통해 새로운 대통령의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일체의 정치 보복적 행위를 그만둘 것을 천명하고 헌법이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폭넓은 사면권을 행사하길 기대한다.

 이승만 대통령에서 이명박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전임 정권의 치적을 존중하고, 보수와 진보가 공유한 장ㆍ단점의 한계를 넘어 새로운 정치 패러다임을 선보여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큰 그릇을 지닌 지도자로 거듭나는 길이다. 문 대통령은 우리나라 최고 지도자로 지금부터라도 아집(我執)을 버리고 남의 것을 취할 줄도 알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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