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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로워야 정치도 맑아진다
여유로워야 정치도 맑아진다
  • 오태영 사회부 부국장
  • 승인 2017.11.19 19: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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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태영 사회부 부국장

 삶의 질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온갖 이야기가 나오겠지만 나는 여유로움이라고 생각한다. 경제적 여유, 물질적 결핍에서의 자유가 아니라 그저 멍때릴 수 있는 한가함,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아니라면 제쳐두고 빈둥거릴 수 있는 게으름, 라면을 먹으면서도 행복감을 즐기는 이런 것들이 여유로움이라고 본다.

 원시 상태의 인간은 배고프면 먹을 것을 찾고 잠이 오면 자고, 위협을 느끼면 싸우는 동물과 크게 다른 것이 없었다. 불을 사용하고 도구를 쓰면서 인간은 더 많은 것을 욕구하게 됐고, 농경사회가 되면서 축적, 재산이라는 개념이 생겼다. 작금의 인간이 겪는 불행의 씨앗은 그때 잉태됐다. 재물이 쌓이자 계급이 생겨나고 권력이라는 게 태동했다. 힘없는 자들의 힘겨운 삶이 시작됐다. 인간의 역사는 뺏고 뺏기는 투쟁과 그 투쟁에 대한 비판과 반작용의 역사라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다. 많은 인류의 대 스승들이 보다 잘사는 대동 사회를 위해 애를 썼지만 인간의 고통은 별반 나아진 것은 없다.

 오랜 인간 계몽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소외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유는 복잡다단하다. 그렇지만 궁극적으로는 삶의 철학 문제가 아니냐고 본다. 소유의 욕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인간은 소외에서 해방되기 어렵다. 소유의 욕망은 삶을 치열함으로 몰아넣고 자신이 주체가 되는 삶을 살지 못하게 한다. 경쟁에서의 패배는 실패한 삶이라는 자괴감에 빠지게 한다. 게으른 자는 못난 자, 실패자와 동일시 된다.

 우리의 최근 정치사는 이런 문제를 놓고 치열하게 싸워왔다. 표면적으로는 평등과 자유, 개입과 자율, 분배와 능률이라는 양립하기 힘든 가치의 대립 속에 진행됐으나 그 이면에는 이런 인간의 소외문제가 들어가 있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새 정부 들어서는 이런 논쟁의 축이 무너지고 한쪽으로 쏠리는 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약자에 대한 강한 배려가 오랜 논쟁의 귀착점이 되는 모양새다. 물론 약자는 배려돼야 하고 패배자에게는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불공정한 노동시장 구조가 바뀌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정부개입은 불가피하다. 약자에 불리한 게임룰을 공정하게 바로잡는 것도 필요하다.

 그러나 사회라는 것이 낡은 부속품을 갈아 끼우고 기름치면 잘 돌아가는 기계와는 다르다. 모든 것이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인과관계를 맺고 있다. 최저임금을 올리니 영세자영업자가 문을 닫는 것처럼 부작용이 생긴다. 표를 먹고 사는 정치는 이러한 복잡한 문제를 단순화시킨다. 수반되는 반대비용은 묵살하거나 물타기 한다.

 특히 우리의 경우는 매우 중요한 문제마저도 충분한 논의와 고민 없이 일사천리로 진행하는 데 매우 익숙하다. 그 부작용은 두고두고 부담이 된다.

 내 삶의 질이 정부 정책으로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가 없지 않다. 그러나 절대적 빈곤 구조에서는 정부의 정책이 내 삶을 바꿀 계기를 만들어 줄지 모르나 현재의 대한민국 경제 규모에서는 그렇다고 보기 어렵다. 정치인은 국민의 불만과 기대를 놓치지 않는다. 그들은 이를 권력을 쥐는 도구로 사용하는 데 익숙하다. 그러나 결과는 거의 대부분 뻔했다.

 결국 내 삶의 질은 내가 만든다. 경쟁보다는 주위를 생각하는 마음, 바쁠 때 일수록 자연과 친구를 생각하는 마음, 손해를 보더라도 차 한 잔의 여유를 갖고자 하는 마음, 이런 것들이 내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 아닐까. 국민이 여유를 가질 때 혼탁한 정치도 맑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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