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8 21:39 (목)
치명적 진술
치명적 진술
  • 이주옥
  • 승인 2017.11.14 21:4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이주옥 수필가

 미디어의 발달과 사람들의 알 권리는 대충과 어중간을 용납하지 않는다. 어떤 것에도 ‘눈 가리고 아웅’이 통하지 않는 세상이다. 팩트만이 살아남는 세상이고 임팩트는 거기에 현실감 있는 옵션이다. 보다 자극적이지 않으면 어필하기 쉽지 않은 세상, 어떤 일에 잡다한 부연 설명은 지루할 뿐이고 막연한 인내심은 융통성 없음과 일맥상통한다.

 한 나라 대통령의 부실정치가 온 나라를 뒤숭숭하게 만들었고 국민들은 그런 대통령의 책임을 물으며 온몸으로 투쟁했다. 국가의 안녕과 평화를 촛불에 담아 염원했고 그 결과 대통령 탄핵과 구속이라는 전대미문의 성과를 이뤄냈다. 벌써 1년 전의 일이다. 새로운 대통령이 뽑히고 6개월이 지난 지금, 나라 안팎으로 여전히 불안요소는 산재하지만 국민들은 그런대로 희망을 갖고 하루하루 삶의 일선에 있다.

 전직 대통령은 심판의 단두대 위에 서 있다. 재임 당시 그의 정치 일선에서 파생됐던 줄기들은 이제는 끊임없이 그를 옭아매고 쉽게 영어(囹圄)의 몸에서 풀려나올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수렁 속으로 들어가고 있는 것 같다.

 세상엔 영원한 적도 아군도 없다 했던가. 한때는 목숨까지 내놓을 듯 충성하던 사람들은 이제 제 살길을 찾아 그에게 불리한 진술을 쏟아내고 있다. 어쩌면 그토록 불온함과 비리에 열정을 다 했을까 싶어 혀를 내두를 만큼 무궁무진한 이야기들이 난무하고 있다.

 측근은 측근이었기에 공유하는 것들이 많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때 너와 나만이 알고 있는 은밀함으로 서로에게 더 할 수 없는 연대감과 밀착감을 줬을 이야기가 결국은 피해갈 수 없는 ‘나의 약점’이 되는 것은 비단 정치권의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다. 최측근은 최측근이었기에 나의 발목을 잡고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가장 확실한 고리 역할을 하고 있다. 그 내용이 팩트와 치명적이라는 두 개의 요소가 절묘하게 결합하면 숨어있던 뇌관은 터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것은 측근의 부실관리 차원을 넘어 진실은 언젠가 밝혀진다는 지극히 단순한 명제만으로도 맥을 추스르지 못하는 것이다.

 거리(距離). 무엇인가의 사이와 틈을 이르는 말이다. 건물과 건물 사이에도 거리가 있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거리가 있다. 일명 바람길이라고 불리는 이 거리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게 공평하게 있는 것이다. 거리는 생물에게는 숨통이고 무생물에게는 간격이고 통로가 된다. 하지만 그 거리를 무시했을 때는 때론 질식의 이유와 부딪힘의 원인이 되는 괴리감이 생긴다. 측근은 ‘거리 없음’에 존재한다. 더 없는 든든함과 내 편이라는 연대감을 준다. 세상은 홀로 살 수 없기에 동행자가 필요하고 거기에 비밀공유를 할 만큼의 측근은 필요하다. 특히나 권세를 가진 자의 측근은 곧 날개를 다는 것과 다름없다. 그러나 사람은 간사한 동물이다. 자신의 이익과 안위를 위해서는 최측근이었던 것을 오히려 도모한 일에서 발 빼기 쉬운 구실로 삼기도 한다.

 치명적인 것은 다분히 자극적이다. 그것은 오감을 건드리며 우리에게 무한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며 그 쾌감이 그만이다. 사람이건 동물이건 무엇엔가 쫓기고 몰리면 불가항력적인 힘을 발휘하게 된다. 어차피 약육강식의 삶. 제 살길을 찾다 보면 다른 사람을 밟고 설 수밖에 없는 것이 삶의 이치일까. 그의 수하에서 권세를 얻었던 사람들의 면면이 그것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측근들의 폭로전이 연일 계속되고 있다. 한때의 주군은 측근들이 제출한 확실한 진술과 자료에 빼도 박도 못 하는 궁지에 몰려있다. 연일 다른 명목으로 수사대상에 오르는 그의 미래는 불 보듯 뻔하다. 그야말로 최측근의 치명적인 진술은 그에게 어떤 대항도 대처도 할 수 없게 만들고 있을 뿐이다. 치명적인 것은 다분히 매혹적이나 감당해야 하는 후유증은 너무나 가혹하다. 정치와 권력도 마찬가지다. 손을 잡고 있던 순간에 누릴 수 있었던 쾌감은 극렬했겠지만 결국은 추락의 날개가 될 뿐이다. 이제 우리는 나날이 수위를 올리는 그들의 치명적인 진술을 투쟁의 결과라 여기며 회심의 미소를 띠며 지켜보면 되는 것인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